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 여행을 간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이번 명절에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 집은 추석날 차례를 지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차례상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예전보다는 가짓수가 많이 줄어든 게 보였다. 하지만 정말 이게 조상들이 먹을 거라 굳게 믿고 그 믿음으로 차린 걸까?
주자가례에서는 차례를 '제례'가 아닌 햇과일과 술, 그리고 차 정도로만 상에 올리는 '예'의 하나로 포함시켰는데 어느 누가 이런 '예'를 제사로 격상시켰는지도 의문이지만 그걸 전통이랍시고 누구 하나 의심 없이 따라 하는 것도 우스웠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보고 나서는 유교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다.
게다가 우리 집 차례상 뒤에 쳐진 병풍의 글을 (이제야) 찬찬히 뜯어보니 실소만 흘러나왔다. 병풍에 쓰인 글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즉 <반야심경>이었다.
지난해 아버지 칠순 때 맞이한 추석 연휴에는 차례를 생략하고 가족끼리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행복했다. 아내도 처가에 가지 않았지만 행복해했다.
누구를 위한 차례상, 누구 먹으라고 명절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기름 냄새 풍기며 프라이팬을 들고 있어야 했는지 현타도 왔겠지. 그런 이유도 모를 행동을 안 하게 되니 행복해했던 것이다.
가정의 평화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내도 처가에 못 가서 명절날 기분이 안 좋았던 게 아니고,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를 일을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단다.
제사를 지내야 죽은 조상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말을 하는 부모세대에게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부모님과 가족들이 행복하게 해 주면 되겠냐고 여쭤보면 딱히 할 말은 없으신듯해 보인다.
양반집안도 아니었으면서 개나 소나 아직까지도 양반이라고 제와 예에 목숨 거는 건 내 세대에서 끊어내야겠다. 사실 이제 우리 집도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어머니의 정당한 논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인데 그 중 한 마디가 바로 이것이다.
"당신네들 집안이니까 이제 당신네들이 알아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