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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May 20. 2020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6가지 기준

"스스로 가치투자자라 생각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얼마 전 참석했던 투자 스터디에서 사회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80%가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재미를 느낀 사회자가 재차 물었다. "그럼 가치투자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몇몇은 자신있게 대답했으나, 나머지 80%는 끝끝내 말이 없었다.(물론 나도 포함) 대답이 궁하면 경청이 언제나 최선의 전략인 법.


사실 가치투자에 무슨 정형화된 공식이 있겠는가. 무수한 기업에 투자하고 단기매매도 서슴지 않던 피터 린치나, 집중투자와 장기보유의 상징인 워런 버핏이 모두 가치투자자로 불린다. 무엇이 진정한 가치투자냐 라고 따지는 것 자체가 그리 Sexy하지 않은 거 아닐까.


전 가치투자자입니다. 그것은 가치투자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가치투자를 잘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몇 가지 경향성을 믿을 뿐이다.

훌륭한 기업은 장기간 존속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된다.

오랜기간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은 기업은 독점적 수익률과 높은 시가총액으로 보답받는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전략은 단순해진다. 바로 '잘될 기업을 찾는 것'이다. 시류를 예측하고 타이밍을 잡는 것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서 오래 보유한다. '많은 시간투입을 통한 압도적 수익률'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적 여유와 심신의 건강 + 안정적 수익률 + 지적충족감'을 목표로 투자한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기업을 선택할 때 활용하는 6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확장성

2. 통제력

3. 독점력

4. 자본창출력

5. 경영진 역량

6. 저평가 여부



1 | 확장성 - 매출 상단이 열려 있는가?


기업은 성장하는 존재다. 성장이 정체되는 순간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수익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더라도 밸류에이션이 하락하게 된다. 지속적인 성장, 가능하면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이 있는 회사면 좋다.


무엇보다 기업의 매출 상단이 열려 있어야 한다. 몸담은 산업 자체가 성장산업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단이 닫히면 기업은 소모적인 치킨게임이나 고지전에 몰두하게 된다. 상단이 열려있어야 기업이 소비자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혁신을 이뤄나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유나 유틸리티 관련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참고자료: 최근 3년간 매출증가율, 수출비중, 신규채용 여부, 공장 증설 등 자본투자 진행여부



2 | 통제력 - 기업 스스로의 힘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고, 외부요인에 취약하진 않은가?


기업은 자기 힘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매출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주 고객에게 휘둘리지 않고 의도하는 대로 물건을 팔아(Q↑) 현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방교섭력이나 자체 유통역량이 있고 기업 스스로 회전률을 끌어올릴 수 있으면 통제력이 높아진다.


매출 끝단이 단일 기업에 종속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나 온라인 판매가 금지되어 안경점 매출에만 의존하는 콘택트렌즈 회사는 통제력이 약하다. 마찬가지로 원자재 가격이나 유행병, 정치이슈 등 외부요인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기업도 선호하지 않는다. 기업 자체에 집중할 시간과 여력도 없는데 복잡한 선물가격이나 국제뉴스, 시시콜콜한 이슈들까지 전부 따라가려면 반드시 판단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항공주나 여행주, 장비주, 시클리컬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다.


참고자료: 평균현금전환주기(CCC) 추이, 운전자본/매출액 추이, 가동률 추이, 매출액 변동성 등



3 | 독점력 - 경쟁사 대비 상대적 이점이나 가격설정력을 가지고 있는가?


기업은 남들보다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 경쟁사를 능가할 수 있는 상대적 이점이 필요하다. 압도적 기술우위가 있는지, 네트워크 효과나 피드백 효과가 존재하는지, 남들이 모르는 차별화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지, 수요자들을 줄세울 수 있는 과시재적 성격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 모든 상대적 우위가 가격설정력(P↑)을 만든다. 통제력이 회전률과 안정성에 가깝다면, 독점력은 최종소비자에 대한 매력이나 브랜드가치, 마진률(Mark-up)과 가깝다. 마진률이 지나치게 낮거나, 광고에 의존해서 겨우 차별점을 만들고 있거나, '제 2의 ~~'라고 마케팅하는 회사들은 가급적 피한다.  


참고자료: 시장점유율, GP/A(매출총이익/총자산), 광고비/매출액 비중 



4 | 자본창출력 - 보유한 경쟁력을 현금이나 데이터로 전환가능한가?


기업이 보유한 자산도 성장해야 한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해도 수익창출이 안되면 지속가능한 사업영위가 불가능하다. 기업이 실제로 현금을 얼마나 창출하고 있는지 꼭 체크할 필요가 있다.


하나 유의할 점은, 전 세계 국가들이 위기극복을 위해 현금을 살포하면서 기업 내외부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돈을 빌리기 쉬워지면 현금의 희소성은 낮아진다. 반면 무형자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가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시가총액이 현금창출력 이상으로 평가된 기업이라도 희소성 있는 데이터 창출력이 있다면 프리미엄을 줄 수 있다. (ex. 페이스북의 링크드인 인수 사례)


참고자료: ROIC, FCF(잉여현금흐름) 추이, 영업활동현금흐름 추이, 보유 데이터 규모와 품질



5 | 경영진 역량 - 기업가적 열정과 높은 신뢰도를 가진 경영진이 있는가?


기업은 결국 사람이 성장시킨다. 사업모델(BM)이나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성공의 80%는 결국 실행력이 좌우한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는 모두 구상을 현실로 옮기는 능력을 오랜 시간에 걸쳐 입증받은 이들이다. 경영인의 과거 트랙 레코드를 면밀히 살펴서 신뢰도를 체크하는건 필수다.


특히 창업주가 대주주인 회사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연구결과들이 창업주가 기업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더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을 성장시켜 나감을 입증했다. 성장에 대한 갈망과 사업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찬 이들이 경영권을 쥔 기업은 어떤 위기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대주주 = 창업자 여부, 대주주 지분율, 자사주 매입 추이, 주주 친화도 등



6 | 저평가 여부 - 너무 비싸진 않은가?


기업도 결국은 성장의 한계를 맞는다. 모두가 아는 좋은 기업은 그만큼 비싸고 무겁다. 작고 저평가된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많이 성장한다. '100배 주식'에 나오는 명언처럼, 도토리로 시작해서 떡갈나무로 끝나는 투자를 지향한다. 떡갈나무에서 시작해서 극적인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싼 주식은 다 이유가 있다. 잠재력이 있는 기업은 이미 누군가 투자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괜찮은 기업임에도 조금 비싸다고 기계적으로 투자를 단념하면 안 되는 이유다. 현재 밸류는 체크리스트 상의 요소일 뿐이다. 예상하는 미래 사업가치가 가격에 다 반영되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참고자료: 시가총액(소형주 여부), PSR(주가 매출액 비율), PER, PBR, CFPS(주당 현금흐름)



구체적 적용례 | 육각형 스탯 분석과 비교


(*주의: 위 기준들은 자의적이고,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지도 않음. 각 기준별 참고자료도 그야말로 참고용임. 엄밀한 분석보다는 기업이 가진 역량을 개략적으로 분석하고 투자 스탠스를 취하기 위한 기준들임. 향후 공부를 거듭하며 기준들도 점차 보완해 나갈 예정)


현재 나는 6가지 기준별로 각각 0~5점의 배점을 두어 총점 30점을 만점으로 기업들을 평가한 후 투자결정을 하고 있다. 마치 FIFA 게임에서 선수역량으로 육각형 스탯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FIFA 게임 상의 능력치는 선수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전기차 배터리 기업 A에 투자할지를 고민 중이라 하자. 미래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고 수익성도 높은데 살짝 고평가된 것도 같다. 이럴 경우 냉정하게 각 기준별로 배점을 매겨본다.


확장성: 4점 - 전기차 판매는 확실하게 늘어난다. 친환경, 개인이동수단 트렌드도 호재다.

통제력: 3.5점 - 자체 유통채널 대신 수출대기업 납품 의존도가 높다. 수주다변화를 추진중이다.

독점력: 3.5점 - 국내 시장점유율 1위다. 기술력도 높다. 하지만 가격설정력이 강하진 않다.

자본창출력: 3.5점 - 수익지표에 비해 FCF흐름이 좋지 않다. 자본지출이 비교적 많다.

경영진 역량: 4점 - 창업주가 대주주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기술력으로 일가를 이뤘다.

저평가 여부: 2.5점 - 현재 PSR은 3.5, PER은 50, PBR은 5.5이다. 비싸다.


총합 21점이다. 백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70점 정도 된다. 나쁘진 않지만 급락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가슴 졸이는 투자를 해야한다. 23점은 되어야 투자를 고려하는 내 기준에서는 탈락이다.


이렇게 역량 중심으로 투자를 하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판단오류를 줄일 수 있다. 심장이 뛰는 기업을 찾으면 우리 두뇌는 모든 근거들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부정적 신호는 무시한다.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면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차분하게 살펴본 다음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기업 간 비교를 통해 보다 객관적인 투자결정을 할 수 있다. 하나의 기업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대안들을 함께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치투자를 게임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 정리


위 방식이 최고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는 아니다. 기술적 투자에 집중하거나, AI를 활용하거나, 테마주를 추종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투자는 믿을만한 기업을 찾아서 실제로 믿는데서 출발한다.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선택에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어야 시황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과 동행하면서 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또한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그 기준에서 기업이 벗어나기 시작할 때 자신있게 매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가치투자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바둑계의 전설인 서봉수 9단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뜬금 없지만 투자를 하면서 어떤 도그마에 얽매이려 할 때 스스로 되새기는 말이다. 가치투자, 모멘텀투자 모두 현상의 서술에 불과하다. 오로지 존재하는 건 좋은 기업과 아닌 기업일 뿐이다. 나는 좋은 기업을 묵묵히 찾아나갈 뿐이다.


"바둑의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에는 승부수니 기세니 하는 애매모호한 말은 전부 가소로운 것들로 비춰질 것이다.
신의 눈에는 오로지 정수와 악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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