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산시장 분석 #2: 메타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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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쓰는 게임용어 중에 ‘메타(Meta)’라는 단어가 있다. 게임 한판한판을 좌우하는 선수의 기량, 전술이 아니라 게임계 전반의 흐름을 좌우하는 거시적이고 전략적 차원의 변수다. 전투로 따지면 전장의 지형이나 기후, 자산시장으로 따지면 개별 수급 이슈를 넘어선 시장 전체의 경향성을 뜻할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한국 자산시장의 주요 메타는 바로 '부동산의 경제비중 증가'였다. 가계와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 모두가 부동산 비중을 늘려갔다. GDP와 민간신용에서 부동산 비중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자산시장의 장기적 경향성은 일시적 수급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부동산 선호를 만들어내는 메타 차원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는 다음 3가지 메타를 부동산 비중상승의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메타 1) 신성장산업(IT 등)으로 산업구조가 전환되면서 인재들의 대도시 집중도가 심화되고 있다.
메타 2) 높은 대외의존도와 저성장 장기화로 경제주체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어 왔다.
메타 3) 상장기업과 주식시장의 낮은 신뢰도로 부동산을 대체할 만한 투자대상이 부재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은 대도시 위주 경제로 전환되어 왔다. 과거 중화학 공업과 달리 IT, 바이오,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신성장산업은 대도시에 소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고학력 인구를 상시 공급받고 트렌드에도 민감해야 하며, 설비 위주의 규모의 경제보다는 빠른 정보흐름에 바탕을 둔 피드백 효과가 더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혁신기업들은 점점 더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대기업 연구센터와 혁신기업들도 지방을 떠나 강남이나 용인, 판교로 이전하는 추세다. 기업들을 수용하면서 대도시는 더욱 부유해지고, 이는 높은 수준의 소비와 인적 네트워크로 이어져 수도권의 공간가치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일자리가 이동하면 사람은 따라간다. 중공업 생산직에 비해 IT 등 엔지니어들의 고용분포는 훨씬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이공계 취업의 '남방한계선'이 기흥을 넘어 판교로 점점 북상하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성장산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이 멈추지 않는 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고용과 소득이 서울에 더 집중적으로 축적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한 이유다.
중장기적으로 가격흐름이 확실한 자산이 있다면 투자전략은 딱 하나다. 좀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루빨리 서울에 주택을 장만하는 것이다. 최근 3~40대의 서울 아파트 추격매수 현상도 남들에게 뒤쳐지면 안 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부동산에 대한 이런 강한 신뢰감은 후술할 한국경제의 불확실성 심화와 결합되어 부동산>>>금융자산의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국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매우 높다. 성장률을 좌우하는 대기업들의 수출 실적은 대외 리스크에 상당히 취약하다. IMF 이후 한국경제를 위협한 리스크가 대내요인보다는 예상치 못한 대외요인으로 그야말로 '닥쳐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점이 이를 반증한다. 여기에 중국의 제조업 굴기로 한국의 상대적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되리라는 부정적 예측도 확산되었다. 대외 불확실성 증가, 성장에 대한 낮은 기대감과 투자에 대한 회의감이 2000년대 이후 시장의 지배적 정서가 된 것이다.
이처럼 실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통한 생산성 제고와 장기적 현금회수' 전략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한 가계대출 확대와 안정적 현금회수'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부동산은 그 자체로 사용가치가 있어 안정적인 수요를 계속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부동산의 주된 수요자인 가계소득은 기업소득에 비해 비교적 대외리스크 영향을 덜 받고 변동성도 적다. 국내에서 리스크 회피전략을 택한 은행들은 제조업 등 생산유발효과가 큰 분야에 대한 대출을 축소하고 회수안정성이 높은 부동산업 대출을 확대시켜 나갔다.
저성장 장기화는 정부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4년 7.24 대책과 9.1 대책으로 대표되는 초이노믹스는 수출 제조업 위주 성장전략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고민의 산물이었다. 정체된 경제지표들로 일본식 장기불황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산가격 부양책이 마련되었다.
금융규제 완화와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 이후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명목으로 한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대출한도 확대와 양도소득세 경감 등 정책적 지원이 잇따랐다. 높은 불확실성과 저성장 장기화라는 메타에 직면한 정부와 시장은 '실물자산을 담보로 한 부채확대 -> 자산가격 상승과 경기부양 -> 소비 진작'이라는 합의점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시장과 정부의 관점이 맞아떨어졌다. 개인들이 실물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확보한 현금(=금융부채)으로 다시 실물자산 보유를 확대하는 무한루프(Loop)가 본격 가동되었다. 부동산이 2010년대에도 시장을 주도하는 불패자산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부동산에 쏠린 자산구조란 말은, 반대로 주식 등 금융자산에 대한 선호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얘기기도 하다. 실거주라는 사용가치를 제외하면 사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주식과 같은 투자자산이다. 하지만 장기간 보유 시 안정적 수익률을 보장하는 부동산에 비해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 국내 상장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책임성이 후진적이고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기적의 신약 출시가 목전에 남은 것처럼 호도하며 주가를 끌올하다가 임상실패 발표 전에 지분을 모두 팔아치운 대주주 이야기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내부자의 횡령, 배임으로 인한 검찰조사나 실적쇼크로 가격이 급락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여기에 2018년 삼성증권 사태, 2019년 라임 사태 등 증권계의 모럴 해저드 사례까지 열거하자면 한 해도 온전히 지나가는 때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금융시장의 낮은 신뢰도는 개인투자자들이 테마주 위주의 단타종목에 몰두하는 요인이 되었다. 기업의 장기적 사업투자를 위한 자본조달이라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실제로 코스닥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IPO+유증) 규모는 1999년 4.5조원, 2000년 7.1조원이었던 수준에서 2017년 5조원, 2019년 기준 3.3조원으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유동성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주식시장의 스케일업은 요원한 상황. 차라리 발품만 팔아도 어느 정도 정직한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부동산에 소비자들의 돈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정리하면, 부동산 쏠림현상을 이끈 메타는 'IT 등 신성장산업 발전으로 인한 대도시 경제집중도 심화 + 경제주체들의 안전자산 선호 + 경쟁 자산시장의 낮은 신뢰도'였다. 정부는 이러한 메타를 인정하고 부동산 시장에 집중하여 자산 접근성을 낮추는 정책적 실험을 시도했고, 시장은 이에 화답하여 부동산을 향한 질주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는 바로 장기간 지속되어 온 부동산 쏠림현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