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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양 Feb 25. 2024

what if...

상상놀이

가끔가다 요상스러운 상상을 한다. 기괴하기도 어이없기도 한 상상이다. 어쩌다 나와 비슷한 상상을 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상상을 글이든 그림으로 표출해 낸 것을 볼 때면 감탄한다. 머릿속에 든 생각을 저렇게 바깥으로 표현해 낼 능력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고기나 생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모습을 닭이 보았다면, 소나 돼지가 보았다면 어떨까? 목이 잘리고 털이 뜯기고 내장이 끄집어내어 져 플라스틱 안에 포장되어 나란히 나란히 진열해 놓은 수많은 동족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몸의 부위별로 살을 도려내어 진공 포장을 해서 '서로인'이라든지 '립아이'라든지 '녹차먹인 삼겹살' 같은 라벨이 붙는다면 말이다.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으로서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겠다. 독자들이 갑자기 고기에 혐오를 갖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의 상상은 비단 동물들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받으면 기분 좋은 꽃다발을 보면서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기괴한 상상을 한 적도 있다. 꽃에게는 피도 없는데 말이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다. 그렇다고 누가 그러던데? 사람 아닌가? 개미에게 물어봐도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동의할까?


Ai generated image


나무를 본다. 매일같이 걷는 산책길에서 이러저러한 모양의 나무들을 만난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나무는 좋아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 잎이 다 떨어지고 난 후에 더 잘 보이는 굽어지고 휘어지고 개성 있게 뻗어있는 나무의 가지들을 보는 것이 좋다. 어떤 세월을 살았기에 이렇게 굽이굽이 휘게 되었을까?  한 자리에 서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들었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혹시 안쓰럽고 짠하게 보이지는 않느냐고 묻고 싶다.

나무의 사계절


우리는 인간이니까 당연히 인간 중심으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신이 인간인 노아에게 명하시어 방주를 만들고 동물들을 한쌍씩 태워 세상을 구하게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에게 세상을 잘 다스릴 것을 일임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상상한다. 만약 신이 인간이 아니라 나무들에게 세상을 구할 것을 명하였다면? 아둔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니 곁에서 잘 지키고 보살피라 부탁하였다면?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바보짓을 할 것을 미리 아시고 생명을 포용하는 강인한 자연, 'mother nature'에게 인간을 맡기신 것이라면? 위대한 자연의 '자연 치유'나 '자연정화' 능력도 어린애 같은 인간들을 보살피기 위해 신이 자연에게 주신 능력이라면 어떨까? 나무가 아닐 수도 있다. 지렁이일수도 있고 초파리일 수도 있다. 인간과 유전자가 90퍼센트 일치한다는 관상어 제브라피시일 수도 있다.


'너만 모르는 거야.'


인간을 제외한 자연 전부가 사실은 인간을 '베이비 시팅'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벚꽃이 핀 나무를 본다. 아직은 대부분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에 간혹 가다 점처럼 초록 싹이 나올 듯 말 듯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잔가지가 수없이 달리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무 가지들이 뿌리 같다. 땅 속의 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또 상상력이 발동된다. 풍성한 잎과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지상의 나무를 뒤집어 보면 땅 속의 나무는, 그러니까 나무뿌리는 지상에서 보이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더욱더 화려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아니면 땅 위의 나무가 헐벗은 겨울을 나는 동안 땅 속의 나무가 풍성한 나뭇잎 사이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겨우내 흔적도 없던 갈색의 척박함에서 마술처럼 피어나는 샛노랑의 별빛과 같은 수선화를 본다. 매년 꽃을 피우는 시간보다 뿌리로만 존재하는 시간이 훨씬 긴 수선화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말하자면 '황금기'와 같은 꽃을 피우는 기간이 짧아서 불만일까? 아니면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할까? 아니면 알뿌리로 지내는 시간이 사실은 더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일까? 꽃 피울 때가 되면 일하러 가야 한다고 몸이 천근만근일까?




가톨릭 학교에 다니며 종교학을 배우기 시작한 둘째 딸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겠단다. 자기 생각에 인간은 단세포에서 진화를 했는데 그러면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냐는 거다.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 죽을 때까지 모를 거다. 우리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말이 되는 것을 맞다고 정의하고, 우리의 능력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하며 살뿐이라고 열두 살 딸에게 말하지 않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나는 한 사람일 수도, 혹은 수조 개의 세포가 모여있는 연합체이므로 실은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이 시점에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찰나의 것일 뿐 실상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약하고, 탁월하지도 않으며 약점 투성이인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생각에 우리는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단정 짓지도 말고 자만하지도 말고 열린 마음으로 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한정된 인간의 언어로는 물을 수도, 답을 들을 수도 없기에 마음으로, 영혼으로 자연과 우주와 소통하며 답을 구하려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원래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는 상상하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상상해야한다. 상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미약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행위다. 고개를 숙이는것이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러니 허무맹랑하다고 질책하지 말자. 공상에 빠진 아이는 우주와 교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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