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산시장 분석 #3: 문제점
(이전 글)
앞선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동산도 일종의 투자자산의 일종이다. 부동산 쏠림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경제 기저에 깔린 메타에 의한 것이다. 메타는 개별 게임을 넘어선 판 자체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선거결과나 코로나 사태 같은 이벤트에 따라 일시적인 부침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부동산 쏠림현상이라는 게임 양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부동산 쏠림현상이 주어진 메타 내에서 달성된 최적화 결과니까 문제는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경제학에 "차선의 정리"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다. 하나 이상의 최적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제한된 최적화의 결과가 오히려 최적요건들이 여럿 깨져있는 상황보다 오히려 후생이 낮을 수 있다는 정리다.
쉽게 말해, 한 사회의 부가 특정 자산에 쏠려 있어 소수 플레이어가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 하에서는 최적화의 결과라 할지라도 국가경제적으로는 최선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측면의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부동산 쏠림현상은 청년층의 자산증식에 필요한 허들을 높이고 경제전체의 소비도 위축시킨다.
2) 부동산 쏠림현상은 화폐회전율을 낮추고 생산적 분야에 대한 자본유입을 저해한다.
3) 부동산 쏠림현상은 가계의 노후 현금흐름을 제약하여 안락한 노후생활을 위협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FIRE 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FIRE 운동은 Financial Independence and Retire Early의 준말이다. 즉, ‘단기간 저축액을 극대화한 후 조기은퇴하여 자산소득으로 먹고산다’는 뜻이다.
이러한 트렌드의 배경에는 전 세계 어디보다 주식시장이 활발하고, 개인들의 투자 접근성이 높은 미국의 독특한 환경이 있다. 저축액을 자산투자로 증식시키고, 은퇴 이후에는 확보한 자산을 가지고 투자수익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강한 신뢰감이 그것이다. 보다 잘 살고 자유롭고 싶은 개인들의 욕망을 자산시장이 성공적으로 흡수하여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왕성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믿을만한 자산증식 수단은 사실상 부동산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한 FIRE의 가능성이 '건물주'로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금융자산과 달리 부동산은 비싸고 공급이 제한된 재화라는 점이다. 주식의 경우 증자가 비교적 자유롭고 지분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거래기회도 많다. 반면 공급이 제한된 부동산은 가격상승으로 인한 혜택을 소수의 소유자가 온전히 가져가기 쉽다. 부동산이 없는 사회구성원 대다수는 게임에 참여조차 못 하고 '거주비용 상승'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초이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자산접근성 향상과 경제성장 회복을 꾀했지만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경제성장으로 창출된 부가가치가 특정지역 부동산에만 축적될 경우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성장의 과실로부터 소외되고 소수의 경제적 지대만 축적되어 '부익부 빈익빈'만 확대되기 때문이다.
사실, 자산가격 상승 속도(r)>>>>근로소득 증가 속도(g)라는 기대로 인해 유동자금이 더욱 자산시장으로 집중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자기실현적 메커니즘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피케티가 이미 "21세기 자본"에서 예리하게 짚어냈고, 이젠 IMF도 공식적으로 우려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 자산시장이 서울 중심의 부동산 시장으로 일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자산불평등이 제한된 주택공급 때문에 더욱 빠르고 심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간 상위 1%의 1인당 주택 보유 수는 2007년 3.2채에서 2017년 6.7채로 약 2배 증가했다. 다주택자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무주택 전·월세 가구 비중은 2005년 37.1%에서 2017년 44.1%로 늘어났다. 주택보유가 집중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무주택자들의 소득을 다주택자에게로 이전하는 효과를 낳는다. 주택 보유격차가 소득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연쇄작용이 발생해 왔던 것이다. (참고: 경향신문, "포용성장 위해 부동산 연착륙 필요")
이러한 불평등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잠식한다. 부동산 위주의 자산가격 상승은 대중들이 시장에 참여하여 자본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유는 효율성 차원의 논의 이전에 가장 본질적인 인권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실업과 불평등을 '자유의 박탈'로 표현한 적이 있다.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혁신과 기술개발의 산물인 자산가격 상승에 개인들이 소외되는 것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근간인 '자유로운 시장진입과 거래'에 위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부동산 쏠림현상으로 인한 자산 접근성 악화와 불평등 심화는 시장경제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방치될 경우 그 자체의 존립기반을 해칠 수 있는 내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평범한 월급쟁이들이 열심히 일한 돈으로 발품을 팔고 빚을 끌어모아도 금수저나 전문직이 아닌 이상 계층사다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계층이동의 희망을 파는 사다리 장수들만 돈을 버는 현실이다. 박탈의 문제를 단지 '박탈감'이라는 기분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자산불평등은 경제 전체의 소비성향을 낮추어 만성적 수요부족에 시달리기 쉽게 만들고, 나아가 근로의욕 저하와 사회불안까지 낳게 된다. 구체적으로, 부동산 쏠림현상과 자산불평등은 다음 경로를 통해 소비지출을 위축시킨다.
· 임대료 상승폭 > 임금 상승폭 현상의 장기화에 따른 가계의 주거비 지출 증가와 소비여력 제한
· 소비성향이 더 높은 저소득층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면서 경제 전체의 소비성향 하락
· 고소득층의 경우 가계부채 보유비중이 높아 유동자산이 적을 경우 소비를 늘릴 여력이 제한
마지막 내용은 부동산을 많이 가진 고소득자라 할지라도 부채가 많아 현금여력이 부족할 경우 부정적 소득충격이 오면 더 크게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뜻이다.(김정환, 2017) 부동산 쏠림현상이 심해질수록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건강한 자본주의는 중산층의 안정적 소비를 바탕으로 성장해 나간다. 부동산 쏠림현상을 완화하고 자산접근성을 확대하는 일은 원칙론이 아닌 실질의 영역에서도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꼭 생산성 향상과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즉각적인 현금화가 어려운 장기투자를 부담스러워 한다. 대신, 부가가치가 높지 않더라도 한 탕 크게 먹고 나올 수 있는 차익실현 기대감이 크면 돈은 몰리게 마련이다.(=코인) 중앙은행이 시중에 살포한 현금이 모두 카지노로 휩쓸려 들어가는 경제를 상상해 보라. 머니게임 경제가 장기적 경제성장에 이롭지 않은 이유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전형적인 머니게임 양상을 띄었다. 앞서 살펴본 메타들로 인해 “주택을 담보로 한 손쉬운 은행대출 -> 또 다른 주택 구매 -> 전세를 통한 갭투자 or 임대주택 등록을 통한 임대소득세 및 양도소득세 절세”가 가계의 필승 투자전략이 되었다. 주택가격을 좌우하는 주체가 실거주자에서 점차 다주택 투자자로 전환되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통계가 하나 있다. 바로 유주택자의 주택 거래비중이다.
2000년대 이후 유주택자가 거주주택 이외에 주택을 매매하는 비중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그 결과 한국의 거주주택 외 부동산 보유비율은 32.3%로 미국의 2.3배, 영국의 3배에 이르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주택시장이 본격적인 머니게임 양상으로 전환되면서 시중에 풀린 유동성도 부동산 분야로 집중적으로 투자되었다. 2010년대 이후 국가경제 전반의 부동산 익스포저가 증가한 것도 그러한 흐름의 일환이었다.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한 머니게임이 지속되면서, 한 번 유입된 돈이 다른 시장으로 나가지 않고 또 다른 주택 구입자금이나 이자비용으로 쓰이면서 주택시장 안에 돈이 묶이는 현상도 장기화되었다. 사회 구석구석을 돌면서 새로운 사업과 거래를 성사시켜야 할 돈이 생산성과 고용유발효과가 낮은 주택시장에만 머물게 되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국가경제의 실질적인 가치창출에 기여하는 화폐 회전율이 점차 낮아지게 된 이유다.
이러한 화폐 회전율 하락은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의 효율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회계학에서 기업의 경영효율성을 측정하는 자기자본회전율(=매출액/순자산)라는 용어가 있다. 높을수록 기업이 보유한 자본을 적극적으로 굴리고 활용하여 매출을 잘 뽑아내고 있는 건강한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그럼 이를 국가경제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한국의 GDP를 국민순자산으로 나누면 얼추 비슷한 개념이 될 것이다. 계산해 보면 한국은 2018년 기준 12.2%가 나온다. 일본의 16.6% 대비 낮은 수준이다. 회계적으로 해석하자면, 국부의 대부분이 생산에 직접 기여하지 못 하는 부동산에 치중되어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낮아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인구밀도와 경제구조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에 치우친 자산축적이 건강한 경제성장을 통한 지속적인 국부 창출에 유리하지 않다는 점도 읽어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쏠림현상은 가계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협한다. 은퇴 이후 근로소득이 없는 노령층은 보유한 저축을 현금화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만약 노후자산 대부분이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이라면 선택은 전월세를 내놓아 임대소득으로 먹고 살든가, 아님 빚을 내든가 둘 중 하나다.
임대소득자가 되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 걸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다주택자의 주택보유와 입주물량 확대로 인해 전국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면서 시장의 임대수익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보유세 인상 등으로 보유비용도 상승하면서 임대소득이 노령층의 생활비와 의료비를 충당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임대소득만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내는 경우도 부담이 되는건 마찬가지다.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령층 상당수가 생계를 위해 담보대출을 하며(29%), 대출 대다수도 만기일시상환 방식(44%)이라 금융부채를 갚기 위해선 집을 팔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가처분소득 대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40%를 넘는 한계가구의 40%가 60대 이상이다. 하우스푸어란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주택시장이 침체되거나 일시적으로 출렁일 경우, 부동산을 집중 보유한 고령층의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보듯 주택은 안전하기만 한 자산이 아니다. 오히려 자산구조 쏠림이 심할수록 외부 충격으로 인해 주택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금융자산(연금, 보험 등)이 충분치 않고 부동산에만 치우친 자산구조는 국민들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위해서라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리하면, 부동산에만 자본이 집중될 경우 자산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생산성 높은 분야에 대한 장기적 투자도 제약되어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선 현재의 부동산 쏠림현상을 메타의 결과물이라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해소할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다.
다음 글에서는 부동산 쏠림현상을 야기하는 메타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동학개미운동에서 찾아보고,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서도 논의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