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얄리 Mar 12. 2021

여성의 삶 속에 깃든 원형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우리속에 있는 여신들>은 융의 분석심리학에 제시된 원형의 개념을 그리스의 신화 속 여신의 이미지와 매칭시켜 설명하고 있다. 총 7가지의 여신유형이 나오는데, 각각의 유형은 개별화되어 있다기 보다는 삶의 여러 시점에서 가변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전체성을 띈 것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과정의 특정 시점에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여신들을 찾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를테면, 원형들 중에 내 삶의 모습과 가장 유사했던 것은 아르테미스와 아프로디테였다. 그 기조 아래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는 아테나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헤라와 데메테르의 모습이 간간히 겹쳐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독립성'과 '순간적인 몰입에 근거한 집중력과 관계성'의 특성을 보이는 것이 더 두드러졌다. 페르세포네 그리고 헤스티아의 경우 내 삶 안에서 거의 유사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책에는 각 유형에 대해서 그들의 부모나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와 생의 각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다. 때때로 자기 자신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원인이 원형의 어떤 특성에 기인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처녀 여신 -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 


이 세 여신들이 대표하는 성격은 여성 심리 중에서 자율적이고 활동적이면서 관계 지향적이지 않는 부분들이다. 어떤 여성이 이 세 여신 중의 한 원형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그녀의 중요한 부분이 심리적으로 처녀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세 여신들만이 신과 인간들 중에서,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강력한 힘에 휘둘리지 않고 열정과 성적 욕망, 낭만적인 감정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처녀 여신들인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가 지배적인 원형일 때 여성은 융 분석가인 에스더 하딩이 [사랑의 이해]에서 썼듯이 자기만으로 온전한 하나가 된다. 여성이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 그녀는 자신이 지키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을 충족시키며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에 의해 움직이고 남들이 어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르테미스의 현실 적응 방식은 남성들과 그들의 영향권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테나의 적응 방식은 남성과의 동일시라고 할 수 있다. 헤스티아처럼 남성들로부터 움츠러들면서 내성적인 방식으로 적응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속의 여신들 중에서>


상처받기 쉬운 여신 -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결혼의 수호신인 헤라, 곡식의 수호신인 데메테르, 소녀 또는 지하 세계의 여왕으로 알려진 페르세포네 이 세여신들은 각기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알려진 아내, 어머니, 딸의 모습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들은 관계지향적인 여성들로서 자신의 의미를 상대방의 관계의 성공에서 찾는다. 이들은 소속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욕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각기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파경에 이르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 가장 고통을 받았다. 이들은 심한 무기력감을 느꼈는데 그 반응의 양식은 각기 달랐다. 헤라는 심한 분노와 질투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그 양식은 정신 질환적 증세와 유사한 것이다. 이러한 여신 원형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도 또한 상처받기 쉽다. 헤라와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여성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필요로하는 자신의 기질에 대해서, 그리고 그 관계를 상실했을 때 자신들의 예상할 수 있는 반응에 대해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다. 이들의 관심의 방향은 사람들에게 있지, 사회적 목표의 달성이나 마음의 평화에 있지 않다. 상대방의 관심과 사랑과 칭찬이라는 대가를 통해서 그녀들은 의미를 찾는다. 이들에게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구현하는 일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된다. 

그들의 의식은 분산되어 있다. 융 정신분석가인 아이린 클레몽은 분산된 의식을 "항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각, 그리고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일상적인 것에 대한 통찰력으로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고, 상황의 독특한 분위를 감지하며, 앞에서 표현되는 것뿐 아니라 뒤에서 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수용적이고 분산된 의식은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반면, 이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의 집중적인 의식은 관심을 갖는 한 가지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것들을 무시한다. 내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을 닮고, 의식의 형태는 산만한 여성이라면 바로 희생자가 되기 쉽다. 두 가지 점이 이런 불상사를 낳게 하는데 첫째는 여성의 부드러움을 성적인 접근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여긴 남성의 오해이고 둘째는 혼자 있는 여성은 언제나 접근이 가능한 여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여성은 소유물이라고 여기는 사회의 관습에 있다. 

<우리속의 여신들 중에서>


창조하는 여신 -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도 처녀 여신들과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이 가지는 특성들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으나 그녀는 이 두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는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헤스티아처럼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는 특징을 지녔으나 가장 관능적인 밀애를 갖는 여신이기 때문에 결코 처녀 여신이라도 할 수는 없다. 또한 그녀는 헤라나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처럼 남신들과 관계를 가져서 아이들을 낳기도 했으나 결코 상처받기 쉬운 여인도 아니었다. 그들과는 달리 아프로데테는 결코 희생되지도 않았으며 그 때문에 고통받지도 않았다. 처녀 여신들에게 중요한 타인으로부터의 독립이나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의 특성인 타인과의 영원한 관계보다도 사랑의 경험을 갖는 것이 아프로데테 여신에게는 더 소중했다. 아프로디테에게 관계를 갖는 일은 중요했으나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처럼 일생을 통한 언약은 아니었다. 누구도 그녀가 추구하는 목표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녀가 가치를 두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이며 성취나 객관적인 평가로 잴 수 없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대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낭만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신적인 사랑, 영적인 연결, 신뢰감, 감정 이입적인 이해 모두 사랑의 표현이다. 아프로디테 의식은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수용적이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그녀가 능동적으로 주의를 끌고 (단순히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사랑스럽고 동의하는 태도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매혹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녀의 방식으로서 무엇이든지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에 잠깐 관여하는 것일뿐인데 결과적으로 상대편은 그녀에게 유횩될 수 있다. 아프로디테의 의식은 홀로 외로이 하는 일들을 포함하여 모든 창조걱인 작업에 나타난다. 그녀는 몰두하고 열중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객관적이고 자신을 떼어놓고 본다. 

<우리속의 여신들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