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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Sep 30. 2024

[독서일기]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윤상인

런던아이(런던을 바라보는 관점)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시간을 세어본다. 벌써 5년, 마침내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오르는 알록달록한 풍선들은 색색의 알사탕을 하나씩 입 안에 넣는 것처럼 달콤한 기다림을 느끼게 했다. 그 동안 훌쩍 커버린 아이와의 해외 여행은 분명 더 수월해질 거라는 믿음에 이번 여행이 좀 더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난기류는 기체의 흔들림 뿐만 아니라 괜히 왔나 라는 마음의 동요까지 만들어냈다. 다리도 짧은데 비행 내내 내 무릎은 또 왜 그렇게 아픈 건지. 비행기 멀미까지 하는 아이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당분간 아이와의 해외여행은 어렵겠다는 결론에 가 닿았다. 대구부터 이어진 긴 비행을 끝내고 출발한 지 24시간이 지나서야 런던 중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저녁 8시, 런던의 바람은 시원했다.

 

7월 말, 이번에는 꼭 해외로 여름휴가를 가야겠다고 선언했다. 조건1, 유럽이었으면 좋겠다. 1년 중 가장 긴 휴가를 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조건2, 대프리카보다 시원했으면 좋겠다. 가장 뜨거운 시간을 피해서 떠나는 휴가니까. 조건3, 대한항공에서 운항하는 직항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구에서 출발하면 벌써 1번 경유하는 거니까. 그렇게 이번 여행지가 정해졌다. 늘 그랬듯이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읽고 가면 좋을 만한 책을 찾아본다.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읽고 가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나는 가이드북처럼 책을 펼쳐본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영국에게는 어떤 자신감이 있다. 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도 충분히 괜찮으며, 그것이 커다란 변화의 작은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선명한 자신감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 만족하는 삶의 위치에 올라왔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영국이 가진 특이점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뮤지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말이다.

 

런던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로 운영을 한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지배로 부유한 나라가 된 영국이지만,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문화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들고 온(강탈한) 유물이나 작품들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예술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영국의 예술 지향점만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누구에게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영국은 제공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할 때면 늘 미술관 관람은 기대되는 일정 중 하나였고, 가장 어려운 일정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미리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방문할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았고(사실 방문 전에 한번 더 보려고 여행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갔다), 런던에 가면 그림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정여울 작가처럼 그런 감동이 나에게도 찾아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그림을 마주하고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심미안의 부족으로 체력의 한계를 핑계삼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술관에 걸린 큰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에어컨이 없는 실내는 더웠고, 사람은 많았고, 다리는 아팠다. 가장 큰 문제는 보고 또 봐도 어떻게 봐야 할 지 여전히 알기 어려웠다. 

 

우리 사회는 ‘같음’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똑 같은 차, 유행하는 옷을 사려 하고 같은 휴가지로 떠나고 싶어 한다. 모두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경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큰 회사에 취직하고 20~30평대의 아파트에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삶의 곡선은 만족스러운 일상의 궤도에 빨리 오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다. 남들이 다녀 놓아 부드럽고 단정히 다듬어진, 목적지가 자명한 길이다. 런더너들의 사고방식은 조금 다르다.

런던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유명한 그림이 참 많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만의 여행인가. 그냥 이 시간을 물 흘러가듯이 즐겨 보기로 했다. 런던의 중심에 머무르면서 그들만의 일상을 살아가는 런던의 사람들과, 나처럼 여행 온 사람들 사이에 섞여 시간을 보내본다. 길거리에도, 미술관에도, 휴식을 위해 들른 카페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한국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 다양함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인종도, 언어도, 종교도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든 다름은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다양성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의 인정을 기반으로 균형감 있는 판단을 하고 싶었던 나의 사고는 전혀 유연하지 못했음을, 여전히 노트북에 붙어있는 작은 다짐의 메모로만 존재했었다는 걸 알고 나니 경험이라는 렌즈가 얼마나 많은 것을 보게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작가는 ‘런던의 뮤지엄이 보이기 시작하면, 런던 여행의 클래스가 달라진다.’라고 했다. 런던의 뮤지엄을 보고 싶었던 나의 여행은 그 안에서 다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했다. 

도심 외곽 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런던 중심의 생활은 몹시 생경했다. 런던아이 바로 앞 숙소에서 지냈지만 런던 여행 7일차가 되어서야 남편과 아이는 런던아이에 탑승했다. 가족이 탄 런던아이가 하늘과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런던 하늘로 가져가본다. 런던 여행을 마칠 즈음에야 런던 여행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하늘이 참 예쁘다. 


2024.09.29.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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