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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pr 01. 2024

저는 성실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초등학생의 '천원짜리 진심'

우리는 누군가의 선한 행동을 볼 때 마음이 따스해지는 걸 느낀다. 그리고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우연히 JTBC 뉴스룸의 한 코너인 '이상엽의 몽글터뷰'에서 소개된 한 초등학생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았다. 몽글터뷰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부글부글'한 이슈를 쫓아 깊숙이 취재하는 '부글터뷰'를 이어 동시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몽글몽글'한 이슈를 전하는 코너다.






무인카페에 한 초등학생이 들어선다. 아이는 자몽에이드 버튼을 누르고 천원짜리 세 장을 꺼내 자판기에 넣는다. 이제 컵에 음료와 얼음을 받을 차례다. 그런데 실수로 얼음 레버를 잘못 누른다. 무인카페는 분리형 머신을 두고 있어 컵을 꺼내 제빙기에 올려놓고 얼음을 받아야 하는데 초등학생은 컵을 꺼내지 않고 그냥 레버를 누른 것이다. 얼음이 쏟아지자 손으로 막고 휴지를 들었다 놨다 아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제야 컵을 꺼내고 음료만 받은 채 저을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가버린다. 아이가 자리를 떠나고 몇 시간 뒤 무인카페 사장이 쓰레기통을 뒤진다. 뭔가 찾더니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상엽 기자는 무인카페 사장을 찾아가 그를 인터뷰했다. 사장은 CCTV로 초등학생이 음료를 쏟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1시간 후, 그 아이가 다시 왔다가 나가는 걸 본다. '또 왔네?', '왜지?' 사장은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카메라에 꾸벅 인사를 한다. 쪽지를 가리키듯이 제스처를 취하고 '여기다 둘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몇 분 지나자 한 손님이 들어와 쓰레기를 치운다. 그런데 실수로 편지를 버린다. 그래서 사장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쪽지를 찾아낸다. 보니까 '사장님께 쓴 편지'라고 쓰여있다. 편지엔 아이의 진심이 담겼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도움 되길 바랍니다.

장사 오래오래 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사장은 기특함에 울컥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가게를 영업하다 보니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고 했는데 이런 쪽지를 받고 나니까 그 마음이 사그라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거 보면서 감동이 컸던 것 같아요. 이런 친구들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 요즘"


사장은 3년간 무인카페를 영업하면서 서비스를 악용하거나 자기 편의에만 맞춰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동안 지쳐왔던 마음을 보상받는 것 같은 쪽지라고 했다.


아이에게 마음을 전했다. '저 무인카페 사장인데 어제 편지 잘 받았다, 참 고마운 마음에서 연락하게 됐다. 제가 영업하는 그날까지 음료를 무료로 주겠다'라고. 다음날 아이 어머니께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음료는 정중하게 거절하고는 먼저 그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달했다.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직접 만나 이야길 들었다. 아이는 자기소개를 한 후 죄송하단 말부터 꺼냈다.

"사장님 다음부터는 얼음을 쏟지 않겠습니다. 만약 얼음을 쏟더라도 치우겠습니다."

아이는 무인카페를 그날 처음 갔다.

"돈을 넣고 사용하려고 하는데 무인카페를 잘 안 와봐서 사용법을 잘 몰라서 컵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레버를 눌렀다가 쏟아버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카페를 나온 뒤 공부방에서 혼자 편지를 썼다.

"그때 치우고 갔어야 하는 게 맞았지만 학원 갈 시간이 다 돼서 그냥 갔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너무 마음에 걸려서"

불편한 마음에 학원이 끝나자마자 무인카페로 달려갔다. 아이의 일주일 용돈은 5천 원. 음료를 사고 남은 돈을 편지에 넣어뒀다. 이런 일을 집에 말하지 않았고 부모는 기사가 난 뒤에야 알게 됐다.


아이는 장사를 오래 해달라고도 했는데 이유를 묻자 천진난만한 답이 돌아왔다.

"거기 자몽에이드를 아이스초코가 맛있어요. 그리고 (커피)콩빵도 엄청 맛있고"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사장은 대답했다.

"지금처럼 자라면 되죠.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줄 알고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베풀 줄도 알고"


'00이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성실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더 성숙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죠."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진지했고 확신에 찬 어투였다.







영상이 끝나고도 여운이 길게 남았다. 아이의 착한 마음과 지혜로운 처신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생의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른이 보아도 아이의 행동은 멋졌고 아이는 똑똑하고 겸손했다. 얼음을 쏟았을 때 당황스럽고 놀랐을 텐데 어떻게든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려는 모습은 배울만 하다. 아이가 지금처럼 고운 심성과 태도를 가지고 성장한다면 '성실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분명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의 때가 묻을수록 무인카페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고 그러한 현실에 적응되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각기 다른 상황에서 느낀 누군가에 대한 실망이 하나둘씩 쌓여 모래성을 이룬다. 파도 한번 세게 치면 흩어져버릴 수 있었던 모래성은 점점 단단한 콘크리트벽으로 바뀌어 갔다. 사실은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인데, 원래 현실에 적응해 살아가는 거란 핑계로 나도 모르게 벽을 쌓아갔다. 그 벽은 의도대로 나에게 생기는 생채기를 줄여주었지만 가끔은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했고 사회성이라는 가면을 쓴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이제 조금씩 벽을 허물고 가면을 벗으려는 노력을 할 때다. 개개인이 모두 저마다의 모래성을 쌓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아마 넓은 바다에서 각자의 섬을 이루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페르소나 대신,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을 지닌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런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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