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말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통념과는 반대로 흔한 것은 이들이다. 한 가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다. 이들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이유는 이들이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나약해서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부족하고 세계의 복잡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들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 분명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이것에 집중하겠다는 단순한 전략을 세운다.
그래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한 가지 전략으로 대응하는 적처럼 우스워 보이는 것은 없다. 세상은 이들을 쉽게 쓰러뜨린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쓰러진 이유를 오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재도전을 다짐하며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예전의 나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이가 실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포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간 어딘가에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약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면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과 정성이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고집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음의 문제가 된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에서
일에 있어서 지난날 내가 가졌던 거대한 오류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순간들. 어느 순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선택이 더 이상 내게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두려고 해"라는 말로 시작한 고백은 항상 "나쁠 것도 없잖아"라든지, "더 채우고 놓을 거야"라는 반전으로 갈음되었다.
왜 그때 나를 말리지 않았어?
수년이 지난 후 절친에게 물은 적이 있다. 스스로 바닥을 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집했던 것을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말리지 않았음을 추긍하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궁금했다.
너무 확고했어
말리는 행위조차도 더 매달리게 만드는 이유가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선택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지 못해서'서 붙잡고 있었던 것이 절친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참 열심히 살았구나. 그저 열심히' 자신을 지탱할 것이 오직 그것 밖에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먹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