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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May 18. 2020

대한민국 아파트 시가총액은 얼마나 될까?

한국 자산시장 분석 #1: 현황편

“야, 박 사무관. 대책 하나 더 준비해야겠다.”


긴 전화를 끝낸 과장님이 탄식처럼 내뱉은 첫 마디였다. 아, 또 시작됐구나. 숨죽여 듣던 과원들의 한숨이 들려왔다. 한동안 잠잠해던 서울 아파트값이 강남 3구를 필두로 20% 올랐다는 보도 후 반나절이 지나기 전이었다.


"박 사무관, 지난번에 XXX 의원 발의안 검토한거 있지? 그 거랑 경실련 건의안 정리해서 한 장으로 가져와봐. 정 사무관은 대변인실 연락해서 기자 연락처 받아보고…"


지시는 늘어나고, 타자소리도 직원들의 짜증만큼 커져갔다. 죄인이 되어 집에 야근을 알리는 사람도 몇 있었다. 올 들어 세 번째, 정권이 바뀐 뒤로는 12번째 부동산 ‘대책’ 준비 작업이 다시 시작되는 풍경이었다.




대한민국은 정말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살지도 않는 강남 집값 뉴스가 지지율을 좌지우지하고 선거까지 뒤흔든다. 대책은 반복되지만 집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제도만 점점 복잡해져 전문 ‘꾼’들을 위한 시장이 되어간다. 정책은 점점 미시화되어 핀셋이 등장하는 한편, 부동산 큰 손으로 등극한 유명스타들의 재테크 뉴스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룰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현실이다.


문제는,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현상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은 수면 위에 드러난 가격과 수급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들의 소득이 수도권 부동산이라는 단일 자산 위주로 축적되는 편향적 구조, 즉 '자산 쏠림현상'이 존재한다. 소수만 가질 수 있는 수도권 부동산이 비교적 접근성이 높은 다른 자산(주식 등)을 시가총액으로 압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택시장 중심의 시가총액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자료: 금융위원회)

왜 이런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을까? 자산불균형 현상은 왜 문제가 되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바람잘 날 없었던 정책 일선을 떠난 후, 이젠 투자자의 마인드로 시장을 바라보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주택 수급문제 같은 시장 내부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왜 국민자산이 금융분야가 아닌 특정지역 부동산에 쏠리는 자산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궁극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선 ‘집값 안정’보다 한 차원 높은 ‘자산 쏠림현상 해소를 통한 국민들의 자산 접근성 확대와 자산시장 스케일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다.



현황분석  |  대한민국 자산시장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을까. 대한민국 부동산의 대표격인 ‘아파트’ 시가총액은 2019년 11월 기준으로 무려 3352조원에 달한다. 감이 잘 안 잡힌다면, 아파트 가격만 합쳐도 코스피와 코스닥 모든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친 금액(약 1600조)의 2배를 넘는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대한민국 전체까지 갈 필요도 없다. '서울' '아파트'만 따져도 시총이 1200조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유수의 기업을 포함한 KOSPI 상장기업 전체 가치를 능히 넘어서는 규모다.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부동산 보유비중이 매우 높은 국가다.

생산가치(기업)를 압도하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가총액은 가계의 높은 부동산 보유비중에서 비롯된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8년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가계가 보유한 순자산에서 토지, 주택 등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6%에 달한다. 프랑스 69%, 영국 55%, 캐나다 54%, 일본 42%에 비해 압도적이다.


반면, 예금과 주식, 연금과 보험 등을 포함한 1인당 순금융자산은 2018년 기준 약 39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 대만, 일본에 비해 2~3분의 1에 불과하다. 국가적으로 보면 1년 버는 돈보다 살짝 많은 금액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실질적인 현금저축액이라는 뜻이다.

금융자산 축적도 측면에서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아니다. (사진: 중앙일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안 되는 순금융자산에서 전세보증금 등 부채 비중이 무려 92%다. 저축액 대부분이 사실상 주택구매 대기자금인 전세보증금이거나 차환 위험을 가진 '남의 돈'이라는 뜻이다. 칠레, 아르헨티나 등 우리가 후진국으로 치부하는 국가들도 4~50%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매년 버는 돈은 선진국 수준이어도, 그 돈이 국민들의 실질적인 노후대비용 자산으로 축적된 정도는 후진국 수준인 것이다.  


어쨌거나 부동산도 자산이니, 집값이 오르면 국민들 살림살이도 좀 나아졌을까? 당연히 나아지긴 했다. 전국민이 아닌 일부 지역에 한해서.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의 가격격차는 2010년대 이후 확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 자산시장 현황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인들의 자산보유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부동산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2) 턱없이 부족한 금융자산도 대부분 전세보증금 등 부채로 이뤄져 있다.

3) 그나마 축적된 부동산 가치도 대부분 수도권이라 불리는 특정지역 거주민들이 집중 보유하고 있다.


자산 쏠림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부가가치가 특정 자산에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는 가격허들을 점점 높이고 자산접근성을 낮춰 대다수 국민들의 자본증식을 사실상 어렵게 만든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적 투자보다 경제적 지대가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 불균형이 아주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개별 주택시장의 수급 문제나 일부 투기세력의 의도만으로 이 정도 규모의 불균형이 장기간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거시적인 차원, 즉 한국의 경제구조 자체가 국민들로 하여금 주택자산 투자에 더 큰 메리트를 두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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