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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11. 2024

20대와 30대의 열정은 다를까

잔잔한 열정, 성숙의 과정    

나는 꽤 열정적인 사람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었다. 늘 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소망하던 무언가를 이루고 난 후에도 내 욕망은 또 다른 스텝을 밟고 위를 향해 올라가게 했다. 그래서 열정이 넘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욕망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세상은 열정만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게끔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기업과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는 동료, 선배들을 많이 봤다. 두 조직은 특성이 전혀 다른 만큼 그 열정의 정도와 강도에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조직인 공기업이라고 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수는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내는 것 외에도 조직의 성과와 목표 달성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동료, 선배들이 있기에 보고 배우면서 일의 보람과 성취를 처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 때만큼의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많은 사람의 이야기들을 담고, 새로운 일들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치기 어린 열정은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30대인 지금의 나도 여전히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궁금하고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일들도 남아있지만 그 열정의 온도는 미지근해졌다.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정돈되고 차분해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무작정 열정적이었던 어린 시절보다 현실적인 시각이 더해지고 나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앞뒤 상황과 맥락을 가늠해 본다. 이 일을 했을 때,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인지한 순간, '나도 영락없이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을 할 때 적은 리소스를 투입하여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직장인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효율을 따지기 보다 타오르는 열정을 주체할 바를 몰라 무작정 덤비고 봤던 옛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최근에 좋아하게 된 가수가 있다. 20대 초반의 싱어송라이터다. 랩 경연대회 프로그램 참가자로 출연해 첫 등장씬에서 개성 넘치는 랩을 뱉으며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사실 나는 프로그램 방영 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는데 우연히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무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 처음 보는 가수인데 되게 여유롭게 무대를 하네. 노래도 좋고.. 누구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찾아보게 되었다. 


원래 연예인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인 나는 거의 10살이 어린 가수의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약간 민망함이 느껴졌달까.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 그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직접 쓴 가사를 곱씹어 보게 되고 가사를 쓴 스토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경험들 속에서 가사에 녹여 쓴 단어나 표현들에 묻어나는 예술적 영감에 감탄했다. 곡 속에 담긴 생각의 깊이와 비유, 가치관들이 엿보였기에 더욱 그에게 애정이 갔다. 


그의 무대 영상에서 누군가가 '자신이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둘 다 너무 잘한다'라고 달아놓은 댓글을 봤다.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공감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해본 나로서는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잘 해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은 잘하지 못하더라도 온전히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그가 가진 열정이 부러웠다. 20대가 30대보다 더 열정적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의 20대를 떠올려보면 그랬던 것도 같고 20대는 30대보다 불안정한 시기이지만 패기와 열정, 체력은 30대를 뛰어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열정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반론의 여지는 많다. '나이는 숫자의 불과하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처럼 50대, 60대가 되어서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사람, 그 꿈에 도전해서 이루어낸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연 젊은 사람들보다 열정이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식고 있는 나의 열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20대와 30대의 열정은 다르지 않다. 세대와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은한 불꽃처럼 지속적인 열정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다가오는 것들,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 일들에 대해 무작정 불타오르기보다 천천히 음미하며 곱씹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뜨거운 열정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품었다 태워버릴지 모른다. 미지근하지만 오랫동안 따스함을 내는 열정은 불태워진 남은 잔여들을 정리하고 주위를 데우기에 좋은 시간이다. 적당한 온도의 지금은 차분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나와 주변을 밝혀주고 있다. 성숙이라고 하겠다.


언젠가는 다시 불타오르고 차갑게 식어가고를 반복할 것이다. 나만의 온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담금질을 하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지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번 내 열정을 부을 곳이 생긴다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잔잔한 열정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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