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계를 넘어서는 연결과 협력의 힘
오늘날 전 세계 자본시장의 주인공은 FAANG으로 대표되는 IT 플랫폼 기업들이다. 한국도 코로나 사태와 언택트 경제의 대두를 계기로 네이버, 카카오 주식이 시장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83620
플랫폼 기업에 대한 시장의 높은 밸류는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현재 이익수준은 전통적인 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이어도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질문을 하나 던져보고자 한다. 왜 플랫폼 기업들은 일반기업에 비해 더 빠르고, 많이 성장하는 걸까? 대체 어떤 요소가 플랫폼 기업을 일반기업과 차별화시키는 걸까?
경제학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모델을 '네트워크 효과'라는 단어로 분석한다. 네트워크의 효용이 유저가 늘어날수록 함께 늘어나고, 이에 따라 유저가 유저를 부르는 선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것이다"라는 현상에 대한 설명일 뿐,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누리는 네트워크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분석하는 글은 (아마 있겠지만) 찾기 어렵다.
그러던 중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가 도시와 기업 성장에 대한 물리학을 다룬 "스케일"이란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케일」은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복잡계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Geoffrey West)가 쓴 책이다. 생명체의 몸 크기와 에너지 효율의 관계부터 기업, 도시의 성장에 이르는 '모든 것의 규칙'을 찾으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도시에 대한 연구 내용이다. 대규모 정량분석을 실시한 결과, 그는 국가나 지역을 불문하고 도시 규모(=인구수)와 사회적 변수 사이에 일정하고 체계적인 관계가 성립함을 밝혀냈다.
도시 인구가 100% 증가한다고 하자. 그럼 도시에 필요한 주유소 숫자나 도로, 전선, 가스배관의 길이 같은 물적 인프라 규모도 100% 늘어날까? 웨스트에 따르면 인구 증가율 대비 인프라 증가율은 0.85다. 그러니까 인구가 늘어날수록 1인당 필요한 인프라 규모는 100%가 아닌 85% 정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구 5만명인 소도시가 100배 커져서 인구 500만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유소는 약 50배만 늘리면 도시가 돌아갈 수 있다. 쉽게 말해,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필요한 자원을 15% 더 절약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가 도시 차원에서도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적 인프라와 달리, GDP나 특허 수, 질병(코로나!), 범죄 같은 각종 사회적 활동의 결과물은 도시 규모가 100% 증가하면 대략 115% 더 증가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사람들 간의 관계와 협력을 통해 증가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들 간의 관계 수(=경우의 수)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개인의 두뇌 속에 갇혀있던 정보가 공유되고 혼자서는 생각지 못했던 문제해결이 가능해진다. 웨스트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협력의 힘은 개인들이 사회적 자본을 15% 더 생산할 수 있게 만든다.
도시는 그렇다 치고, 기업은 어떨까? 웨스트 교수에 따르면 기업들의 성장곡선은 도시와 인프라 중간지점에 위치한다. 즉, 일반 기업들은 도시와 달리 시장의 성장속도를 능가하기 어렵다. 초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매출 증가속도는 점차 줄어들면서 절대다수의 기업은 '성장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웨스트 교수에 따르면 이는 "기업 성장이 결국 혁신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절감 결과로 인한 것임"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만약 '도시 같은 기업'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유저가 늘어나면서 1명에게 소요되는 인프라 비용은 15% 감소하는 반면, 유저 1명이 창출해 내는 소비(매출)는 15% 더 늘어나는 기업 말이다. 이 경우, 한 번 플랫폼 구축에 성공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유저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마진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우린 일반적인 기업 성장곡선을 초월하여 성장해 나가는 플랫폼 기업들의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을 일반 기업들과 구별짓는 열쇠는 바로 '연결성'이다. 일반 기업들은 생산자들의 생산-소비자들의 소비라는 선형적이고 이분법적인 매출구조에 의존한다. 아무리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찾더라도 1인당 소비가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구조 하에서는 성장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비용 효율화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의 생산-소비는 엄밀하게 구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플랫폼 소비자들은 서로 활발하게 연결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스스로 컨텐츠를 생산한다. 소비자들이 생산에 참여하고 주체가 되면서 플랫폼 생태계는 더욱 풍성해지고, 신규 유저들이 플랫폼으로 유입된다. 플랫폼 기업은 마치 도시처럼, 시민(=유저)들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생태계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파는 기업들이다. 1인당 자동차 수, 1인당 영화관 좌석 수는 크게 늘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개인들의 선택이 연결되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현대차는 우버가 되고, CGV는 유투브가 된다. 기업을 도시로 만드는 15%의 마법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한계를 돌파할 수 있도록 하는 15%의 비밀은 바로 '연결의 힘'인 것이다.
플랫폼은 일반 기업처럼 종업원 수나 물적 자본에 의존하는 기업이 아니라 관계 의존적인 기업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업자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에게도 많은 의미를 지닌다.
플랫폼 사업자
- 홍보와 인프라에 돈을 아끼면 안 된다. 끝없이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retention)하는게 최우선이다.
- 이용자 수가 확보되면, 이젠 이용자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플랫폼의 초과이득은 회사가 만드는 자체 컨텐츠보다는 대부분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컨텐츠에서 비롯된다.
- 네트워크 내의 '노이즈'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가짜뉴스, 각종 사기범죄도 이용자들의 관계에 의존해서 초선형적으로 확산된다. 방치하면 순식간에 퍼져나가 고객 피로도 누적과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
투자자
- 생태계가 존재하는지, 즉 유저 간 '관계성'이 존재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유저가 아닌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컨텐츠를 공급하는 기업은 플랫폼으로 보기 어렵다. 애초에 플랫폼이 아닌 사업에 속아서 투자해서는 안 된다.
- 결국 이용자 수 자체가 최고의 투자지표다. 신규 유저 유입률과 이탈률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비용 최소화에 집착하는 플랫폼 기업은 성장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 인구가 늘어나고 생산성과 창의성이 늘어나는 도시의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투자전략이다. 주택 수는 인구와 정비례해서 증가한다. 반면 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GDP는 네트워크의 산물이므로 인구 증가율보다 더 높게 증가한다. 도시가 성장하는 한 주택보유자는 안정적인 초과이득을 누릴 수 있다.
정책 결정자
- 협력의 가치가 높아질수록, 개별 구성원들의 교육수준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정보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정책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네트워크는 개인들의 능력치를 1인당 15%씩 더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 가짜뉴스에 대한 신속하고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 플랫폼 경제가 성장할수록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와 파급효과도 빨라진다.
- 플랫폼 사업자의 이득은 상당부분 플랫폼 자체의 역량이라기보다 유저들이 스스로 정보를 제공하고 창출해낸 가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초과이득을 유저가 아닌 사업자가 독식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 한편으론, 플랫폼 기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초협력(supercooperation)을 이끌어내고 있다. 과거엔 불가능했던 사회적 협력이 가능해지며 새로운 일자리와 사회적 자본이 창출되고 있다. 협력의 진화야말로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점에서 플랫폼 기업에게 지나치게 적대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통적인 독점규제 정책을 플랫폼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신중해야 할 필요다.
1. 도시가 성장할수록 물적 인프라 비용은 15% 절약되고, 창의적 협력은 15% 늘어난다.
2. 플랫폼 기업은 유저간 연결과 협력의 힘을 통해 일반 기업이 겪는 성장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3. 플랫폼 사업자, 투자자, 정책 결정자 모두 일반 기업과 플랫폼 기업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