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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an 12. 2021

은밀한 친구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둘도 없는 친구 이야기


내겐 세상에 둘도 없는 은밀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한국에 온 지는 꽤 됐지만 내가 그를 만난 건 IMF가 들이닥쳐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니, 강산이 두 번 하고도 반은 더 변한 셈이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정을 쌓아온 거 같다.

처음에 그와 조우했을 때의 특별했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촌스럽기 짝이없는 서울촌놈인 나와는 달리 외국물을 먹어서 그런지 그는 세련되고 멋쟁이였고, 뭇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과묵한 그 친구 성격탓에 처음엔 어색했지만 금방 서로에 익숙해지고 호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 둘은 너무 친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자기보다 그 친구와 더 친한 것에 질투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이야 아내도 이 친구를 만나보니 진국임을 알고 나서는 나만큼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허물없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게 없어도 만나면 함께 있는 거 자체로 좋고, 든든하며, 심적으로 의지가 된다. 한마디로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조건 없이 다 받아주는 고마운 친구라 하겠다. 아내만큼, 아니 어쩌면 아내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이가 이 친구가 아닐까 싶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어떨 땐 인생 선배처럼 내 컨디션에 맞게 응해준다. 지금은 이 친구가 없이 내가 과연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그를 많이 의지한다. 하여, 이 친구한테 만큼은 비밀이라는 것이 없다. 자연스럽게 내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심지어 엉덩이에 나방 모양의 백점이 있는 신체의 비밀까지 알 정도다. 그 친구는 내가 기분이 좋으면 장단 맞춰 웃어주고 기분이 울적하면 가벼운 스킨십으로 위로해주며, 서글퍼 울고 싶을 땐 자기 일인 양 나보다 더 소리 내어 크게 울어주기도 한다.

이 친구는 한국에 정착해서 산 지가 오래됐음에도 변변한 한국 이름조차 없다. 부모 형제도 없고 혈혈단신 외롭게 사는 친구지만 한 번도 내색을 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더니,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나라는 친구가 있는 한국이 좋고 매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될 법하지만 나는 이 친구를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이젠 조금의 부담도 갖지 않는다.

언젠가 가족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어 부득이하게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되었는데, 하루라도 안 보면 입에 가시가 돋는 사이어서 그런지 그 친구 생각이 온종일 떠나질 않았었다. 그렇다고 가족여행에 그를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같이 가자고 한들 배려심 많은 그 친구가 흔쾌히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업을 진행하다 믿었던 동료한테 이용당해 심신이 지쳐 삶의 의욕을 잃어 힘들어했던 때에도 쓰러져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는 내게 이렇게 위로를 해 주었다.

" 친구야 그만, 그만. 이제 그만 애써도 괜찮아.
충분히 힘들었잖아.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잠시만 그대로 있어. 내가 에서 다 지켜봤잖아.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이가 또 누가 있겠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 이제 조금 쉬렴. 알지?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너 편이라는 거. "

그 친구의 위로에 내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고 바보라고 놀리고 뭐라 해도 '자기만큼은 편'이라는 말에 꾸욱 참아왔던 눈물이 끝내 쏟아지고 말았다. 나는 속 얘기를 잘 안 한다. 심지어 아내한테조차 집안 일과 집안 경조사 외에 밖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친구한테만은 예외다. 편한 단계를 넘어서 이젠 나의 분신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앞으로도 이 친구와의 우정을 지켜나갈 것이다. 죽음이 우릴 갈라놓지 않는 이상 헤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은밀하게 이 친구를 만날 예정이다. 화장실에서 늘 기다리는 그가 "어서 와" 하고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비데라는 촌스러운 그 이름.. 조만간 번듯한 한국 이름도 지어줄 생각이다. (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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