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연속 비가 오는 주말을 아이들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이 키우는 집에선 비가 오는 공휴일엔 비상이 걸린다. 물고기를 잡든, 곤충을 잡든, 모래 놀이터에 가서 땅을 파든 직접 뭔가를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은 비가 오면 전부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음 주 토요일엔 꼭 바다에 가기로 지난주에 약속했는데, 주중에는 그토록 해가 따갑더니 주말만 되면 2주 연속 비가 왔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의 짜증을 받아내다가 결국 키즈카페에 갈 게 뻔했다. 비 오는 주말의 키즈카페라니! 봄날의 놀이공원만큼이나 인원이 북적이는, 인구밀도 최악의 장소이다. 게다가 주말에는 더 비싸지는 키즈카페의 비용은, 4인 가족이 이용하면 2시간에 10만 원 돈을 훌쩍 넘는다. 키즈카페는 보통 2시간 단위로 입장료를 내는데 아이보다 조금 저렴하긴 하지만 어른도 돈을 내야 하고, 특히 유아를 넘어 초등학생까지 이용 가능한 곳은 더 비싸다. 비싼 돈을 내고 엉덩이 붙일 곳도 찾기 힘든 곳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꽉 막힌 키즈카페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족한 장난감을 가지고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 일쑤다. 특히나 자기 아이와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까지 만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조차 모두 빼앗긴 채 후회만 남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비가 오는 주말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우리는 첫 가족회의를 열기로 했다.
가족회의를 제안하자 다들 호기심을 갖고 동의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한술 더 떠서 자료를 만들어오겠다며 신나서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는 빽빽한 표로 이루어진 주말 계획표 양식을 작성해 왔다. 무슨 생각인 걸까? 첫째에게 가족회의 진행도 부탁하자 첫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제1회 가족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제가 만들어 온 종이를 한 장씩 가져가 주십시오. 여기에 다른 사람이 보지 않도록 조심해서 주말에 시간대별로 하고 싶은 일을 적어 주십시오. 그런 다음 투표를 거쳐 주말에 할 일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생각한 건 그저 비 오는 주말에 무엇을 할지 아이디어를 내보자는 정도였는데, 스케일이 큰 첫둥이는 평소에 쓰지도 않던 경어까지 써가며 격식을 갖추었다.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걸까? 웃음이 났지만 참고 남편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아이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우리는 각자 주말에 시간대별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종이에 적었다. 도서관, 수영장, 온천, 박물관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글자를 모르는 막둥이는 그림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생활 계획표처럼 빼곡한 주말 계획표 작성을 마치자 첫둥이가 말을 이었다.
"제가 누구 건지 밝히지 않고 계획표를 발표하겠습니다. 1번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안방으로, 2번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첫둥이 방으로, 3번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막둥이 방으로, 4번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거실에 남아 주십시오."
손을 드는 게 아니라 방으로 이동하란 말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첫둥이 마음이 상하지 않게 웃음을 누르며 손을 들고 말했다.
"너무 복잡해서 모르겠어요. 헷갈립니다. 더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러자 첫둥이는 고민하다 다시 발언을 했다.
"그럼 1번은 두 손을 번쩍 위로, 2번은 주먹을 위로, 3번은 한 손만 위로, 4번은 가위손을 위로 들어주세요."
이번엔 남편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너무 어려워요. 더 쉬운 방법을 알려주세요."
결국 첫둥이는 모두의 의견을 따라 거수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각자가 낸 의견에 손을 들었다. 남편이 내 의견에 손을 더하며 두 표로 최다득표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특히 첫둥이는 거의 울먹이며 가족회의가 파투 날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서둘러 손을 들고 발언했다.
"꼭 한 사람의 의견만 따라야 하나요? 의견 낸 것들을 종합해서 다시 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고 "동의합니다", "제청합니다"하는 형식적인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우리가 완성한 주말 계획표!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 후 쿠키를 만들고, 종이배를 접는다. 점심 식사 후 일기 예보대로 비가 그치면 놀이터 물길에 오전에 만든 종이배를 띄운다. 늦은 오후에는 온천에 가서 물놀이를 겸해 몸을 씻고 저녁을 먹은 후,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과연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엄마, 일어나 밥 줘. 나 배고파 죽겠어. 여기 굶어 죽는 곳이야?"
주말 아침,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막둥이는 새벽 여섯 시가 갓 넘었는데 씩씩대며 침대에서 말했다. 주말이라도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막둥이의 말이 너무 웃겨 잠이 깨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어디서 또 저런 말을 듣고 와서 하는 거야?"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유치원생 막둥이는 이어서 뽀뽀 공격을 해댔다.
"피곤하면 내가 뽀뽀해 줄게. (뽀뽀) 자, 이제 힘나지? 얼른 일어나서 같이 손잡고 나가자."
아이들은 냉장고에서 쿠키 반죽을 꺼내 능숙하게 만들기를 시작했다. 뱀, 자동차, 물고기, 달팽이, 애벌레 등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잔뜩 만들어 놓았다. 이어서 색종이, A4용지, 신문지 등 각종 다양한 크기의 종이로 배를 접었다. 비는 점차 굵어졌고, 정말 비가 오후에 그칠까? 의문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종이 접기의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의 방과 거실은 종이배로 가득 찼고, 급기야 스티로폼과 빈 페트병, 플라스틱 통 등을 이용해 물에 띄울 배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점차 종이배 접기는 만들기 시간으로 확장되었다.
일기예보를 틈틈이 확인하는데 비가 멈추는 시간이 점점 연장되었다. 급기야 비가 멈춘다고 떠 있는 시간에도 굵은 소낙비가 내렸다. 놀이터 물길에 배를 띄우러 가기는 포기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배 자체에 자부심을 느꼈기에 실망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듯했다. 집에 있는 욕조에라도 띄우자고 했지만, 만든 배가 젖는 게 아까웠는지 물에는 띄우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남편과 온천으로 향했다. 아들만 둘이라 좋은 점, 온천과 물놀이는 무조건 남편과 간다는 사실! 남편이 출근하는 평일에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다닐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주말이면 장점으로 변해 빛을 발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 놓고 여유롭게 빨래를 개고 저녁을 준비한다.
네 명의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뤄가는 날들이 감사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양보하고 조금씩 맞춰가면서 하나 되어 움직이고 기쁨과 즐거움, 노여움과 슬픔을 공유하는 순간들이 복되다.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네가 하늘에서 아기천사였을 때 사람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아우성쳤지. 엄마가 날개 달린 너를 쫓아갈 수 없어서 엉엉 울고 있을 때, 네가 먼저 다가와줬지 뭐야. 이렇게 예쁜 아기 천사가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아이가 자신의 태몽을 물을 때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너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야,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쁜데 잘하는 게 이렇게 많으니 엄마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럴 때마다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밝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런 존재구나'하고 되새기듯이.
우리의 첫 가족회의와 시행 결과는 성공이었다. 아이들은 평소 해오던 것과 비슷한 주말을 보냈지만, 직접 계획하고 이뤘다는 성취감을 느껴했다. 남편과 나도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서 벗어나 심적으로 여유로웠다.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앙드레 모루아도 "가정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집이 그런 곳이기를, 세상의 작은 자로 살고 있는 남편과 나에게도 집이 그런 장소이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