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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양 Jun 18. 2023

챙겨먹기와 때우기

다이어트챌린지

열흘째 다이어트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이 무료 챌린지는 3주동안 음식조절과 물 마시기, 영양제 챙겨먹기, 그리고 매일매일 운동하는 루틴을 따르고 인증을 해야하는 챌린지다.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에서 주의사항과 챌린지 방법등을 배우고 각자 소그룹으로 나뉘어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이 챌린지에 참여하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바로 영양제 구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양제를 이미 잘 챙겨먹고 있었지만 나는 오래전 사놓은 오메가369 캡슐과 해가 나지 않는 영국에서 더욱 필수인 비타민D도 먹는둥 마는둥이었다. 부모님이나 가족들 선물에는 꼼꼼하게 알아보고 영양제 선물을 곧잘 했지만 정작 나는 챙겨먹지 않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일단 근거없이 고지식한 태도로 '영양은 음식에서' 얻어야지, 인위적으로 만든 약을 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음식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기엔 그 음식을 하는 것이 일단 상당히 귀찮고, 음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소의 양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영양제를 사 먹지 않은 두번째 이유는 꼬박꼬박 잊지 않고 챙겨먹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영양제 하나 챙겨먹는게 그렇게 어려운일일까 싶지마는 일부 사람들이 '영양제 챙겨먹기 챌린지'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나만 어려운 건 아닌것 같다.


무엇을 시작하든 진심이어야 한다는 고질병을 고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쯤 영양제를 연구하고 있었을거다. 수많은 기사와 영상을 보면서 어떤 영양제를 골라야하는지, 어디 제품이 좋은지 리서치를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졌을거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사지 못하고 '아니야, 역시 가장 자연적인 게 좋은거지. 역시 음식에서 얻어야 해.'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가 좋은 것은 나와 타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왠만하게 알려진 회사의 평이 좋은 제품이라면 거기서 거기일 것이고, 내가 깊이 파들어가 알아보느라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보내는 것 보단 그냥 하나를 골라 지금 사서 바로 먹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함량을 체크하고 판매수와 리뷰를 참고해서 한 제품을 골라 바로 구입을 했다.




식구들이 모두 출근, 등교를 하고 나면 혼자 남는 집에서 맞는 점심시간에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주부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귀찮으면 라면 하나 끓여서 때우는 때가 훨씬 많았다. 아침을 만들어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저녁에 식구들 밥상을 차리는 것도 일인데 점심에까지 부엌에 서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나의 주중 점심은 거의, 아니 늘 '때우기' 였다.


그런데 이 챌린지를 하고보니 점심을 때울수가 없게 되었다.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신경써서 골라야 하고, 그것을 나만을 위해 준비하고 조리하는 일이 필요해졌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한끼 '때우기'가 아니라 '챙겨먹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겨서 인증을 해야하는 챌린지 둘째날.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으로 만든 김밥을 썰면서 자연스럽게 자른 김밥 꽁지는 입으로 들어갔고 나는 도합 네 줄의 김밥에서 나온 꽁지 여덟개를 먹고 나서야 아차, 내가 인증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네 줄의 김밥 꽁지 여덟개는 김밥 한 줄의 양과 엇비슷하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들이 남긴 밥, 그릇에 담아주고 어정쩡하게 남은 음식. 이런 음식들을 나는 그릇에 담지도 않고 서서 입으로 쑤셔넣고 살았던거다. 내 입으로 안 들어갔으면 다른 루트는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통이었을 음식들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식구들 밥과 도시락을 위해 적기 시작한 식단표에 점심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것도 알게됐다. 나는 '해먹이기'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 누가그랬을까? 바로 내 자신이다.


음식이 중요한걸 알고, 그래서 아이들 이유식부터 참 신경 많이 쓰면서 챙겨먹였던 나인데 그 챙김에 나만 쏙 뺐던거다. 어차피 나 챙기려면 내가 음식을 해야하니까 귀찮아서 안했던거였지만 미리 식단표에 적고, 준비를 해 두면 '나 챙겨먹이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다른 식구들 밥 처럼 나도 그릇에 담아서 앉아서 먹기로 했다. 식단계획표에 당당하게 내 점심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일을 줄이기 위해 저녁준비를 하면서 닭가슴살을 미리 삶아 놓기도 하고 밀폐용기에 채소도 미리 씻어 넣어두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대충 배만 채우느라 라면으로 때웠던 내 점심시간들에 미안해졌다. 물론 아직도 중독적인 그 라면맛은 유혹적이지만 오랜만에 나만을 위해 준비해서 먹는 점심시간이 챌린지 열흘을 맞은 오늘까지는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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