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을 엉뚱한 곳에 쓰다
두 번의 시도 끝에 SKY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두 번째 수능시험도 실패했다. 부모님께서 행정고시를 권하셨다. 행정고시 합격은 부모님의 꿈이었다. 두 분 모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을 가지 못했다. 특히 아버지는 장남이어서 동생들의 학비 마련에 당신의 월급을 모두 보탰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셨다. 공부는 잘하셨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학생회장까지 하는 엘리트였다고 한다. 아버지도 전교 항상 전교 2등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분들이 돈 때문에 대학을 못 갔고 고시는 볼 기회조차 없었으니 굉장히 아쉬우셨나 보다. 장남인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는데 SKY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바로 행정고시를 권하셨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학벌 세탁할 수 있다.
행정고시를 합격해서 5급 사무관으로 시작하면 국가에서 해외 유학도 보내준다.
이런 말로 나를 계속 꼬드겼다. 나는 원래 고시보다는 해외 유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박사 학위도 받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집안이 유학을 보내줄 형편이 안 되니 부모님 말씀을 따라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고시는 하루에 최소 12~14시간씩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고시 준비를 막 시작하려는 무렵 인생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생겼다. 다행히(?) 고시 준비를 같이 시작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이 여자친구가 툭하면 헤어지자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일로 화를 냈다.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얻어터졌다. 첫 번째 여자친구이니 얼마나 휘둘렸을까. 당연히 공부가 안 됐다.
원래도 성격이 까칠한 친구 같았는데 고시 공부까지 하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걸 모두 나한테 풀어낸 것 같다. 무차별 폭격을 맞고 결국 헤어짐을 당한 나는 고시원 방으로 가서 게임을 했다. 당시 엄청나게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브루드 워)라는 게임이었다. 밤새 했다. 그래야 아무 생각이 안 나니까. 여자친구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다. 공부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졌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해댔다. 승률 80%가 넘는 아이디가 2개나 생겼다. 하나는 나중에 해킹까지 당했다. 무슨 프로게이머처럼 미친 듯이 게임을 했다. 나중에 내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얼마나 시간을 쓴 것인지 계산을 해봤다.
1 게임당 평균 30분
약 25,000게임(10,000승 2,500패 아이디 2개, 승률 80%)
25,000게임 x 0.5시간 = 12,500시간
1만 시간의 법칙!
이 엄청난 법칙을 게임에 적용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준프로 가까이 올라갔던 것이다.
여자친구와 화해하면 화해 기념으로 같이 또 놀러 갔다. 고시생이 연애하는 것도 모자라 게임은 물론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이게 무슨 고시생인가. 무늬만 고시생이었다. 21살부터 휴학까지 하면서 3년을 이렇게 보냈다. 당연히 고시는 1차에서 세 번 모두 다 떨어졌다. 2차 시험장은 가보지도 못했다. 군대도 안 갔다 왔고 그렇다고 고시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대학을 제대로 다닌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로 그렇게 나는 24살이 되었다.
실패한 인생
군 입대를 앞두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했던 말이다. 정말 슬펐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안의 기대주였는데 대학 입시 실패, 고시 실패. 계속 실패만 했다.
1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내가 외고에 가서 내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을 보고 동생은 일반 남자고등학교에 보냈다. 고모부께서 선생님으로 계셨던 남학교였다. 고모부 덕분에 동생은 관리를 잘 받았다. 재수를 하긴 했지만 서울대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내가 고시를 시작하고 2년 차가 되던 해였다. 집안 친척들이 모이면 온통 동생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서울대 전액 장학생, 대학 전공과 1등. 동생은 승승장구했다. 부모님도 이제 누굴 만나도 동생 이야기만 하셨다.
3년 간 고시를 하며 나는 고향집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보다 실력이 떨어졌던 동생과 비교되는 것이 싫었다. 온통 동생 자랑과 칭찬만 하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이 싫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래도 인정하기 싫었다. 알량한 자존심만 있어서 점점 가족들과 멀어졌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었으니까.
3년의 고시 생활은 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2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앞둔 패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