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just fade away.)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과 6ㆍ25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이 1951년 4월 연합군 최고사령관 직을 물러나면서 미국 국회 고별연설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너무나 멋진 이 말은 내가 외우고 다니는 몇 안 되는 명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이 말을 적용하여 쓸 만한 마땅한 대상이나 상황이 없었기에 그냥 좋은 말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반가운 일이 최근 있었다. 한물간 퇴물로 평가받던 그 노장(老壯)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목(裸木)의 그림자가 쓸쓸한 지난 일요일 오후. 잔설 위엔 희미한 햇살이 졸고 있고, 나는 방구석 오래된 침대 위에서 꾸버 꾸벅 졸고 있었다. 글쓰기와 읽기를 생활화하는 게 뇌 운동에 좋다고 하건만 십 분도 유지 못하고 눈망울이 풀려 침침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보던 책을 덮고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뉴스에서 귀가 번쩍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농심배 한중일 레전드 매치>에서 조훈현 9단이 불계승을 거둬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조훈현.. 그가 누구인가! 바둑은 몰라도 조훈현을 모른다면 그건 분명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것이다. 70년대까지는 중국과 일본이 바둑계를 양분했었다. 한국바둑은 실력이 한참 모자란 변방국가로 취급받았던 시절, 혜성같이 바둑천재가 등장하여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라성 같은 기사들을 물리치고 세계를 제패한 사람이 조훈현이 아니던가.
바둑은 포석, 전투, 마무리로 나눌 수 있는데, 조훈현의 장점은 발 빠른 행마와 기상천외한 초반 포석으로 기선 제압을 하는 데 있었다. 그가 인정받는 것은 120개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전대미문의 업적도 업적이거니와 바둑의 또 다른 천재인 이창호를 제자로 키웠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이창호는 스승인 조훈현의 기풍을 마스터하고 자신만의 장점인 수 읽기와 끝내기로 천하를 호령하였다. 당시 그의 실력은 난공불락이었으며 지금의 알파고와 비견할 만큼 그의 바둑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군계일학이었다.
그러나 1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철옹성 같은 그의 아성은 신출귀몰한 전투적인 기풍을 가진 이세돌의 등장으로 결국 무너졌다. 이처럼 안방싸움을 하며 한국 바둑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서막을 알리게 된 시발점이 바로 조훈현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벌써 나이 칠순이 되어 황혼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긴 두뇌게임인 바둑은 경우의 수를 따지자면 19의 19 제곱이니 우주의 별보다도 많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할 것이다. 천년이 넘도록 같은 바둑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은 바둑이 단순히 게임을 넘어 우주적 사고를 해야 하는 형이상학적 신선놀음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바둑을 좋아한다. 근 30년 가까이 바둑을 취미로 두고 있으며, 기력은 아직 단에 오르지 못한 하수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다섯 판 정도는 꾸준히 둘 만큼 취미를 넘어 마니아에 가까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심오한 바둑에 취미를 갖게 된 건 집안 내력이 한몫했다. 조훈현의 기풍을 닮은 사촌 형이 유단자였고 조훈현의 외모를 닮은 넷째형이 바둑을 꽤 잘 두었기에 어깨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내가 한창 바둑에 빠졌을 때는 바둑을 두며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바둑기원을 찾아가 고수한테 배우러 다니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었다. 조남철-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으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 계보만큼이나 내 인생도 바둑의 역사와 함께 울고 웃었던 거 같다.
5년 전에,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로 시들했던 바둑이 잠깐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했었고 또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만큼 엄청 체력소모가 많은 두뇌게임으로 인정받았음에도 여전히 비주류로 취급받는 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바둑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던 차였다.
그런데 바둑대회에서 세계 유일한 단체전이라 할 수 있는 농심배에서 퇴물 원로로 취급받던 조훈현이 회춘이라도 한 듯 파죽지세로 연승을 하더니만 마침내 우승으로 이끌어 자신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시위라도 하듯 노익장을 과시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대대적인 뉴스 보도와 카퍼레이드도 해야 할 일이지만 조용히 가십 기사 정도로 작게 보도되고 마는 건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한국 바둑을 있게 하고, 또 최고의 기량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한국을 얕보는 중-일 양국의 네 선수들을 차례로 잠재워 버린 칠순 노령의 바둑 황제 조훈현 9단께 나는 존경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이런 조훈현 사범의 노익장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다. 모질게 살지 말고 쉽게 쉽게 살았어야 하는데 한 푼도 안 되는 욕망에 목숨 걸며 지친 스트레스만 태산 같이 모으고 이 나이에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하고 신세한탄만 해대는 비겁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살아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되건만, 이런저런 핑계로 더 좋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무모하게 목숨을 걸었었다. 풍랑을 만난 배가 물 위를 정처 없이 떠돌 듯, 참 많이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거 같다. 환경이나 조건이 바뀐다고 꼭 행복해지는 게 아니란 걸 그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으니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딨겠는가! 이제야 나는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꽃자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며, 행복은 자족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신축년이 벌써 첫 달, 마지막 주가 되었다. 내 인생을 좀 더 보듬고 사랑하며, 남은 한주를 더 좋은 일들로 꽉 채워 즐거움의 첫 달로 만들어 보리라 마음을 추슬러 본다. 그리고 나는 노병이 되려면 아직 구만리는 아니어도 최소 오만 리는 남은 신병일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그렇다면 노병도 죽지 않고 저런 노익장을 과시하는데 하물며 신병이 기죽어 살면 되겠는가!
하여, 나는 하루를 살더라도 절대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되, 의미 있고 후회 없이 살자고 다짐해 보았다. 그리고 20년을 나와 함께 한 낡은 침대 위에 누워 내가 칠순이 되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더불어 맥아더 장군이 했던 명언을 빌어 나도 당당히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