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입사를 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시간 정말 빠르네요. 걍생살기로 한 시기와 입사시기가 비슷하기에 제 태도가 직장생활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 흐르듯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며칠 전에 하루동안 제품 불량을 3개나 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가게를 접고 집 근처 작은 회사에 들어가 생산직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항상 다치지 않게 주의를 하고 뭐든 배우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처음이니까요. 더 이상의 열정은 없어도 최소한 회사가 저에게 주는 급여가 아깝지는 않게 해야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상태로 계속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입사 초반에 기계 조작 미숙으로 손가락도 다치고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다리에 상처도 많았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참 많이도 보고 배웠는데요. 이제는 어느덧 도면만 있으면 라우터, MCT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간단한 제품 정도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력이 늘은 만큼 급여도 알아서 올려주더군요. 자신감이 조금 붙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제 시야를 많이 좁혀놓았습니다. 도면을 받자마자 예전에 했던 기억이 있는 제품이라 대충 치수만 확인하고 곧바로 신나게 가공에 들어갔습니다. 공장장님이 오시더니 "어?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라고 하기 전까지 말이죠.
저희 회사는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이 많기 때문에 도면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걸 간과하고 이전에 했던 제품과 똑같다고 판단해서 바로 프로그램을 짜서 기계를 돌렸던 것이었죠. 그게 1mm 정도의 작은 홈 하나가 있고 없고 차이로 불량이 돼버렸습니다. 도면을 유심히 봤어야 했는데 제 실수였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두 번 더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동안 말이죠. 잘못된 소재로 가공을 해서 불량을 냈고 다른 하나는 제품을 기계에 고정을 잘 못해서 가공 중에 튕겨나가 버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루에 세 번이나 불량을 낸 경우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퇴근 직전 공장장님한테 이 날 벌어진 일에 대해 미안함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공장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제 그 시기가 온 것 같네요. 뭔가 좀 알게 돼서 자신감이 붙는 시기요. 이 시기에는 의욕이 앞서기 때문에 실수할 확률이 높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한 번 했던 실수는 까먹지 말고 반복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자, 얼른 퇴근합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이 날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제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던 초보에서 실력이 붙기 시작하던 시기에 수많은 실수가 있었다는 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각각의 시기와 형태는 달랐어도 세상은 저에게 똑같은 교훈을 알려주고 있었더군요.
자만하지 말 것.
어릴 때는 쉽다고 자만하다 실수를 했을 때 놀림은 받았어도 큰 코를 다치는 경우는 없었지만 나이 먹고 자만하다가는 몸과 마음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됐습니다.
어쩌면 공장장님의 말씀대로 성장하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시기가 온 것이라는 말이 큰 위안이 되긴 했습니다. 저도 이제 누군가에게 이런 조언을 해 줄 나이가 된 거 같지만 아직은 다 큰 어른이 되진 못했나 봅니다. 아내는 제가 죽기 전까지 철이라도 들면 다행이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