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시간의 힘이란 무섭다.
금요일에 민원 스트레스로 설거지도 못하고 쌓아놓고 잤다.
아침과 저녁 설거지를 그날 저녁에 몰아서 하는데 못하고 자는 경우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
금요일에는 나의 일상생활 능력을 상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피폐해졌던 내가 무서운 속도로 회복하여 토요일에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글을 썼고
오늘은 마음도 많이 차분해졌다.
평소에 나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일요일에는 당번으로 자료실에서 근무했고, 오늘 대체 휴무다.
즉 사무실 일은 3일째 쉬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금요일에 과장님 휴무로 민원 관련해서 내일 출근하여 보고하여야 하고 또 민원인을 맞닥뜨려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이 안되는 건 마찬가지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나아진다.
사무실 일은 스트레스를 아무리 받아도 이틀만 쉬면 대체로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편이다. 회복된 후 세상 살만하네 버전으로 돌아와서 생기 발랄해진다. 출근할 때가 되면 다시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대처하고 잘 살아봐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운다.
문제는 출근하고 2시간 만 지나면 나의 생기발랄과 의지는 어느새 증발해 버리고 다시 제정신 아닌 흥분 혹은 긴장상태에 돌입한다는 거다.
업무를 대할 때 긴장감과 부담감이 크다. 8시간 동안 컴퓨터에 머리 박고 있어야 하는 경직된 자세와 답답함도 힘들다.
회복할 때는 이틀 걸렸는데 다시 무너지는데 2시간 밖에 안 걸리는 것은 정말 억울하다.
내일 어떤 전개가 벌어질지 걱정하는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예사롭지 않은 금요일 사건도 삼일 지나니 희미해진다는 게 신기하고 다행스럽다.
생각해 보면 퇴직하면 일주일이면 기억에서 사라질 직장 고뇌들을 현직에 있을 때는 세상 힘든 일인 양 괴로워하며 짊어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어차피 세상일은 내 맘대로 안되는 데 그냥 흐르는 데로 받아들이면서 물살에 몸을 맡기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 수는 없을까?
사고로 반신 마비가 된 박위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더 내려갈 곳이 없으니 이젠 일어서면 돼,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편하지 않아?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나의 고뇌들은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까 하는 불안감과 더 갖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흐름대로 나를 맡기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보겠다고 몸에 힘을 꽉 주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선택은 했으나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를 버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약국 안 책방'이라는 에세이를 보았다. 약사가 자신의 약국 한편에 서가를 만들어 책을 파는 독특한 이야기다. 약사는 약국을 경영하며 가장 힘든 게 사람의 거절이라고 했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약을 추천해 봐야 사람들은 본인이 익숙한 약을 달라고 했고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꾸만 거절을 당하다 보니 자존감이 내려갔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마저 시간과 공간을 핑계로 스스로가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반복되는 지루하고 힘겨운 일상에서 자신의 자아가 사라질 것 만 갔았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긍정하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자신을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이렇게나 기가 빨리고 출근하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픈 마음이 들었다. 짧은 인생 이렇게 힘들 게 살아야 하나 싶고 제주도 같은 곳에서 자연과 함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약국 안 책방을 읽으며 생계를 위해 꿋꿋이 자신의 힘듦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도 어른의 삶이 아닐까 했다. 그리고 약사처럼 직장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부정하는 시간들이라 해도 그 외 시간들은 나를 긍정하는 시간으로 채우면 되겠다 싶었다.
독서모임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과감히 그만두고 적성을 찾아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가장 힘든 점은 자영업자다 보니 퇴근 후에도 정신적으로 사업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개인적 사생활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추후 정리하고 다시 회사로 취직했는데 가장 좋은 것이 저녁시간에 회사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해방감이라고 했다.
이 분은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이지만 다른 효용성을 보고 다시 들어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게 생겼듯 같은 직장을 다녀도 사람마다 직장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직장에서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수단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나도 나만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 얻을 것과 포기할 것을 과감하게 선택해야겠다.
우리 딸이 중간고사를 잘 보고 처음에는 기뻤으나 오히려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기말고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다.
내가 딸에게 '기말고사 못 봐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성적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렴'이라고 조언했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해주자.
"내가 가진 것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해야 하는 것보다 조금 더 하고 싶은 것을 늘려도 돼, 남들 눈치 보는 것 줄이고 인정욕구도 버려. 남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고 스스로를 좋아하는 게 더 중요한 거야.
일시적으로 잘못된 듯 보여도 다시 시작하면 되고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잖아. 어떤 게 더 좋은 길인지는 나중에 알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