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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Mar 09. 2021

돈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는 위험하다

나는 위선적이었다

나는 위선적이었다.



나는 20대까지는 돈에 대해 집착하고 매사에 돈, 돈 하는 사람들을 경멸했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증권사에 입사했다. 대학생 때부터 주식 투자를 계속하면서 수익도 잘 내다가 아예 증권사로 입사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 꺼지고 증시가 회복해서 연일 사상 최고가를 깨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증권사는 투기꾼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기에 안타까웠다. 왜 저렇게 돈을 밝히나 싶었다. 친구는 그런 잣대로 평가하면서 나도 돈을 벌고 싶었다. 2007년에 군대를 전역하기 직전 나도 은행에 증권 계좌를 만들러 갔다. 

주식 계좌는 왜 만들려고 하세요?


은행 창구의 직원은 딱 봐도 까까머리의 군인 같은 사람이 와서 주식 계좌를 만든다고 하니 물어본 것 같았다. 

돈 벌려고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은행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그 직원의 반응이 이해되지만 당시에는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내가 내 계좌 만든다는데 왜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나오나 싶었다. 여기서부터 이미 위선적이다. 친구가 증권사 가는 것은 못마땅해 하면서 나는 돈 벌려고 주식 계좌를 만들러 갔다. 


종잣돈은 많이 없었다. 학생이었고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과외비, 아르바이트, 용돈으로 꾸준히 모아 약 300만 원 정도의 돈이 있었다. 


계좌를 만들고 당연히 주식 관련 공부는 하지 않았다. 책 같은 건 사지도 않았다.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고 샀다 팔았다를 반복했다. 증권사 다니는 그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뭐 좋은 정보 없냐고. 그 친구는 가끔 종목만 대충 알려줬다. 친구가 알려주는 종목을 사니 나름 수익이 나기도 했다. 수익이 조금 나면 홀라당 팔았다. 그러다가 고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출처 : 키움증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주가는 반 토막 났다. 나는 돈이 얼마 없었으니 별로 관심도 없었다.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쌤통이라는 듯이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 시장은 허상이라고 했잖아. 
지금 금융위기 터졌잖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친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또 위선적이었다. 그냥 친구가 돈을 잘 버는 것이 부러웠을 것이다. 나는 고시 공부하고 있는데 친구는 증권사에 입사해서 돈을 잘 벌고 있었으니 배가 아팠을 것이다. 그러다가 금융위기가 터지니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아서 돈을 잃지 않은 내가 위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더디긴 했지만 세계 경기는 점차 안정을 찾고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친구가 말했다. 500만 원으로 시작해서 50억 원을 만들었었다고. 대박! 부러웠다. 50억 원이라니! 그것도 500만 원으로 시작해서 50억 원까지 만들었었다니! 바로 은퇴해도 되는 돈이었다. 


근데 그 50억 원이 다시 1억 원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친구를 엄청 혼냈다. 

50억 원이 되면 10억 원이라도 빼서 집을 사야지!
그걸 왜 그냥 가지고 있어?


친구는 주식 계좌에 있는 돈은 사이버 머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어느 정도 금액 이상이 되면 별로 감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만 더 튀기면 100억 원이 될 텐데 멈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가 너무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탐욕스럽다고 생각했다. 50억 원이면 충분한데 굳이 100억 원까지 필요할까 싶었다. 안타까웠다. 


위선적인 생각이 또 들었다. 돈에 집착하는 친구가 안타까우면서도 엄청 부러웠다. 50억 원이라는 숫자를 봤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러웠다. 1억 원이라도 가지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당시 내 통장에는 300만 원 정도밖에 없었다.


어느 시기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친구에게 종목을 하나 추천받았다. ㅇㅇ저축은행이었다. 내가 가진 거의 전 재산을 투자(투기) 했다. 조금 지나니 수익이 났다. 매도는 하지 않았다. 주가가 계속 올라가길래 잊어버렸다. 고시 공부하느라, 고시에 실패하고 대학원까지 가느라 주식 계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저축은행들이 문제였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갑자기 내 주식 계좌가 생각났다. 계좌를 열어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ㅇㅇ은행은 0원이 되어 있었다. 

상장폐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10년간 피땀 흘려 모은 내 전 재산이 0원이 되어 있었다. 친구에게 따졌다. 왜 안 알려줬냐고. 그때 사라고 했던 ㅇㅇ저축은행 팔라고 왜 얘기 안 해줬냐고. 친구의 답이 가관이었다.


그거 안 팔았어? 
사고 나서 좀 올랐을 때 바로 팔았어야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저렇게 말하다니. 내 친구 때문에 그동안 모은 소중한 내 돈이 전부 없어졌다. 지금이야 300만 원도 안 되는 돈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달 월급 정도이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나의 전 재산이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며 지지리 궁상을 떨어가며 모은 전 재산이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도 내 돈을 지켜 주지 않았다. 결국 내 돈은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위선적이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돈 때문에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면서도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20대~30대 초반의 나를 돌아보니 위선적이었다. 살다 보니 돈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돈으로 대부분 해결이 가능하다. 내가 겪은 아픔들은 대부분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돈이 많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다.


돈이 없어도 된다는 사람들은 위선적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질문을 해보면 바로 알 것이다.

왼쪽 길로 가시면 100만 원,  
오른쪽 길로 가시면 100억 원 드릴게요. 
어느 쪽으로 가실래요?
집 한 채만 가지실래요? 
10채 가지실래요?


돈은 많으면 좋다. 없는 것보다 많은 것이 확실히 좋다. 일단 많이 가져나 보고 이야기하자.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 돈 많은 사람들은 불행할 것이라는 것은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제발 20대의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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