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먹고 횡설 수설
기적인 운동을 해본 적 없는 내가 40대 후반에 요가를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째 접어들었다. 횟수제 등록으로 지금까지 무려 60회를 갔다. 끊고 싶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장기권에 매여있는 목돈의 힘으로 지금까지 버티어왔다.
오래 버틸 수 있던 것에는 밥을 포기하면 점심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다시 나가는 건 누워있는 것을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는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평일 점심시간과 주말을 활용하여 근근이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아이가 방학이라 함께 점심을 자주 먹게 되면서 점심시간 요가는 중지되었다. 아이랑 추억을 쌓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대신 요가를 저녁 시간에 갈 수밖에 없는 시련이 닥쳤다.
퇴근하고 저녁밥을 차리고 설거지하고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겨우 쉴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을 포기하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
휴회도 여러 번 고민했지만 지금까지 힘들게 이어온 60회를 생각하면 멈추기가 아까웠다. 한번 중단하면 정지해 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저녁에 반드시 가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가야 할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저녁에 2번 이상 안 가면 휴회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갈까 말까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갔던 밤 타임은 평소에 갔던 낮 타임과는 다른 수강생 다른 분위기로 생각하지 못한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저녁 타임으로 계속 다니라고 하면 끊을 판이지만 한 달만 이겨내 보자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버티어졌다.
수많은 고통을 상쇄하는 끝마치고 나올 때의 해냈다는 보람, 한 시간 동안 몸을 학대(?) 하면서 오는 잡념의 소멸, 뻣뻣한 나의 몸을 바라보는 유일한 시간, 조금씩 유연해지는 몸을 느끼는 것, 다음날 느껴지는 달콤한 근육통 등 소소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요가하는 한 시간 동안 나의 눈은 제발 빨리 끝나길 고대하면서 시계를 수십 번 보는 현실...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요가지만 ‘건강’을 위해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뿌듯함은 아주 크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자기 위안이랄까?
사실은 요가에 이렇게 많은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책 읽기와 글쓰기는 영감을 준다.
최근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보았고 현재는 김영민의 에세이 ‘가벼운 고백’을 보고 있다.
두 책 모두 세상의 아이러니와 모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요즘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정신상태도 안 좋은데 어떠면 이건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 세상 자체가 모순인 거다. 나는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고 나의 고민들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삶의 혼돈은 당연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기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것에는 모순이 있으니 마냥 좋은 것도 모두 좋지 않은 것도 없다.
좋은 것 속에 안 좋은 것, 안 좋은 것 속에 좋은 것이 있는 모순.
요가는 너무 싫지만, 꾸역꾸역 가다 보면 좋은 점도 있는 것처럼.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소소한 것을 붙들고 늘어지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라는 아이러니.
모순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최근 더워서 그런지 체력과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 상태가 안 좋으니 글도 횡설수설이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말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래야 얼굴에 생기를 잃지 않고 하루를 살아도 진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세상의 모순을 빛과 그림자를 다 받아들이는 지혜를 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생기를 찾아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