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Feb 23. 2023

나르키소스의 연못

Q에 대하여

빗줄기가 바닥을 향해 쏘아지듯 떨어지던 2019년 7월의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와는 한번도 마주친 적없던 사이지만 이미 지역신문과 언론을 통해서 남성의 얼굴이 보도됐던 탓인지 그의 모습이 꽤 낯이 익게 느껴졌습니다. 꼿꼿이 편 허리, 단정한 복장, 가지런한 치아와 공손한 말투에서는 그가 입에 담기도 힘든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것이 쉽게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살해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연쇄적으로 말이죠. 의 반듯한 행색도 그가 저지른 행동과 괴리가 있었지만 저는 그의 필체와 문체를 보고 한동안 시선을 뗄수없었습니다. 그의 글은 강,약이 적절히 조화로웠고 마치  훈련받은 작가가 쓴 글처럼 가독성이 좋았지요.  

제가 그가 건넨 메모를 읽는동안, 그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보았습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없는지, 지밑단에 흙이나 빗물이 튀어묻진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그의 모습 제 시선을 둡니다. 그는 주변의 상황이나 타인의 반응은 크게 염두하지 않는것처럼 보입니다. 형식적인 대화를 나눌때는 젠틀한 자세를 유지했지만 자신의 요구사항을 언급할때는 다소 격앙된 자세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관찰할 수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도취된듯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지요. 이곳에서 저는 상당수의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숨기려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와 몸짓에는 자신감이 깃들어있고 무엇하나 꺼릴것이 없다는듯이 행동합니다. 또 주변 서열을 나누고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려하지요.


물론 적절한 '자기애'와'자신감'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원동력이 됩니다. 자신을 관찰하고 사랑할줄 알아야 더 나은 삶을 향해 발을 내딛을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사람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자입니다. 그와의 대화에서 적당한 자신감과 자기애는 찾아볼수없었죠. 미국정신진단협회(APA)에서 발행한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메뉴얼(DSM-5)에서는 나르시스트의 특성을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분류합니다. 이들은 초반에 과도하게 관심을 내보이고 상대방이 완전히 무장해제 될때까지 애정공세를 퍼붇기도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의 구역으로 넘어왔다싶으면 정복하려들죠. 이 남성도 그렇게 피해자를 물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 다 돈 때문이죠뭐. 먹고 살려다보니깐 일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되었네요.

나: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고 보시는거죠?

Q: 그렇죠. 요새 집값은 끝없이 치솟고있지, 문닫는 가게도 많잖아요. 다 먹고사는일이 힘들다보니...


그의 얘기를 듣고 있다보면 마치 경제불황에 겨워하는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다를게 없어보입니다. 는 '이 악마!', '사이코!'같은 취급을 받는것을 참을 수 없을것입니다. 이 사회의 구성단체에게 퇴출당해 격리된 사람이란것을 스스로 인정할수 없어서 사회의 틀에 맞춰 페르소나를 구성하고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열과 성의를 다 할것입니다. 또 누군가 그 가면을 벗기려한다면 극도로 화를 내거나 복수를 하려들겠지요. 지금 이 남성이 갑작스럽게 '경제불황'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은 자신의 살인행위가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라고 탓을 돌리거나 '나도 당신들과 다를거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설득하려는 시도라고 볼수있겠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이름과는 반대로 자기혐오가 깊숙히 박혀있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민낯이 들어나지 않기위해서 이상적인 가면을 쓰고 살다가, 누군가 그 가면을 실수로라도 툭하고 건드리는 상황이 되면 폭력성을 내비치는 것이지요. 그는 대화하는 종종 '내가 받은 피해들에 대해서 꼭 고소할것이다!'라며 고소와 인권위원회진정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피해를 받은 사람'의 위치에 놓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나르시시스트를 실제로 마주해서 대화해보면, 대중들에게 알려져있듯이 드라마틱하게 들어나는 특성은 쉽게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호색을 띄고있는 그들을 식별하기엔 쉽지 않을것입니다.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찰스맨슨은 자신의 자아를 부풀리는데 능숙했고 히피문화에 길들여진 젊은 사람들의 심리에 파고들어 우월한 위치를 선점했습니다. 인의 마음을 조종하고 이용해 살인으로 자신의 요구를 세상에 강요하려 한 사건의 주동자로 널리 알려져있죠. 타인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장악하고 종국엔 상대방을 파멸로 이끄는 나르시시스트들 심리적인 작용들은 제가 만난 연쇄살인범들에게도 관찰되는 대표적인 기제 중 하니입니다. 대한민국에도 유영철, 강호순같은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되었던 모든 살인범들은 사실 세상으로부터 지워진채 사라진것같지만, 지금 현재도 누군가는 연쇄살인범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분놔와 좌절을  대면하고 있니다. 저도 그 일을 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나: 그때의 일 때문에...주변에 고통받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알고 계시죠?


제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자 그의 표정에 수심이 드리웠습니다. 어떤 생각에 잠긴듯 골똘히 한곳을 응시합니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까요. 아니면 피해자와 유족들 생각에 후회에 고통스러워하는걸까요.


Q: 네. 그때 정말 힘들었죠. 그때 참 많이... 힘들었어요.


제 예상은 빗겨갔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예상도 빗겨갔겠죠. 그는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뿐이였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자신이 힘들었던 이야기를요. 참 일관적으로.


Q:  얘기 듣느라 생하셨어요. 더 할 얘기도 많지만...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그와의 대화가 끝이났습니다. 사람을 살해햔자와 한공간에 있다는것이 때로 숨이 막혀올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 혹은 어둠에 홀린 악마'같은 존재 일까요. 아니면 그저 평범한 피와 살로 만들어진 나약한 인간이 세상의 괄시와 무관심, 학대와 폭력에 얼룩져 괴물로 만들어진것일까요.

제가 이 일을 하며 알게된건,  끔찍한 이야기에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뿔 달린 심연의 어둠같은것이 손예 피를 묻힌채 서  있을것 같았지만, 정작 그 자리에는 항상 우리 인간이 서있었다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잔인한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