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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an 28. 2024

공부 잘했던 친구

그로부터 배우는 인생

학창 시절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의 하나가 바로 '카이스트'였는데요. 카이스트의 로봇 축구 동아리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우정과 꿈과 일상을 그려나간 드라마였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생(그때는 국민학교였죠) 시절 '천재소년 두기'도 즐겨봤네요. 공통점은 바로 천재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죠.


저는 그런 천재들의 삶을 동경해 왔었습니다. 아이큐가 높아 어릴 때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고 조기졸업해서 미성년자이면서도 대학생이 되는 삶 말이죠. 똑같을 순 없지만 이런 비슷한 캐릭터는 제 주변 친구들 중에도 두 명 있었습니다. 모의고사를 치른 후 내가 쓴 정답이 맞는지 확인하러 부리나케 달려가던 목적지는 바로 그런 친구들의 책상 앞이었습니다.


현재 그중 한 명은 치과의사가 되어있고 다른 한 명은 약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이런 머리 좋은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당시엔 나도 저런 좋은 머리를 타고났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공부를 해보려고 책을 펼쳐도 머릿속에는 헤비메탈의 선율만 가득했던 시절이었네요.


지금은 약사 친구와 가끔씩 일요일 아침에 캐치볼을 하면서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요. 공을 주고받는 동안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중 공부하는 요령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네요. 의외로 너무도 간단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리고 천재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도 본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존재를 동경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가만히 선생님 설명 한 번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다 암기가 되어 책상 서랍에서 볼펜을 꺼내듯이 필요할 때 쏙 골라 떠오르게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보통 수준보다 조금 더 암기를 하는 요령이 있는 정도랄까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몇 가지 특징이 보였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작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건전한 경쟁상대가 있었습니다.

운동을 (잘 하진 못하더라도) 좋아했습니다.

복습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작지만 뚜렷한 목표

혼자 속으로 품고 있는 야망은 있었을 테지만 이 친구들로부터 장래에 뭐가 되겠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뭐가 되더라도 잘했을 친구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도 했고요. 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이 친구들은 소위 말해 자신들의 위치에서 해낼 수 있는 작은 목표를 미션으로 삼고 클리어해나갔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치과의사 친구는 오늘 배운 과목의 진도를 확실히 씹어먹겠다 마음먹으면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아주 그냥 입에서 줄줄 나올 정도로 공부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약사 친구는 대학생 시절에 지금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 꼭 자신의 여자친구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는 얼마뒤 둘이 손을 잡고 나타났습니다.


성취가능한 작은 목표를 이루고 그 성취감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목표를 설정하는 행동은 마치 구글의 OKR이 떠오르게 만드네요. 한창 유행이던 린(lean) 스타트업 방식도 마찬가지고요.


건전한 경쟁상대

치과의사인 친구와 약사인 친구는 반에서 1, 2등을 다투던 사이였는데요. 드라마에서나 보던, 성적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치과의사 친구를 치과라 부르고 약사 친구를 약사라 부르겠습니다. 둘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모의고사를 치르면 5점 내외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사이였습니다. 한두 문제 차이로 점수와 등수가 갈라지는 정도여서 1등을 두고 한창 다투던 사이였죠.


그런데 약사말로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둘 사이의 성적이 조금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모의고사 성적이 5점 차이로 다투던 격차가 10~20점 정도까지 벌어지게 되니까 그게 그렇게 까마득해 보일 수가 없었다네요. 방학 때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미친 듯이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성적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사는 심기일전해서 고2 여름방학 동안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고3이 되어 저를 포함해 모두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촌구석이다 보니 같은 반 되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둘이 같은 반이 되니 말 그대로 불꽃이 튀더군요. 안 그래도 점수가 높았는데 한국 최고의 대학교를 넘볼만한 실력으로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언젠가 모의고사를 치른 후 정답이 애매한 문제가 있어서 답이 서로 갈렸는데 그걸 갖고 둘이서 치열하게 논쟁을 주고받더군요. 결론은 복수정답 처리가 된 문제였지만 자신이 푼 문제가 정답이라 확신하는 모습 자체에서 소위 말해 간지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설명을 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좋은 경쟁상대이자 페이스메이커였던 것이었죠. 약사는 나이를 먹은 지금도 이야기를 합니다. 치과가 없었다면 본인도 그 정도 성적을 올리기 힘들었을 거라고...


운동

저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 약간은 샌님 이미지가 강합니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죠. 하지만 우리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서로 만나서 캐치볼을 하는 거죠. 어디 아마추어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운동능력이지만 레벨이 비슷하다 보니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지금 친구들 중에 배가 나온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장사를 하며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인해 망가졌는데 생활 습관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어 이제 곧 정상 체형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아무튼 친구들과는 아직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학창 시절에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던 중상위권 친구들보다는 확실히 운동을 조금이라도 했던 친구들이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지금이야 매일 하는 적당한 운동이 뇌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많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선생님들조차 4당5락(4시간 자고 공부하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말을 해가며 체육시간을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강요했습니다. 정말 무식한 방법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친구들은 농구 한 게임이라도 뛰며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곤 했습니다.


잘하지는 못할지언정 분명한 것은 적당한 운동이 학업성취, 더 나아가 인생에도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운동으로 땀을 쏟아낸 후 개운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저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나이가 든 이후로 킥복싱을 배우게 됐습니다. 체육관에서 모든 힘과 스트레스를 쏟아낸 뒤 샤워를 딱 하고 집에 오면 잠도 잘 오고 다음 날에 가뿐하게 일어나게 되어 하루를 상쾌하게 보낼 수가 있더군요.


치열한 복습

치과와 약사 둘 다 마냥 천재급 두뇌의 소유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니더군요. 집에 돌아가서는 그날 배웠던 내용을 빠짐없이 복습했다고 합니다.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면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를 만들어 같은 문제는 두 번 다시 틀리지 않으려 이를 갈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요. 안 보이는 곳에서도 굉장히 치열했던 것이죠.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더 놀랐습니다. 마냥 외우는데 도가 튼 애들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 첫 번째 놀람이었고 저도 저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었는데 그건 이 친구들 발톱의 때만도 못할 정도의 노력이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습을 힘들어하지 않고 덤덤히 그냥 했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저는 복습이 예습보다 몇 곱절은 더 힘들었습니다. 이미 배운거기 때문에 지루함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든 지식이 아니지만 한 번 봤다고 공부를 했다는 착각에 다음 진도를 빼기 바빴죠. 그런데 치과와 약사는 복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여기서 이미 격차가 벌어진 것 같더군요.


인생을 대하는 자세도 거기서부터 형성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된 거고요.

이 정도로만 풀어냈는데도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저는 왜 천재를 동경하기만 했을까요? 그 천재에 가까웠던 친구들은 자신의 머리만 믿고 살아왔던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실패로 괴로워할 때 누군가로부터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울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울컥이 내 노력으로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억울한 마음에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정곡을 찔려 쪽팔림을 가리기 위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혹은 둘 다 일수도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후자가 맞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요, 그래도 앞에 소개해드린 제 친구들처럼 조금은 자신의 인생에 진심을 담는 시기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네요. 아직 제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줘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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