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여전히 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젖지만 퇴근 시간이 다다를수록 바람은 많이 선선해지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잔업을 마치면 오후 7시 30분 정도가 되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는 날이 밝아서 대낮 같았는데 이제는 제법 많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 주변도 경기가 그리 좋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 출퇴근길 분위기에서 느껴집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뭔가 복작복작한 느낌은 없고 공단 입구에서 한참 기다려야 건널 수 있었던, 신호등없는 횡단보도에도 지나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서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회사에서 잔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감사해야 할까요?
장사를 하던 시절엔 한창 바쁜 시간이었던 7시 30분, 벌써 일 년 전 일이네요.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홀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감상에 젖어보기도 하니 세월이 정말 빠르긴 빠릅니다.
그동안 저는 대출금을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급여의 대부분이 대출상환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변함없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어둡고 긴 제 인생의 터널 저 끝에 살짝 밝은 점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돈의 무서움과 소중함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 분수에 넘치는 사업을 하려다 많은 대출을 달고 살게 됐지만 2년 뒤부터는 하나씩 만기 상환이 되기 시작하니 저는 조금 더 힘이 나네요. 역시 마라톤도 끝이 보여야 힘이 나듯이 말이죠.
사람 인생은 쉽게 예측해서는 안 되는 걸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는 않은 법이죠. 그래서 많이 무덤덤해졌습니다. 인생이라는 거시적인 굴곡의 그래프를 하나하나 미분해서 살다 보면 안 해도 될 걱정에 시간을 쏟아붓게 되더군요. 그래서 걍생살기로 마음먹은 게 아닐까 합니다.
어두워진 퇴근길은 쓸쓸하지가 않습니다. 퇴근 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과, 아내와 아이들이 반겨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기꺼이 콧노래를 부르며 페달을 밟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