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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Dec 27. 2020

신은 같은 곳을 세 번이나 때리셨다

세 번의 어깨 부상

나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SKY 대학 진학도 실패했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 3년간 준비했던 고시에도 실패했다. 

실패한 인생


군 입대 전 아버지께 들었던 말이다. 고시는 이제 그만하기로 했고 군 입대는 5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조금 있었다. 얼마 만에 가져오는 자유인지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무늬만 고시생이긴 했지만 고시 준비기간 동안 못한 것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키장에 갔다. 스노 보드를 처음 배웠다. 강사에게 수업을 몇 번 듣고 타기 시작했다. 스노 보드는 처음 배우면 넘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당시 강사는 넘어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냥 바로 타기 시작했다. 


당연히 많이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계속 짚으니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또 넘어지려는 찰나 도저히 손목이 아파서 안 될 것 같았다.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다. 왼쪽 어깨가 뒤로 돌아갔다. 내 어깨가 왜 저기에 가 있나 싶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어깨를 최대한 돌려보려고 했다. 툭! 하는 느낌과 함께 어깨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통증은 여전히 심각했다. 처음 간 스키장인데 패트롤에 실려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그냥 살짝 삐끗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셨다. 팔이 처음 빠진 사람은 그걸 혼자 끼워 넣을 수 없다고 한다. 이상했다. 분명 나는 팔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근데 의사 선생님은 아닐 거라고 하셨다. 엑스레이로는 어깨 탈구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니 그냥 물리치료만 받고 말았다. 젊어서 그랬는지 몇 주 정도 치료를 받으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첫 번째 부상 이후 두 달 정도 지났다. 농구를 하다가 같은 어깨를 또 다쳤다. 리바운드를 하려고 공중에 떴는데 같이 공을 잡은 상대가 공을 확 잡아당길 때 왼쪽 어깨가 또 뒤로 돌아갔다. 그 상대는 내 동생이었다.     

출처 : 뉴시스

악! 소리 한 번 지르고 농구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너무 아파서 그 이후로는 소리도 못 질렀다. 다들 놀랬다. 쟤 어깨가 왜 저기 가 있나 싶었나 보다. 지난번 스키장에서와 같이 다시 어깨를 돌리려고 시도했다. 내 어깨는 거기에 있으면 안 되니까.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났다. 통증은 여전히 심했지만 어깨가 정상적인 위치로 오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 의사는 또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탈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빠진 어깨는 혼자 끼워 넣을 수 없다고 한다.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돌려보냈다.     


3일 뒤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갔다. 동생은 여자친구와 함께 갈 곳이 있다며 나한테 본인 스쿠터를 운전해서 집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3일 전에 어깨를 다쳤고 스쿠터는 진짜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정말 천천히 몰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 정문 앞에서 U턴을 하고 있는데 차선을 잘못 진입한 승용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며 나를 들이받았다. 정말 재수 없게 버스와 내가 겹쳐졌고 승용차도 눈길에 살짝 미끄러졌다. 운전자가 당황하는 사이 나를 제대로 못 보고 들이받은 것이다. 하필 3일 전에 다친 그 왼쪽 어깨를 정통으로 들이받았다.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깨가 끊어지는 느낌과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 운전자가 급하게 내려 나와 스쿠터를 끌고 인도로 갔다.      

병원에 가시죠.


당황한 운전자는 내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어깨는 아프고 머리는 어지럽고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정말 황당한 생각을 한다.     


‘부모님이 아시면 혼날 텐데...’     


3일 전에 어깨를 다쳐서 어차피 병원에 다니고 있으니 내일 병원에 가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냥 사고처리 없이 마무리하고 싶었다. 정말 멍청했다. 운전자는 내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를 찍어주고 집에 왔다. 여기서 더 멍청했던 것은 번호만 찍어주고 ‘통화’ 버튼을 눌러서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그 운전자는 그날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살다 살다 뺑소니까지 당했다.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어떻게 또 스쿠터는 끌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 고통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밤새 신음했다. 잠도 못 자고 있다가 날이 밝자마자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그제야 MRI를 찍자고 했다. MRI 결과를 받아보니 스키장과 농구장에서 내 어깨는 탈골된 것이 맞았다고 한다. 교통사고로는 뼈가 손상되었단다. 세 달 사이에 내 왼쪽 어깨는 완전 박살이 났다. 두 번의 탈골과 한 번의 교통사고. 같은 어깨를 세 번이나 연속으로 다쳤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대학 실패, 고시 실패도 모자라서 이제는 어깨 병신까지 만드십니까. 


왜 이런 시련과 고통을 나에게 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싶었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정신적 고통도 모자라 육체적 고통까지 같이 주는지 화가 났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하면 군대는 면제라고 하셨다. 입대는 세 달 뒤였다. 이때 또 아버지가 등장하신다. 아버지는 나를 고위 공무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계셨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

3년 동안 고시를 하다가 실패한 내게 ‘실패한 인생’이라고 하셨던 분이다. 실패한 인생한테 아직까지 ‘훌륭한 사람’을 왜 기대하는지 몰랐다. 실패한 인생, 훌륭한 사람. 그런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가? 두 번이나 어깨가 탈골되고 교통사고로 팔도 못 움직이는 아들을 아버지는 군대에 밀어 넣으셨다. 수술이 필요한 팔인데 물리치료만 받으니 당연히 회복은 거의 되지 않았다. 그렇게 팔을 움직이지도 못 하는 상태로 나는 군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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