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다녀온 남편
남편은 평범한 외모의 40대 아저씨다.
이러나저러나 내 눈에는 백 점짜리 외모지만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남편의 눈밑지방이다.
눈밑의 지방 때문에 눈이 늘어져 보여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게 늘 아쉬웠다.
그러던 중 눈밑 지방 재배치 수술이라는 수술을 알게 됐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눈밑에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제안했다.
"나도 콤플렉스이긴 한데 수술이 너무 무서워서..."
"내 친구 K 있잖아. 걔도 했는데 10년은 어려 보이잖아. 수술은 아프지도 않대 만족도도 엄청 높고."
남편은 마음은 있지만 수술의 두려움이 큰 모양이었다. 나의 긴 설득에 못 이겨 남편이 드디어 오케이를 했다.
눈밑지방수술을 잘하는 신사동의 병원을 찾았다.
남편은 평소에는 호탕하고 대범한 성격이지만 엄살이 심하고 주사에 겁이 많은 편이다.
마취에 대해 상담을 하던 남편은 정말 너무 무서우니 수면마취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수술은 보통 국소마취를 하는데요... 마취를 해도 국소마취를 할 때 통증이 사라지는 정도예요. 만약 수면마취를 하시면 10만 원 추가입니다 ^^"
이 수술은 국소마취로도 충분하지만 눈에 마취 주사를 맞는 걸 너무나도 무서워하는 남편은 결국 남들은 안하는 수면마취를 추가했다.수면마취에서 깨어도 수술은 이어진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수술날이 다가왔다.
남편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이상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웅~우웅우웅~우웅"
분명 남편의 목소리다. 비상사태 사이렌이 울리듯 남편은 힘차게 사이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혹시 마취에서 못 깨어나는 건가...!?
저런 이상한 소리는 왜 내는 거지...!?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하다.
아... 내가 너무 무리하게 수술을 시켰나 보다.
마취에서 안 깨나 봐!! 어쩌지...
당혹스러웠다.
"J 씨! 소리 안 내셔도 돼요. 깨어나세요"
"J 씨! 이제 깨어나세요!"
몇 분 간의 괴상한 소리가 이어지더니 마침내 소리가 멎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들리는 어눌한 남편의 말소리.
"선생님 저 우주를 경험하고 왔어요."
"블랙홀에 다녀왔어요?"
"네 온갖 도형이 저를 향해 빙빙 돌더니 깊은 곳으로 빠져들면서. 진짜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남편은 말이 많아졌다.
"제가 아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세요?"
수술 중인 의사에게 마취 중 겪은 일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의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저렇게 수술 중에 말을 많이 하다니 내가 아는 남편이 아니다.
괜찮은 걸까.
얼마나 지났을까. 초조하게 맘 졸이며 남편을 기다렸다.
드디어 남편이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돌아왔다.
"나 우주를 다녀왔어. 다시 못 돌아오는 줄 알았어. 그냥 잠드는 게 아니었어. 블랙홀로 빠졌는데 진짜 공포 그 자체였어."
우리는 수술이 잘되고 안되고는 상관이 없었다.
무사히 마취에서 깨어나 돌아온 남편이 얼마나 반갑던지. 내키지 않아 했는데 내가 무리한 설득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성형외과에서는'케타민'이라는 약품을 마취제로 쓰는데 안전성이 보장되는 약품이지만 그 악품은 현실과 분리되는 듯한 해리증상이 부작용으로 올 수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해리증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겪는데 아주 기분이 좋게 꿈나라 무지개나라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편처럼 블랙홀로 빠져버려 시간이 멈춘듯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마 극도로 긴장한 남편은 그 부작용을 제대로 겪은 듯했다.
남편은 지방 재배치가 잘 되어 10년은 젊어 보이는 외모로 다시 태어났다.
이건 남편이 우주를 다녀온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