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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Jun 07. 2024

어쩌다 팀장, 어쩌다 플로깅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19p


올해 우리 가족은 딸 아이의 제안으로 매주 주말이면 동네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덕분에 추운 겨울을 지나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봄을 마주하게 되었다. 매화나무에 달린 작은 꽃송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눈송이 팝콘이 내린 것 같다고 했더니, 겨우내 눈 구경을 못했던 아이는 이 봄에 눈이 펑펑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몽글몽글 피어있는 꽃망울도 봄위 추위를 견디며 늘 그랬듯이 하루하루 제 몫을 피어내고 있다.


연초가 되면 올 한해 추진할 중점 업무를 계획하고, 목표를 수립한다. 매년 해 오던 업무이긴 하지만 작년과 달라진 건 담당자가 아닌 팀장으로 올 한해 해야할 일을 계획하고 팀원들에게 그 일을 배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바쁜 시절, 이런 저런 속 시끄러운 일들은 연이어 일어났고, 해결하는 과정은 참 쉽지가 않다. 올 한해도 과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은 무슨 부채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다. 어쩌다 팀장이라는 명찰을 달게 된 것이 벌써 1년, 지난주 1박 2일 팀장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면서 CEO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교육에 참석하는 팀장님들에게 사장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팀장으로써 가지는 고민들은 꽤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었다. 조직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살짝 마음이 놓였다.


Q. "사장님, 아직도 팀장 역할이 버겁습니다. 제가 더 버텨야 할까요? 아니면 손 들어야 할까요?"


A. "쉽지 않다는 것, 잘 압니다. 팀원으로 일할 때와 팀장으로 일하는 건 너무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그 경험의 시간이 쌓여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의 이 과정도 도움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아, 물론 나는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싶으면 그때는 손 들어도 괜찮습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기회를 만들어 나가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의 대답을 원한다면, 한번 버텨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꽃망울이 하루하루 제 몫을 피어 내면서 꽃을 활짝 피우는 것처럼 내 안에서 작은 용기라는 어떤 것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지금의 반짝 추위도, 바람의 저항도 그대로 마주해야 하는 것처럼, 지금의 이 시간들이 매년 그렇게 나를 찾아오는 반짝 추위와 바람이지 않을까.


인생은 우리에게 엄마 기린과 같다. 때로 인생이 우리를 세게 걷어차면 우리는 고꾸라진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야만 하고, 또다시 걷어 채여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152P


일주일에 하루만 하던 플로깅은 봄이 되면서 이틀로 늘어났다. 흉내만 내는 플로깅 시간 안에서 아이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실제 우리의 생활은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동네를 걸으면서 평소 눈 여겨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허리를 숙이고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주우면서 어느새 쓰레기 봉투가 가득 채워진다. 아주 작은 담배꽁초를 주워 올리는 건 걱정이라는 단어를 감히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어쨌든 쓰레기를 치우는 것만큼이나 걱정을 치워버릴 수 있어 좋다. 오늘은 플로깅을 하는 날이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사는 법을 배우고, 여행해 나가면서 여행하는 법을 배운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엘리스는 토끼 굴 속으로 추락해야 한다. 생각과의 싸움으로 보내기에는 삶이 너무 짧다. 걱정은 상상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마음보다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마음의 무거움이 자신을 짓누르지 않도록. 240p


2024.03.23. 어쩌다 팀장을 하고 있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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