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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Oct 21. 2023

'최선'이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누구나 최선을 다하는 듯


오늘 소개할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김나훔 작가의 <경주 2>입니다. 따뜻한 봄, 경주를 찾은 작가가 왕릉 앞 나무 그늘에서 발을 흔들며 쉬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고 그린 그림이라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 시름을 다 잊은 듯한 아기곰처럼 보였다고 해요. 


김나훔 경주2

위의 그림은 황선우와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의 표지로도 쓰였습니다. 바삐 하루를 보내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이 책은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내 최선의 정도, 내 숨의 길이를 깨닫기 위해 반드시 ‘최선’을 기울였던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은 쉬어가는 중인가요? 최선을 다해 달리는 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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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이라... 정말 어려운 단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기는 하지만 막상 ‘최선’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망설여진다. 험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으면 뭐 그게 최선인 것 같기도 하고. 

 


이십 대 때 5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아버지는 IMF로 명퇴하고 내가 다시던 회사는 망하는 삼중고로 멘탈이 붕괴된 적이 있다. 사주팔자를 그리 신뢰하지 않기도 하고 막상 안 좋은 말을 들으면 떨쳐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주카페를 그때 처음 찾아갔다. 인생이 왜 이리 꼬이기만 한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벽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사주를 보러 가지 않았으니 그때 당시 절박하긴 했나 보다.


사주를 보시는 분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지금 힘들어서 죽을 것 같지만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은 그렇게 큰일이 터지는 팔자가 아니야.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온다고 했지? 지금 몇 가지가 겹쳐서 조금 그렇긴 한데 어쨌든 금방 다 해결될 거니까 걱정 마. 그리고 앞으로 평생 평탄하게 살 팔자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런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어쨌든 곧 다 해결된다는 말 한마디가 희망의 불씨가 되어 나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해결되었다.  


언급한 삼중고 외에도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 다양한 위기가 닥쳤지만 그것 때문에 나락까지 안 가고 운 좋게 해결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정말 그분 말씀대로 나는 평생 평탄하게 살 팔자일까? 곱이곱이 이렇게 해결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말걸. 덕분에 지금은 어려움이 닥치면 버티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아무리 평탄한 인생 어쩌고 해도 사람이 사는데 어찌 힘들일 이 없었을까? 나의 수난시대를 책으로 쓰면 책 한 권이 거뜬하다. 하지만 사십 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도 눈이 조금 떠지게 되었다. 정말 그분 말씀대로 내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사주팔자 보는 분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나의 노력으로 이룬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원래 나에게 주어진 무언가가 있었고 운도 작용한 것이다. 같은 노력을 해도 아니 무엇을 어떻게 해도 되지 않은 상황도 세상에는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게 이룬 것이 없어도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데 이러한 감사력도 하나의 자원일 수 있다.


 ‘최선’이라는 단어 하나로 시작해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쓴 것은 최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의 애매함 때문이다.


 누구나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그게 다 최선이 아니고 뭘까? 그렇게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객관적으로 ‘시간을 잘 활용하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자원이 필요한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A는 열심히 공부했고 B는 놀았으니 A만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A는 집중할 수 있는 정서적, 물질적,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B는 그렇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할 수 있다. 즉 A가 B의 상황에 처했다면 그 역시 무기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여도 그 안에는 살기 위한 발버둥인 나름의 최선이 있다. 


어쨌든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후회는 없지만,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는 여전히 고민된다. 


 가끔 집과 직장만 오가는 생활에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저기 뭐 배우러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싶다. 하지만 아직 자녀가 돌봄이 필요해서 쉽지 않다. 어쩌면 내가 아이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해서 그러는 것도 있다. 언젠가 독립할 아이가 나를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판단이다. 어쨌든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 말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순 없고 항상 가진 토끼보다 포기한 토끼가 커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토끼를 선택했을 때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가 선택한 토끼, 즉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인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또한 지금 주어진 여건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 것들을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에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어떤 의미해서는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열심히 달렸던 과거가 후회는 없지만 죽을 때까지 달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주변을 바라보고 인생의 방향을 잘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멈추고 돌아보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계속 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루를 균형감 있게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잘 살아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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