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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둥빠 Dec 28. 2020

실패한 인생, 논산 훈련소에서의 좌절과 눈물

변화의 시작

나는 카투사로 입대했다.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미군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지휘체계 하에 훈련받고 미군과 함께 생활하지만, 인사권은 대한민국 육군이 가지고 있다. 즉, 휴가, 승진 등은 한국군과 동일하다.     

 

사실 군대는 어디나 힘들다. 다들 자기가 있던 부대가 가장 힘들다고 피를 토하며 이야기하지 않나. 카투사도 힘들다. 실제로 미군과 함께 훈련을 해보면 진짜 제대로 한다. 흔히 말하는 FM이다. 한국군보다 더 체계적이고 제대로 훈련한다. 그런 점은 선진 시스템이고 본받을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미군을 엄청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객관적으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출처 : 대한민국 육군 (ROK ARMY)

카투사는 다른 일반 한국군 훈련병과 함께 5주간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카투사 교육대(KTA; 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따로 3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 나는 세 번의 어깨 부상으로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을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었다. 팔굽혀 펴기는커녕 걸을 때 앞뒤로 팔을 흔드는 것도 못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훈련을 받았다. 다른 훈련은 열외 없이 잘 버텼는데 포복이 문제였다. 포복은 팔에 바로 체중이 실리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결국 옆으로 기는 포복할 때 열외를 했다.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고 옆에 서 있던 내게 중대장이 다가왔다.     


그것도 못 하냐?! 약해 빠져 가지고 열외 했냐?


저런 말 정도가 아니었다. 엄청 갈궜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깨를 다치기 전까지 일반인 중에서는 운동을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나보다 체격 조건도 좋지 못한 동기 훈련병들이 땅바닥에서 흙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열심히 기는 모습을 봤다. 나는 고작 어깨 하나 때문에 포복도 못 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나 자신이 싫어졌다. 허망했다. 원하는 대학 입학에도 실패, 고시도 실패하고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에 왔는데 몸도 망가졌다. 왜 내 몸은 이렇게 망가졌는지.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실패한 인생


눈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었다. 펑펑 울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렇게 펑펑 운 것은 처음이었다. 중대장은 당황했다. 그제야 왜 그러냐고 물었다. 울면서 내 어깨 부상에 대해 설명했다. 중대장은 본인도 습관성 탈골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럭비부를 할 때 많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중대장의 뒤늦은 위로는 소용없었다. 나는 중대장의 갈굼 때문에 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답답했다. 훈련 내내 어깨 때문에 제대로 참여를 못한 내가 한심했다. 그때 흘린 눈물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한 번의 포복 열외를 빼고는 모든 훈련을 꾸역꾸역 소화했다. 논산훈련소에서의 5주간의 훈련을 다행히 큰 문제없이 마무리했다. 3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카투사 교육대(KTA)로 이동했다. 카투사 교육대(KTA)에 입소하는 날, 정문을 통과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카투사 교육대에서의 3주는 한 번 미친 듯이 해보자!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논산 훈련소에서의 그 포복 열외와 눈물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카투사 교육대에서의 훈련은 4개 분대로 나눠서 훈련을 받는다. 분대당 교관은 2명이 배정된다. 한국인 교관, 미국인 교관 한 명씩이다. 집합해 있는데 우리 분대를 맡았던 한국인 교관님이 말씀하셨다.     


여기서 본인이 운동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었다. 어깨 부상 전에는 운동을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권도 선수, 무에타이 선수를 하면서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손을 들었다.      


그럼 일단 네가 분대장 해.
단, 3일 뒤에 PT 테스트를 하는데
거기서 1등 한 훈련병으로 분대장은 바꾼다.


그렇게 얼떨결에 임시 분대장이 되었다. PT 테스트는 ①팔굽혀 펴기 ②윗몸 일으키기 ③2마일(약 3.2km) 달리기로 구성되어 있다. 팔굽혀 펴기는커녕 팔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내가 제대로 테스트를 받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논산 훈련소에서부터 살살 팔굽혀 펴기 연습은 하고 있었지만 할 때마다 계속 어깨에 통증은 심했다. 30개도 겨우 했던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제대로 테스트를 받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 임시 분대장이긴 했지만 나 혼자 손을 들어서 된 것이었다. 잘못하면 완전 개망신을 당할 판이었다.      

출처 : Military.com

3일 뒤, PT 테스트 날이 되었다. 어깨는 여전히 아팠다. 죽기 살기로 했다. 통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겨뤘다. 어차피 이미 망가진 어깨. 통증 조금 더 있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냥 했다. 팔굽혀 펴기는 2분에 70개 넘게 했던 것 같다. 윗몸 일으키기는 2분에 90개 정도. 2마일 달리기는 13분 정도였다. 자세한 수치는 이제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결과는 내가 1등을 했다. 팔굽혀 펴기만 만점에서 2개 정도 모자랐고 나머지는 모두 만점이었다.      


삼일 만에 내 어깨가 다 나은 것이 아니었다. 악으로 깡으로 하니 된 것이다. 결국 나중에 자대에 가서는 어깨 수술을 받았다. 그 수술받기 전의 어깨로 PT 테스트에서 1등을 한 것이다. 사람이 하고자 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카투사 교육대의 분대장들은 보통 똑똑한 훈련병들을 많이 뽑는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분대를 맡았던 한국인 교관님과 미국인 교관님은 운동 잘하는 사람이 리더십도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셨던 교관님들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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