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가족의 밤 행사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푸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가족의 밤 행사를 했다. 한 달 전부터 처음 듣는 동요를 흥얼거리던 푸른이는 염려와 달리 기쁘게 준비하는 듯했다. 행사 전날 밤에는 풍선을 불어 달라고 하더니 테이프로 안방 벽 이곳저곳에 붙이곤 아빠가 오면 같이 공연을 하자고 했다. 아빠는 관객, 아이는 주연, 엄마는 조연으로 말이다. 어린이집에서 행사 때마다 풍선을 붙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게 웃음이 났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자 푸른이는 아빠를 불러 자리에 앉히고 나를 자기 옆에 세웠다.
"아빠, 내가 내일 이거 어린이집에서 할 거야. 반짝이는 빨간 모자를 다 똑같이 쓸거라 나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내 눈을 보고 알아야 해. 눈을 이렇게 뜨고 있을 거야. 알겠지?"
푸른이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눈을 강조했다. 똑같은 모자에, 똑같이 빨간 망토를 두르고 서면 부모님이 못 알아볼까 봐 걱정하다니. 푸른이의 진지한 태도에 남편은 알겠다며 웃음을 참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내 옆에서 나를 따라 해. 손은 배꼽 위에, 다리는 이렇게 접었다 폈다 흔들어."
푸른이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배웠을 노하우를 나에게 전수하며 율동을 시작했다.
"아이 위 슈어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 위 슈어 메리 크리스마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자기를 따라 하라던 푸른이는 반대로 엉거주춤한 자세의 나를 따라 하며 난처해했다. 아빠가 오기 전에 혼자 할 땐 잘하더니 내가 옆에 서자 선생님을 따라 하던 습관이 드러나 오히려 헷갈리는 것이다. 푸른이의 공연은 아빠의 품에 파고들며 급하게 끝이 났고, 다음 날 공연도 그렇지 않을까 예상이 되었다.
공연 날이 되자 푸른이는 약속대로 빨간 티에 검은 바지를 입고 무대에 섰다. 푸른이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형님반이다. 만 0세 아이들부터 공연을 시작하는데 걷지 못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앉아서 손목에 달린 딸랑이를 흔들었다. 주도적으로 흔든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딸랑이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무대를 보고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손뼉 치는 어른들을 구경하며 입을 벌리고 침을 흘렸다. 아무것도 안 해도 기저귀 차고앉아있는 모습 그대로도 귀여운 아기들이었다.
만 0세에 이어 만 1세, 2세, 3세 반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무대라기보다는 따뜻한 온돌방에 마련된 풍선 뭉치 속에 앉아서 율동을 했다. 푸른이네 어린이집은 특별한 발표회를 준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가족의 밤을 운영한다. 그럼에도 난처함에 울음을 터뜨리거나 엄마를 찾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운 게 어린아이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과 놀듯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밖으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푸른이가 속한 대망의 형님반인 만 4세 아이들은 준비 태도부터 달랐다. 마스킹 테이프가 붙여진 자신의 자리에 2열 횡대로 줄을 맞추어 섰다. "울면 안 돼"를 콩콩 뛰며 율동하고, 앞 줄과 뒷 줄을 바꿔 서더니 "아이 위 슈어 메리 크리스마스!"를 목청껏 열창했다. 줄이 맞지 않는 아이에겐 서로 손짓하며 자리를 일러 주기까지 했다. 마지막 곡이 되자 앞 줄과 뒷 줄이 합쳐지더니 수화로 "나의 처음 사랑 동요"를 불렀다. 아이들의 공연을 보며 한 살이 늘어날 때마다 그 1년이 그냥 가는 게 아니라 키가 크고, 몸이 자라며 할 수 있는 활동과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공연을 마친 푸른이는 신나서 깡총대며 손을 잡아끌었다.
"아빠, 저긴 체육 선생님이고 여긴 우리 선생님이야. 그리고 저기가 내 반이야. 저 선물은 떡이고, 이따 우리 반으로 가서 같이 케이크 만들 거야."
푸른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주고 싶은 듯 종알대며 어린이집 소개를 했다. 형이 학원을 빠지고, 아빠는 회사에 오후 반차까지 내고 어린이집에 온 게 무척이나 뿌듯해 보였다. 남편이 속한 회사 부서는 연말이 무척 바쁜데, "어린이집 발표회에 가야 해서 오후 반차 쓸게요"하고 어렵게 말하고 왔다. 아빠가 오지 못할 수도 있단 말에 조마조마했던 푸른이는 아빠의 등장이 산타 할아버지보다 더 반가웠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품도 많이 들고 어려움도 많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에 비하면 경중을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작은 손짓 하나, 조그만 발걸음 한 번이 이렇게 큰 감격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아이들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에서
그대들의 아이는
그대들의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갈망하는
저 위대한 생명의 아들딸입니다.
아이들은 그대들을 통해서 왔지만,
그대들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대들과 함께 있지만,
그대들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수 있지만,
영혼의 거처를 마련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들이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조차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그대들처럼 되게 하려고 애쓰지는 마십시오.
생명이란 뒤로 가지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은 활입니다.
그대들의 아이들이 살아 있는 화살이 되어 앞으로 날아가도록
그들을 쏘는 활입니다.
활 쏘는 분은
무한의 길 위에서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을 힘껏 당겨 구부립니다.
활이 되어, 그 분의 손에 당겨 구부러짐을 기뻐하십시오.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