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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Aug 27. 2020

변신의 귀재, 명태

다양한 맛으로 사람들 입맛을 돗구어 주는 명태이야기


맛 좋기로는 청어요,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어 온 생선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생선 중 명태가 최대 어획량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국민 생선이라 불릴 만큼 명태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2월에서 1월이 제철인 명태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겨울철 부족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명태에는 성장에 도움을 주는 단백질, 비타민A, 칼슘 등은 물론, 두뇌발달, 시력 보호, 주름 방지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기로도 유명하다. 흔히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생선이라 불리는 명태는 살은 물론 머리, 껍질, 내장까지 모두 이용할 만큼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 명태는 다양한 조리법만큼이나 이름도 많은데, 가공법이나 잡는 시기 등에 따라 달리 부르는 별칭이 수십 가지에 이른다.

‘명태’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년)’의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 씨 성을 가진 어부가 물고기를 잡았는데, 이름을 알 수 없어 명천의 '명'과 어부의 성을 따 '명태'라 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명태의 수많은 이름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생태’, ‘동태’, ‘황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정도다. 한 어종에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불려지는 건 명태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생태’는 갓 잡아 싱싱한 상태의 명태, ‘동태’는 꽁꽁 얼린 명태다. ‘황태’는 눈밭 덕장에서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며 노랗게 말린 명태고, ‘북어’는 바닷바람에 바싹 말린 명태, ‘코다리’는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코에 꿰어 반건조한 명태를 말한다. 술안주로 많이 먹는 ‘노가리’는 새끼 명태를 바싹 말린 것이다.

어릴 때부터 명태 맛에 길들여진 나는 종종 명태요리를 찾아서 먹곤 한다. 맛에는 추억을 소환하는 센서가 있음이 분명하다. 서울 시청 부근 다동에는 3대째 북어만을 고집하는 맛집이 있는데, 코로나로 매상이 줄어드는 집과는 달리 북새통을 이루며, 여전히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진한 국물에 부추를 듬뿍 넣어 먹는 북엇국은 속을 단번에 풀리게 하는데, 그 맛이 진국인 데다 건더기는 무한리필일 만큼 후한 인심이 맛을 더한다. 하여,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맛이 그만이다. 이 다동 북엇국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그 맛과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용산 삼각지역에는 생태집이 유명한데 특히 명태가 제철인 겨울에 자주 가곤 한다. 커다란 양푼에 푸짐하게 무와 함께 넣고 끓인 후 얼큰하게 먹는 생태탕은 입맛 없을 겨울철에 입맛을 돋우는 데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없이 일만 하며 지치고 힘들 때, 직장동료와 함께 그곳에 들려 생태탕과 소주 한잔에 인생을 위로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강남 테헤란로에서 가장 고층이면서 비싼 건물인 GFC빌딩 지하 푸드코너엔 코다리냉면집이 있는데 여름철 별미로는 그만한 음식이 없다. 냉면과 코다리의 조합은 어색할 거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둘의 조합은 장소팔-고춘자, 남철-남성남, 양영자-현정화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환상의 콤비를 자랑한다.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다. 10여 년 전 테헤란로에 발을 디디면서 나의 40대 리즈시절을 치열하게 보냈고, 그 시절의 시련과 격동의 세월을 함께 했던 음식이라 눈물 젖은 빵 같은 각별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는 왕노가리 맛집이 있다. 노가리하면 작고 딱딱한 통 노가리가 떠오를 테지만 이 집은 왕노가리로 큼지막한 것이 마치 황태 비슷하게 포를 뜬 후 연탄불에 구워서 나오는데, 맥주 안주로는 그만이어서 술도둑이라 해도 될 만큼 맛이 일품이다. 찍어먹을 소스로는 마요네즈와 고추장이라는 정말 토속적이고 익숙한 조합으로 청양고추를 곁들여 찍어 먹는 맛이 특별하다. 폭신한 노가리를 소스에 찍어 질겅거리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뭔가 색다르고 씹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단, 유의할 점은 몇 시간을 씹어야 하므로 치아가 약한 사람은 이가 빠질 위험이 있으며, 자칫 노가리를 씹는 모습이 경망스러워 보일 수 있으므로 우아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서는 것이 좋겠다. 나야 고기뼈도 씹어 먹을 정도로 치아만큼은 튼튼하고, 우아 떠는 건 체질상 나랑은 거리가 멀기에 당당하게 노가리를 즐기러 가곤 한다. 집에서 명절이나 제사 지내고 남은 황태포를 안주삼아 맥주 한 캔 까던 생각이 많이 나곤 한다.

이처럼 나의 삶에 깊게 한자리하고 있는 명태는 한때 산처럼 쌓일 정도로 많이 잡힌다고 해서 ‘산태(山太)’라고 불렸던 생선이지만, 요즘은 기후변화로 근해에서 거의 잡히지 않아 가격이 금처럼 비싸다고 해서 ‘금태(金太)’라고 불리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명태의 다양함을 대체할 만한 생선이 보이지 않아 더욱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최근 해양심층수산자원센터가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 양식에 성공했다고 하니, 머지않아 명태를 다시 산태라 부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볼 만하다.
나는 옛 것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게 너무 아쉽고 서글프다. 나더러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옛 것이 사장되거나 잊히지 않고 잘 보존되고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양한 변신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명태에 유독 애착이 가는 이유는  늙으신 어머니한테는 여전히 철없는 막내아들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빠이며, 때로는 사장님으로, 대표로 어떨 땐 후배로, 선배로 상황에 따라 처세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이 투영돼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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