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은 가족> 중에서
이 책을 주목하게 된 것은 책의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병명'은 '가족'이라는 말! 관계에서 가장 심적으로 동요를 많이 일으키게 만드는 요인은 관계의 밀접성일 것이다. 그 밀접성을 기준으로 할 때 '가족'만한 것이 또 있을까. 물론 그 가족이란 부모, 배우자, 자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외에도 다양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나를 가장 허물없이 보아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가족인 것 같다. 어쩌면 그 기대가 많은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보면 어김없이 나의 부모와 함께 했던 과거로 회귀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 마치 대물림처럼 나의 부모로부터 나 그리고 나의 자식에게 이어지는 유전병처럼 고통이 답습되어 가리라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 "어떻게든 내 삶 안에서 그 대물림을 끊어내야만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8가지의 대표적인 증상에 대하여 기술이 되어 있다. 알코올 의존, 거식증, 망상장애와 치매, 지적장애, 조현병, 공황장애, 사회공포와 우울, 신체증상장애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알코올 의존, 망상장애와 치매, 조현병에 대한 기술이 가장 많은데 주변의 사례를 보아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아버지, 가족을 의심하고 괴롭히거나 치매에 걸린 조부모, 조현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거나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경우는 많다.
어떤 사람의 꿈에 매일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매일 밤마다 그 사람의 몸을
타고 앉아 위협하고 목을 조르며 괴롭혔다.
그 사람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물었다.
'도대체 날 언제 죽일 거냐?'
악마가 웃으며 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네가 꾸는 꿈인데'
가족 중의 누구하나라도 고통스러운 꿈을 꾼다면, 그 꿈이 나의 꿈이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지옥에 머무르게 된다. 가족의 아픔이기에 안타까운 시선과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불충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접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증상에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의 내가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지옥의 공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앓았던, 혹은 내가 앓고 있는 가족이라는 병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이 병의 영원한 면역력이란 얻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