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원 Nov 08. 2024

비 맞으며 퇴근하기

비가 오는 가을 저녁 퇴근시간, 뭔가가 제 마음속에서 '우리 비 맞으면서 한 번 가볼까?'라는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평소 비가 오는 날에는 자전거 대신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요. 이 날은 그냥 우산을 손에 쥔 채 자전거로 출근했고 퇴근 시간에는 그냥 비를 맞으며 집으로 왔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그냥 비를 맞으며 가보고 싶더군요. 아니면 첫 문장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속삭임일지도 모르고요.


어릴 때는 그토록 좋아했던 비였는데 이제는 군대 시절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별로 달갑지 않게 되어 한동안 비는 피하면서 살기도 했습니다. 습하고 끈적거리는 여름날에는 더더욱 싫어했었죠.


하지만 비를 맞고 집에 온 이 날은 뭔가 상쾌했습니다. '우산'이라는 비를 막아줄 도구 없이 온전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있자니 내가 왜 그토록 비 맞는 걸 싫어했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차를 타고 가거나 우산을 쓰고 간다면 이 상쾌한 가을비를 느끼지 못했겠죠.


여름에 내리는 비는 솔직히 지금도 별로 내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비라도 계절에 따라 이렇게 상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 내가 바라보는 관점,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세상은 좋아 보일 수도, 나쁘게 보일 수도 있겠더군요.


비는 어쩌면 제 인생의 시련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산이 없어도, 차가 없어도 온전히 비를 맞으며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집으로 올 수 있게 됐습니다. 아마도 저의 걍생살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한 번 맞아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우산 쓰고 가던 출근길
비 맞으며 오던 퇴근길


매거진의 이전글 불량을 내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