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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May 31. 2024

아이가 있는 집의 삼시세끼

어떻게 하면 나물을 먹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밥상 투쟁기

'어린아이와 늙은이의 살은 한 밥에 오르고 한 밥에 내린다'는 옛말이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을수록, 한두 끼의 식사를 얼마나 잘 챙겨 먹느냐에 따라 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들은 매해 국가에서 해주는 영유아 검진을 통해 건강을 관찰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몸무게와 키의 성장이다. 마치 부모에게는 숙제와도 같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 너무 많이 나가도, 적게 나가도 안 되는 평균을 유지하는 것은 평균대 위에서 한 발로 균형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해야만 하는 숙명이다.


  얼마 전, 시골에서 각종 나물을 받아왔다. 시금치, 방풍나물, 참나물, 꽃나물, 피나물, 가죽나물, 청경채 등 예전엔 음식으로 만들어 주시던 엄마는, 이제는 원물 그대로의 채소를 주신다. 직접 해보니 다듬고 씻고 음식을 만든다는게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채소는 금방 시드는 데다가, 벌레가 한번 생기기 시작하면 상태가 훅 나빠지기 때문에 빨리 해치워야 한다. 보통은 삶아서 데쳐 나물을 만들었다. 나물을 만드는 건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숙한 시금치나물 정도야 갓 무쳤을 때만 참기름 향에 오물오물 받아먹지만, 다른 나물들은 특유의 향과 쌉싸름한 맛 때문에 잘 먹으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 입장에선 건강한 음식은 어떻게든 먹이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나물을 먹일 수 있을까? 깊은 고민 끝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조금씩 첨가해 보기로 했다.


  이번 글은 아이들에게 나물과 채소를 먹이고자 하는 분투기이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삼시세끼 투쟁기이다.



나물을 다듬는 데만 반나절
많아 보여도 데치고 나면 쑥 줄어드는 시금치
몸에 좋지만 쌉싸름한 방풍나물


  시골에서 받아온 나물을 한번 솎아내고, 익숙한 시금치와 쌉싸름한 방풍나물에 먼저 도전했다.


1. 제일 만만한 건 역시 ‘김밥’

  아이들 모르게 속재료를 나물로 은근슬쩍 바꿀 수 있다. 햄과 계란만 빠지지 않는다면 나물도 오물오물 먹지 않을까? 자칫하면 김밥 자체를 아예 안 먹을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나물을 넣은 김밥에 도전했다.

요리 시간 단축을 위해 3 팬 가동. 나물을 데치며 계란 지단을 부치고, 다른 재료들도 볶는다.
전에 줄 서서 먹는 유명한 김밥 집에 갔더니 계란을 이렇게 길게 채쳐서 넣길래 따라 해 보았다.
계란 지단을 그냥 놔둘 리 없는 강아지들. 계란과 햄, 게맛살이 없어지기 전에 얼른 김밥을 싸야 한다.
김밥에 시금치와 방풍나물을 넣었다. 과연 아이들이 먹을 것인가? 두근두근


김밥을 기다리는 강아지들.


아이의 엄지 척! 이 맛에 요리를 한다. 다행히 나물 김밥도 잘 먹는다.
열 줄을 말았지만 아이들이 계속 집어 먹어 사진 찍을 땐 이것만 남았다.
유치원생 둘째를 위해 꼬마 김밥도 쌌다.


2. 김밥 싸고 남은 재료 없애기

김밥을 싸고 남은 재료들로 다음 식사를 준비했다.

김밥을 싸니 라면을 찾길래 저녁으로 잔치 국수를 끓였다. 남은 계란 지단과 볶은 당근을 이용해 휘리릭 끝냈다.


3. 아침은 쉽고 빠르게

나물을 넣은 소고기 미니 주먹밥

아침은 무조건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냉장고에 있는 불고기에 나물, 김밥 싸고 남은 자투리 야채들과 김을 다져 넣어 미니 주먹밥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뿌리고 깨를 솔솔 뿌리면 아이들의 입맛 저격이다.


4. 이번에도 좋아하는 음식에 나물을 섞는다.

나물 김밥 성공에 힘입어 다양한 나물을 넣은 잡채에 도전했다. 아이들이 잡채를 좋아해서 이번에도 성공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기력을 끌어 몰아 요리를 한다.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갖은 야채를 볶다 보니 벌써 한 솥이다.
돼지고기 안심과 시금치, 방풍나물, 가죽 나물을 넣었다.
자기들도 함께 만들겠다고 나서서 손이 세 개다. 요리하고 있으면 무조건 자기들도 하겠다고 덤비는 아들들. 나중에 너네가 엄마 밥 좀 해줘라.
맛있는지 간을 보겠다는 아이들. 이게 간을 보는 거야, 식사를 하는 거야?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잡채. 아직 엄마의 손맛은 따라갈 수 없지만 얼추 비슷한 맛이 난다.



5.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스타에 나물을 넣어보기

나물 김밥, 나물 잡채 그리고 이번엔 나물 파스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 나물을 조금씩 첨가해 본다.

올리브유에 방울토마토를 잘라 넣고, 냉동실에 있던 바지락과 새우를 넣어 육수를 만들었다.
면 위에 시금치와 청경채를 듬뿍 얹었다. 많아 보여도 숨 죽으면 사그라드는 게 야채니까.
어른용에만 마지막에 레드 페퍼를 뿌렸다. 아이들과 함께 먹다 보니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슬플 때가 있다.

첫째는 새우, 둘째는 바지락과 토마토를 잘 먹는다.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입맛이 제각각이라 비위 맞추기가 힘들지만, 둘 다 좋아하는 걸 넣으면 다 같이 행복한 밥상이 된다.


6. 만만하고 맛있는 두부

장 볼 때 웬만하면 두부는 꼭 사는 편이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부 동그랑땡을 응용한 두부 피자를 만들었다.

두부를 으깨서 달걀과 파프리카, 계란 등을 넣어 부침개처럼 넓게 부친 뒤에 모차렐라와 짜지 않은 아기 치즈를 넣어 반으로 포갰다. 피자처럼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담백한 두부 달걀 야채 피자!


7. 아이가 키우는 상추가 풍년이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상추 모종 4개를 받아왔다. 첫째와 두 개씩 책임지고 키우기로 했는데, 어찌나 잘 키웠는지 잎이 무성하게 자란다. 잎을 따주지 않으면 다른 잎이 자라지 않거나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얼른 틈틈이 상추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었다.


직접 기른 상추 따는 둘째.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엄지와 검지로 집게손을 만들어 톡톡 잘라낸다.
샌드위치는 재료 준비가 요리의 절반이다. 그만큼 준비에 손이 많이 가지만, 재료만 준비해 두면 만들기는 편하다.

  신선한 상추를 넣은 샌드위치를 여러 번 만들어먹었다. 상추가 어찌나 연하고 부드러운지 그냥 상추만 먹어도 맛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냥은 먹지 않기에 맛있는 것에 끼워서 줘야 한다. 설탕과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통곡물 식빵에 딸기잼을 조금 발라 만들어주었더니 아이들도 아주 잘 먹는다.


8. 아직도 상추가 남았다. 상추가 너무 빨리 자란다.

  오리고기를 굽고 상추쌈에 상추 겉절이까지 곁들었다. 첫째는 상추에 오리고기를 싸 먹었는데, 둘째는 오리만 먹었다.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먹이지만 어김없이 돌아오는 삼시세끼. 오늘도 아이들을 건강하게 먹이기 위해 엄마의 요리 분투기는 계속된다. 우리 집엔 화려한 식기구나 훌륭한 요리사는 없지만 가족들을 반기는 따뜻한 음식이 있고, 느티나무처럼 쑥쑥 자라나는 멋진 아이들이 있다.

오징어와 바지락, 토마토, 브로콜리, 시금치 등을 넣은 파스타와 오리고기. 열심히 만들었지만 아이들이 면과 오리고기만 건져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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