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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pr 03. 2024

비스듬해진 사이도 어쩔 수 없나 이젠

관계의 유효기간

계절이 바뀔 때 꼭 하는 일 중 하나는 옷장 정리다. 언제 추운 겨울이었냐는 듯 벚꽃은 만개했고 완연한 봄이 다가왔다. 따뜻해진 날씨에 맞게 옷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멀쩡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맞지 않는 옷들부터 두 해만 입어도 보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니트들, 내게 맞는 것이 뭐지 몰라 남들 따라 샀던 옷도 있었다. 그래도 내 삶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이라 잘 버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모두 정리해야겠지. 두꺼운 점퍼는 옷장 깊숙이 넣었고 몇몇 옷은 버렸고 자주 입는 옷들로 옷장을 채웠다.


인간 관계도 그렇다. 옷도 시간이 지나면 안 맞는데 인연이라고 다를까. 점차 주변이 정리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안 맞는 관계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실망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시행착오 덕분에 내게 진짜 편한 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은 외부 관계에 치중하기보다 나 자신의 중심에 점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마치 잘 맞는 옷을 입듯 편안한 관계만 남는다는 것.






나에겐 15년 지기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우린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함께 야자하고 매점 가고 밤 11시에 심자를 마치고 같이 하교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짝사랑했던 남자애의 뒤를 몰래 밟으며 까르르 댔고 숨어서 마음 졸이는 친구가 너무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우린 수능을 쳤고 20살 기념으로 함께 술을 마셨으며 운이 좋게도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공은 달랐지만 대학교에 가서도 자주 만났고 그 시절의 각자의 고민들을 공유했다. 털어놓는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내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우린 취업준비 시기도 비슷했고, 첫 입사일도 한 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좋은 일도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사회초년생들이 으레 겪는 성장통을 우리도 겪어야만 했다. 친구의 얘길 듣고 내 얘길 하며 느낀 것은 다른 회사지만 어떤 면에서 상사들은 다 비슷했고 조직이 굴러가는 방식도 큰 차이가 없었다. '내 선배가 거기도 있네'와 같은 말을 하며 우린 막막한 그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 이겨냈다기보단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해결되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우린 자주 함께 여행했다. 바쁜 일이 끝나거나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땐 꼭 어딘가로 떠났다. 호기심이 많은 친구와 나는 둘 다 여행을 좋아했다. 입사 3개월 차, 수학여행 이후 첫 제주도여행을 갔다. 배를 타고 우도에 처음 갔고 전기 자동차를 빌려 타다 살짝 접촉사고가 났다. 전기 자동차는 마치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웠지만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운전이 가능했다. 친구는 운전면허증이 없었기에 운전자는 나. 하지만 나도 장롱면허였던 데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라 조금 불안했다. 섬의 1/3 정도 돌았을까. 속도 조절에 실패해 앞 차와 살짝 부딪힌 것이다. 쿵 소리가 나서 내려서 보니 앞 차에 선명히 긁힌 자국이 생겨버렸다. 당황한 우리는 대여점에 연락해 조치를 취했고 보험 처리가 안 돼 몇 십만 원의 수리비를 지불해야만 했다. 사고난 차 대신  자전거를 빌려주셔서 우도를 마저 돌아볼 수 있었지만 기분은 다운되었고 나는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친구는 별 다른 말없이 수리비의 절반을 나에게 주며 그래도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어찌나 고맙던지..


1년 후 우리는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베트남 무이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친구의 원픽이었다. 작은 어촌마을인 무이네는 사막 지프투어를 하며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도 유명 관광지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에 가고 싶었기에 우리는 떠나기 전부터 리조트와 투어 예약으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지금은 무이네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함께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말은 예외 없이 우리에게도 해당되었다. 4박 5일이라는 시간 동안 밤낮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 알지 못했던 면면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공통점만큼이나 얼마나 다른 점이 있었는지 발견하게 되는 순간마다 조금 놀랐고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도.  


그 다른 점은 생각보다 다양했는데 가령, 우린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너무 달랐다. 내 경우는 멋진 풍경 앞에 놓이거나 색다른 맛집에 갔을 때 사진을 한 두 장 찍고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 순간을 눈에 가득 담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친구는 멋진 풍경을 최대한 카메라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카메라에 아름다운 광경을 사실적으로 또는 더 예쁘게 담아냈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 사막투어 때 함께 ATV를 타고 빠른 속도로 사막을 내려오는 와중에도 핸드폰으로 영상 촬영을 하고 있는 걸 보고 나는 내심 놀랐다. 놀란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친구에게는 그 순간을 담아가는 것이 기쁨이자 미래의 즐거움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인물을 담을 때도 그랬다. 나는 왠지 모를 어색함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예쁜 경치를 배경으로 두었을 땐 최대한 빠르게 몇 컷 안에 사진 촬영을 끝낸다. 예쁜 사진을 못 담았다면 잠깐 아쉬워하다 나중에 혼자 보며 큭큭대는 타입이라면 친구는 소위 인생샷을 찍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다. 대개 친구 인생샷을 위한 촬영은 내가 담당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다'는 해외여행의 특성상 친구의 인생샷을 향한 열정은 계속되었고 그게 며칠간 반복되니 나도 사람인지라 지쳐갔다.


그리고 거대한 사구로 유명한 무이네의 레드샌듄에서 피크에 다다랐다. 래드샌듄은 붉은색의 고운 모래가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투어의 마지막 코스라 체력이 소진되어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사막을 걷고 있는데 친구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십 장을 찍고서도 요구사항은 계속되었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사진작가로 동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주지 않는 것 같아 야속함이 들었고, 이러한 나의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이후 내 기분은 묘하게 가라앉았고 친구는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 우린 근처 해산물 식당에서 랍스터를 먹으면서 분위기를 풀 수 있었다.


친구와 나는 여행에서의 우선순위도 달랐다. 우린 넓은 숲 속에 둘러싸여 있는 리조트에 묵었는데 리조트 투숙객만 이용가능한 바다와 수영장이 있었고 1회 마사지 이용권이 숙박에 포함되어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은 나에게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화장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온몸이 노곤해지는 마사지는 받아야 했다. '시간이 되면 같이 마사지를 받기'로 했던 날 아침, 친구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마사지받으러 갈 거야?'라고 묻자 시간이 빠듯해서 자기는 못 갈 같으니 다녀오라고 했다. 같이 마사지를 받고 싶었던 나는 아쉬웠지만 대충 세수만 하고 마사지샵으로 달려갔다. 40분 동안 마사지를 받으며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선크림과 비비크림, 입술만 발랐다. 그리고는 우린 바다를 바라보며 조식을 먹었다. 조식은 유일하게 우리 둘에게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큰 마찰은 없었지만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렇게나 다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행을 가지 않았을 땐 하루 중 몇 시간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다를 떨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놓인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대화는 서로의 일상과 근황을 공유하는 정도에 그쳤다. 아니면 과거의 추억 회상이었고 미래에 대한 상상이었다. 그 여행을 계기로 나는 친구에게 전혀 실망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서로를 좋아했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의 솔직한 마음을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전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왠지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대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왠지 꺼려졌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지난 여행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아쉬웠던 마음에 대해. 친구는 '미리 말하지 그랬냐'면서 나에게 사과를 했고 앞으로 자신도 조심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일로 우리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 역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와의 여행은 2번 정도 더 갔다. 한 번은 두 번째 제주도, 또 한 번은 거제도였다. 여행 기간이 짧으면 그럭저럭 잘 다녀올 수 있었지만 기간이 긴 여행일수록 첫 해외여행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고, 또 다른 사건을 계기로 나는 또 한 번 실망하게 되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이 친구와 여행을 또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휴가 기간이 와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함께 여행하는 것을 피해왔다. 예전처럼 우린 종종 만났지만 그건 일상의 일부에서 만이었다. 이런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충만하다기보다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우린 그때 알았는지도 모른다,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긴 힘들다는 것을.


관계에도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는 관계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 처음엔 같은 지점을 보고 있어 서로 한 점에서 만났다가 점이 교차한 이후로 서로 다른 점을 향해 가는 형태도 있다. 그렇게 꺾인 선으로 계속 나아간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계기로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관계의 방향은 어느 누구의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유기적인 존재이기에 환경과 가치관이 변하면서 자연스레 변한다. 그 변화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건 누군가의 잘못도, 누군가가 실망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소멸된 관계 대신 나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또 다른 선을 만난다. 우린 새로운 평행선들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






그 친구와는 조금씩 연락이 뜸해지다 최근에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이 올지, 아니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지. 그렇게 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비스듬해진 사이가 된 건 그것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옷과 인연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옷장에 아무리 옷이 쌓여 있어도, 유독 매일 꺼내 입게 되는 그런 그런 옷들이 있다. 근데 이런 옷은 사고 싶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다. 입던 옷이 해져서 새로 사야겠다 싶어 옷가게를 가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미묘하게 어딘가 달라서 손이 안 간다. 게다가 '사야지' 마음먹고 간 날엔 절대 마음에 안 드는 옷이 눈에 띄는 것도 항상 그렇다. 이런 옷은 꼭 예상치 못할 때, 길을 가다가 운명처럼 눈에 들어온다. 홀리듯이 들어가 입어보면 처음 본 옷이데도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걸쳐진다. 그렇게 예상에 없는 지출을 하지만 그래도 사서 잘 입었으면 됐지, 합리화를 해 본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안 돌아오기 때문이다.


옷 쇼핑과 마찬가지로 평생 갈 인연도 구한다고 구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마주쳤는데 처음부터 원래 내 사람이었던 것처럼 편안한 사람이 있다. 꼭 오래 만났다고 잘 맞고 잘 아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하면 옷이 안 맞게 되듯 옛 인연이 언제까지나 잘 맞지는 않다. 옷도 해지면 정리해야 하는데, 사람 관계라고 다를까.


물론 오래 지속된 시간이 주는 묵직함도 좋다. 하지만 어릴 땐 사실 뭐가 나와 잘 맞는 질 모르니 멋모르고 아무거나 입어보고 맞춰본 것들도 많다. 살면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내게 어울리는 것만 곁에 두게 되는 것 같다. 옷도, 사람도.


그러니 과거 인연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또 다가올 인연에 너무 마음을 닫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둔 느슨한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타인은 타인일 뿐 결국 중요한 건 내 중심을 잘 지키는 일이다. 비워낸 곳엔 앞으로 또 다른 시행착오가 쌓일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떠랴, 채우고 비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인 걸. 계속 찾는 옷들만 입게 되듯 어차피 남을 것은 구멍이 나서 해질 때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비워진 옷장엔 정말 좋아하고 잘 맞는 것들로 내 세상을 채워가고 싶다. 좋은 사람들만 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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