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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Aug 02. 2024

플랜 A는 나의 계획, 플랜 B는 신의 계획

인생에서 힘을 빼자.

고등학생 딸아이는 밤에 휴대폰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가서 다음날 지장이 갈 때가 많다. 밤에 나한테 휴대폰을 맡기기도 하고 가끔은 가지고 있겠다고 하는 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절제에 성공하기도 한다. 실수를 반복할 때 아이는 후회하면서 힘들어하는 데 다음에 유사 패턴의 행동을 하면 아이의 후회를 방지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한다.


“또 후회할 거면서 왜 가져가냐?”라는 말이 나오고 아이와의 싸움이 촉발된다. 아이의 승리로 마감되지만 그럴 거면 순순히 내주면 될 것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사랑은 자녀가 실패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이라고 한다.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독려하는 마음만 가지는 것!

머리로는 알지만 본능적으로 생기는 불안한 마음으로 행동까지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는 게 나에겐 너무 어렵다.


이런 고민 중에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글 제목도 책의 목차 중 하나이다. 내가 원하는 길에 오지 못했으나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노력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더 좋은 길이 열리는 예시를 보여주면서 나의 플랜 A보다 신의 플랜 B가 오히려 좋다는 내용이다.


학창 시절 내내 일편단심으로 지망하던 교대 입시에 낙방하고 재수는 자신이 없어 무슨 과인 지도 잘 모르고 문헌정보학과를 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생각지도 않은 전공 관련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그 안에서 초등학생 대상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교권 추락, 진상 학부모 등을 생각하면 도서관 진상도 힘든데 이해관계가 날카로운 학부모 진상은 얼마나 힘들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나의 플랜 A보다 신의 플랜 B가 훨씬 나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4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살아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꼭 안 좋은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근심 걱정하면서 속앓이 일들도 생각지도 않게 풀리는 경우도 많았다. 또 사람이나 일도 인연이나 운도 많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알 수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물 흐르듯 힘을 빼고 유연하게 살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힘을 꽉~ 주고 나만의 작고 큰 플랜을 세우며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시로 신의 플랜 B가 다가왔을 때 당황스럽지만 결국 더 좋은 것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에 파묻히지 말라고 류시화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 83가지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가지는 바로잡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

한 가지 해결 방법이 있긴 하다. 사실 그대가 이 모든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대가 가진 84번째 문제 때문이다.

...

”그렇다. 그대의 84번째 문제는 “모든 것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만약 그대가 이 ‘문제를 발견하는 문제’를 자각하고 그것에서 벗어난다면 83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놓여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83가지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류시화 시인의 글을 읽으며 웃음이 났다.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가지 문제는 바로잡지만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에는 깊이 공감하는 마음이 생겼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당연한 거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였던 것이다.

수시로 종류만 바뀌는 83가지 문제 속에 파묻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그림자 뒷면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눈을 떠 84번째 문제를 해결한 후 신의 플랜 B를 믿고 강물이 흐르는 데로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에 대해서도 아이의 자생능력과 신의 플랜 B를 믿으며 걱정(어쩌면 집착 일지도)을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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