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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Nov 30. 2023

엄마, 우리 집은 몇 평이야?

아이의 목소리에서 어른들의 말이 들린다

  저녁을 먹던 첫둥이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엄마 우리 집은 몇 평이야? 한 60평 정도 되지?"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던 아이의 질문이 놀라웠다.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이에게 되물었다.

  "꿀동아 우리 집이 몇 평인지 왜 궁금해?"


  첫둥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대형 평수가 많은 단지이긴 하지만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제일 작은 평수이다. 이것도 운 좋게 마련한 집이었다. 그렇다고 내 생각엔 그렇게 작은 평수도 아니다. 4인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고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집들 중 제일 넓은 평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첫둥이는 왜 우리 집 평수가 궁금해졌을지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첫둥이는 매콤하게 볶은 닭갈비 속에 우동 면발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친구들이 얘기하길래. 정하네는 48평이고 준수네는 60평이래. 근데 나는 이런 건 하나도 몰라서 할 말이 없었어."


  만으로 고작 8세에서 9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왜 평수가 궁금한 걸까. 이게 바로 뉴스 기사에서 보던 아이들 사이의 재력 과시인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괜히 학군이 좋다고 소문난 곳에 살아서 아이가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점점 부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이야기를 나누고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다시 첫둥이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왜 평수가 궁금했을까. 평수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는 하는 거야? 집 크기를 말하는 건데 그걸로 누가 더 부자인지를 따지는 거라면 아무 의미도 없어. 평수가 넓다고 부자도 아니고, 부자라고 해서 그 사람이 더 멋진 사람인 것도 아니야. 꿀동이 너도 친구를 사귈 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잖아. 우리 집은 여기 단지에서는 제일 작지만 엄마는 그것보다는 다정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더 멋진 집이라고 생각해."


  집 가격이 평수로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려다가 남편의 눈치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의 한 마디에 더 치사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건 나였다. 첫둥이는 편안한 얼굴로 닭갈비를 집어 먹으며 씩 웃으며 말했다.


  "엄마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애들 몇 명이 말하길래 궁금했던 건데 나도 우리 집이 제일 좋아. 엄청 큰 집 백개를 갖다 줘도 우리 집이랑 바꾸지 않을 거야. 엄마, 아빠랑 동생이랑 이렇게 넷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이 최고야."


  아이와 대화는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지만, 아이의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에 남았다. 아이를 통해 듣는 말은 대부분 그 부모에게 흘러왔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자기 집 평수가 60평이고, 집에 리무진이 두대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말도 잘 못 하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우리 차는 제네시스  G90이야"라면서 막둥이에게 말하는 걸 들었다. 우리 막둥이는 "우리 차는 하얀색이야"하고 웃을 뿐인데 말이다. 넓은 집에 살고 큰 차에 타는 것이 만족을 넘어서 타인에 대한 자랑이 되는 순간 주변에서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등 돌리게 된다는 걸 왜 알지 못할까. 내가 정말 부러워하고 닮고 싶은 사람은 곁에 서면 한 없이 평안한 마음이 들고, 가진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베풀며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는 진정한 어른이다.


저녁으로 먹은 닭갈비.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 맛이 일품이다


  막둥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0세부터 만 2세까지 다니는 작은 가정 어린이집이 아니라 0세부터 만 5세까지 다니는 규모가 제법 있는 민간 어린이집이다. 다양한 교육과 행사를 많이 해서 멀리에서도 찾아오는 곳인데 셔틀버스는 운행을 하지 않아서 자차로 등하원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집은 비교적 가까워서 평소에는 걸어서 다니는데 가끔 차를 타고 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평소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다른 집 차를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저 차에 엄마와 어린아이 둘만 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차가 어린이집 앞에 즐비하다. 아우디, 폭스바겐, 링컨, BMW, 벤츠 등 나는 차도 잘 모르는데 남편이 저런 차 옆에는 주차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 차들이다. 이유 없이 어깨가 움츠러들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우리가 마련한 이 차도 우리에게 감지덕지이다. 우리에게 딱 알맞고 필요한 차이다. 게다가 연료가 LPG라서 고물가 시대에도 유지비가 저렴하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우리 차에 다른 친구들을 거리낌 없이 태워 셔틀버스처럼 운행해 준다. 아이들이 과자를 먹다가 부스러기를 흘리고 신발을 신은 발을 통통 흔들어대서 여기저기 흙이 묻지만 즐겁기만 하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 <다산의 마지막 습관> 등을 집필한 조윤제 작가는 그의 저서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에서 아이의 언행이 부모에게서 왔음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올바른 자녀교육은 반드시 부모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일상을 보고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배움을 얻는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는 가르침이 이것을 말해준다."


  부모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지를 아이가 그대로 보고 배운다. 얼굴이 아니라 등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아이는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등을 가지고 있을까? 돈이 없어서 쩔쩔매지는 않을까, 가지지 못한 재산을 부러워하며 결국엔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을까?


  한 번은 막둥이 어린이집 친구의 엄마에게 초대를 받았다. 한때 잘 나가는 필라테스 강사였다는 그 엄마는 평소에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 레깅스 엄마는 쉬지 않고 본인 이야기를 했다. 집에 차가 두 대라서 오늘은 지윤이가 좋아하는 리무진을 끌고 왔어요, 남편이 돈을 너무 많이 벌어서 그만 벌라고 대기업에 입사시켰어요, 친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많아요. 레깅스 엄마는 본인 잘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집 안에 있는 물건들 대부분이 고가라서 다른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게 해 달라고도 했다. 아이들이 선반 가까이에만 가도 큰 소리를 내며 저지했다. "그거 비싼 거야, 만지면 안 돼!" 우리에게 내준 식기도 백화점에서 천만 원을 넘게 주고 산 거라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결국 파스타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내 아이의 손만 쳐다보다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수천 만원짜리 그릇이 무슨 소용인가, 아이들에게는 실리콘이나 플라스틱 그릇이 최고다.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만져도 다치지 않는 그릇 말이다.


  레깅스 엄마가 본인 자랑을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타인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혀 둔 자랑거리를 풀듯 본인 이야기에 급급했다. 이후로 조용히 레깅스 엄마와 거리를 두었다. 그 엄마가 실제로 얼마나 부자인지는 몰라도 마음은 정말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둥이가 태권도 학원 주말 행사로 토요일 일찍부터 도장에 갔다. 주말에는 차량 운행을 안 해서 남편이 차로 태워다 주었다. 다녀온 뒤 남편은 물을 한잔 들이켜며 말했다.

  "꿀동이 내려주고 가려는데 다른 친구가 아빠 차에서 내려서 꿀동이랑 인사하더라고. 근데 차가 포르셰인 거야. 꿀동이 친구네 차가 포르셰더라고.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네."

  우리도 모르게 비싼 차를 보면 쳐다보게 된다. 주말마다 어쩔 수 없이 비싼 동네를 지나가는데 으리으리한 집과 질주하는 고가의 차량들을 보면 움츠러든다. 돈이 뭐라고 우리를 이렇게 주눅 들게 하는 걸까? 사실은 아이들이 움츠러드는 우리 모습을 보고 배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첫둥이와 집에서 홈스터디를 한다. 열심히 수학 문제지를 푸는 첫둥이에게 물었다.

  "첫둥아 너는 왜 공부해? 왜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첫둥이는 눈을 깜박이며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나중에 커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려고."


  첫둥이의 이 대답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 내가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어도 내 생활태도에서 왔을 것이다. 아니면 주변 어른들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공부를 열심히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꽉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아이가 흡수했다. 아이의 말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친구에게 좋은 것을 나눠주고 기쁘게 양보하는 예쁜 모습도 있지만, 아이는 숨겨둔 거울을 보는 것처럼 부끄러운 내 모습마저 따라 한다.


  아이에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비싼 집과 차에 움츠러들지 않고, 하늘을 메우는 눈발과 상냥한 눈 마주침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다.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발적 간소화, 노예제 폐지, 시민 불복종, 자본주의적 개발 비판, 개인의 양심과 자유, 직접 행동, 비폭력 저항 등을 제시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대개의 사람들이 의사나 법률가, 목사가 될 때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나무를 자르며 소소한 일거리를 즐겼다. 일 년에 한 달 일해서 나머지 열한 달 동안 광활한 자연을 누렸다.


  소로는 훗날 레프 톨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존 F. 케네디, 법정 스님 등에게 두루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저서 <소로우의 일기>를 낸 도솔 출판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노동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추위를 막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 나무를 베고 콩밭을 맨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서 얻는 만족을 더 즐겁게 생각했기에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위대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흠뻑 몸 입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며, 바람처럼 햇살처럼 기꺼이 지구별에 숨탄것들을 껴안고 사는 사람 말이다. 나를 드러내되 오만하지 않고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서 찾지 않는 사람, 목소리의 떨림 하나조차 위로가 되며 창문을 열면 가을이 오듯 일상이 자연스러운 힘으로 가득한 사람이 좋다. 안대근의 시처럼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 최은영의 소설처럼 '무해한 사람'을 꿈꾼다. 내 가슴속에, 그리고 아이의 삶 속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을 가득 불어넣고 싶다.


아이와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었더니, 좋아서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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