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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10. 2023

그늘을 좋아하는 꽃

주저흔#9

 괴담처럼 입과 귀로 옮겨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둡고 침울했지만 사람들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혀를 쯧쯧 찼고 누구는 역정을 내거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을 느꼈. 마치 역병처럼 퍼진 이 이야기의 무대는 2평 남짓한 작은 방. 한 젊은 은둔자에게 그 방은 전체이자 우주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십 년째 방에 틀어박힌 아들이 있다는 소식은 친척뿐만 아니라 엄마, 아버지의 지인들에게도 퍼졌습니다. 간혹 부모님의 손님이 오시면 전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소변이 급해도 참았습니다. 기침이 나오면 이불을 뒤집어썼죠. 집에 우환이 하나 들어앉아있으니 저 때문에 온 가족이 십자를 지고 가는듯했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십 년이 지나자 엄마는 저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참 열정적이셨는데, 그 열정이 이젠 다 타버려 재가돼버린 것이겠죠. 두뇌발달에 좋다며 피아노 학원으로 제 손을 잡아끌던 엄마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저를 농구부에 입단시키기 위해 앞장서던 그 발걸음도 기억나고요. 이젠 막내아들이 숨만 쉬어도 감사하다는 그 말을 하실 때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요.


"저 방에는 누가 있는 거야?"

제게는 열 살 이상 차이나는 늦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특히 동생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는 온몸이 얼어붙는 거 같았습니다. 저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될까 봐 숨소리마저 죽였죠. 저 방안에 누가 있냐는 질문에 동생은 무슨 답변을 했을까요. 동생이 태어날 때 저에게 동생이 생겼다면서 환호성을 질렀던 것이 생각납니다. 걸음마를 뗄 무렵에 동생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뻐하던 순간도 떠올랐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참 잔인한 것 같아요. 왜 꼭 절망적인 순간에 행복했던 장면이 함께 떠올라 사람의 마음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은 아무리 기도를 청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앉자 깊게 좌절했습니다. 얼마나 절실하셨으면 그리 독실하신 분께서 점까지 보러 가셨을까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사주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 이름을 풀어보니 물과 불이 서로 부딪혀 인생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 곧바로 개명신청을 하기도 했죠.

저도 아주 조금이지만 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습니다. 졸업장도 취득했고 국방의 의무도 다 마쳤습니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장 같았던 방도 한 번씩 정리하기 시작했죠. 노숙으로  빠질 수 있었던 제가 이렇게 지붕아래 살 수 있는 건 모두 부모님의 지원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뭐라도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품은 게 그때 즈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완전히 바닥을 찍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지나온 10년의 세월. 자기 연민도 지겨웠습니다. 세상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지쳤습니다. 다짐과 좌절을 반복하는 일에도 신물이 올라왔죠. 더 이상 누구도 저의 다짐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가족마저도.


한 번은 노량진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다시 책가방을 메고 수업을 듣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서요. 그렇게 긴장반, 설렘반으로 강의실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 그때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붙어 앉아 있는 광경을 태어나서 처음 목격했습니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제 얼굴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책상에 시선을 둔 채 무언가를 적고 있었어요.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었구나..."

전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저보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어린 학생도 있었습니다. 검정고시와는 차원이 달랐던 두꺼운 책들, 이미 수능을 경험하고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엄두는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공무원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어서였을까요.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고립되어 있던 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흔쾌히 백만 원이라는 비싼 금액을 지불하셨습니다.

처음엔 중학교 영어단어책부터 펼쳤습니다. 'other', 'price' 같은 처음 보는 단어들이 1800개나 수록되어 있는 단어집. 문법은 또 왜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지, 'The effect is~'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왜 'The'가 주어가 아니고 'effect'이 동사가 아닌지, '맨 앞에 있는 것이 주어라고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당연히 이 정도는 알 것이라며 넘어가는 강의 영상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무료로 제공되어 있는 중고등 수준의 강의를 찾아 자음과 모음, 주어와 동사부터 다시 암기했습니다.

'하다 하다 공무원 수험생으로 도망쳤네.'라는 목소리가 저의 귀에까지 꽂혔습니다. 저의 경로는 주변 모두의 소소한 흥밋거리 중 하나였나 봅니다. 지만 말 분하고 화나는 것은 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내 말이 맞지!'라며 무릎을 딱 칠만한 빌미들을 계속 제공해 줬죠. '검정고시도 4년이나 걸린 놈이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제 스스로 증명해주고 말았습니다. 학원을 등록한 지 6개월, 저는 책을 전부 찢어서 폐박스함에 넣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방으로 들어가 숨었죠. 비가 온 뒤 땅이 단단해진다고 하지만 소심한 도전뒤에 따라오는 실패의 후유증은 그 꼬리가 꽤나 길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어느덧 돌아보니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더군요. 일전에 몇 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오래 하진 못했습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대인관계도 생성되었지만 그 관계도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저의 고립되었던 결핍의 덩어리가 관계에 투사된 건지 깊은 관계까지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네. 다음에 보자."

간혹 저녁약속을 잡으려고 메시지를 보내면 열에 아홉은 이미 선약이 있다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잦아지니 저도 더 이상 먼저 식사요청을 건네기가 무서워졌습니다. 궁금했어요. 만약 상대방이 저를 조심스럽게 대해주고 배려해 주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행동의 의미가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싶고 서로 좀 더 깊게 소통하고 싶다. 

인지 아님 그 반대로,

-나는 당신의 편안함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도 이 이상은 침범하지 말아 주세요.

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더는 상처받지 않게요. 그리고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후에나 깨달았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저의 대인관계에 대한 기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놓여 있는 상황, 그리고 저라는 사람이 보여준 모든 결과물에 있다는 것을요.



(뒷페이지)

'금낭화'라는 꽃이 있습니다. 산지의 돌밭이나 계곡에서 잘 자라는 분홍빛의 색이 아주 예쁜 꽃입니다. 보통 꽃은 따스한 햇볕을 받아야 잘 자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대로 이 꽃은 그늘을 좋아하는 꽃입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 제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무기력하고, 나약하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요. 그늘 아래에서도 아주 예쁜 꽃잎을 만개하며 피는 꽃이 있습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약한 것이 아니라고.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상처받은 것뿐이라고.

그리고 꼭 다시 일어나 행복을 찾아갈 것이라고.


남들과 다르다고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기로 해요.

어쩌면 우리는  햇빛보다는 그늘에서 꽃잎을 만개하는 '그늘을 좋아하는 꽃'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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