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8년 여름,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유난히도 화창했던 7월어느날이었다.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IMF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하고,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회사 구조조정을 핑계로 권고사직을 당해 길거리에 내앉은 중년 가장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살기 힘들어 비관 자살을 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생활고는 나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서른이 넘었으니 결혼도 해야 하고 또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공부를 더 해야 할지 직장을 구해 돈을 벌어야 할지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때였다.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머리도 식힐 겸 무작정 무궁화호 부산행 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줄 이도 없었을뿐더러 그곳에 잊지 못할 특별한 사연이나 추억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행선지를 부산으로 정한 이유는 막연하게 부산 태종대 바위 위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싶어서였다.
나는 생각을 정리할 때다 싶으면 가급적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보는 습관이 있다. 도피하고자 함이 아니라 익숙한 곳을 벗어나야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차분한 마음으로 제대로 정리할 수 있겠단 생각에서다.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
5시간 반 정도 걸리는 혼자만의 여행.. 나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시골 풍경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시골 들녘을 보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깊은 사색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가져간 책도 읽고, 간간히 주전부리도 하면서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부산역 광장에 들어서니 대낮인데도 서울역 못지않게 걸인이 무척 많았다. 관광도시인 부산도 IMF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할지 몰라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갈피를 못 잡고 광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누구한테 길을 물어봐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을 그때, 어느 건장한 청년이 내게 성큼 다가왔다. 나는 그의 첫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숯검정 같은 찐하디 찐한 눈썹에다 썰면 두 접시는 거뜬히 나올 만큼의 두툼한 입술, 게다가 영화 <뿌리>에 나오는 주인공 쿤타킨테를 연상케 할 만큼 까무잡잡한 피부.. 영락없는 흑형이 따로 없었다. 이처럼 지극히 남자답게 생긴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즈기예.. 지가 하루 종일 밥을 못 묵어서 그러는데예. 밥 좀 사믁게 돈 좀 주실 수 있는교?'
목소리가 생긴 거와는 다르게 상냥하고 다정다감했다. 나이를 물어보니 나보다 세 살 어린 20대 후반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에 어찌 대응을 해야 하나 머뭇거렸지만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삥뜯는 양아치도 아닌 듯하여 말을 받아줬다.
" 그런데,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이 왜 구걸을 하고 다녀요? "
IMF로 다니던 공장이 망했는데 그 이후로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집에서 눈치 보여 들어가지도 못 하고 돈도 다 떨어졌단다. 그렇다고 도둑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며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 실업이 어디 이 친구만의 문제였겠는가? 예고없이 들이닥친 IMF의 메가톤급 파장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후유증이 매우 컸다.
서울역에서 걸인을 흔하게 보아 왔지만 노숙자가 말을 걸어온 것도 처음이거니와 이렇게 젊은 사람이 구걸을 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차마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또 마침 점심시간도 꽤 지나 식사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 점심이나 같이 하실래요?"
부산 돼지국밥
어렵사리 맘먹고 혼자 떠난 여행지에 반겨주는 이가 청년 노숙자라니.. 갑작스러운 그와의 불편한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잘한다는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한 그릇은 특으로 시켰다. 그 청년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게눈 감추듯 금세 그릇을 비웠다. 허겁지겁 먹느라 말 한마디도 없던 그가 허기를 달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니 그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었다. 가족 얘기부터 학창 시절 얘기, 심지어 묻지도 않은 첫사랑과 헤어진 얘기까지.. '내가 남의 구구절절한 신세타령이나 들으려고 부산에 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매료된 건지 아니면 연민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거 같은 그의 말을 가로채 이번엔 내가 그에게 물었다.
" 동생! 나 태종대를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갈래? "
초행길인 데다 내 나이 또래인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동행을 제안했다.
"네, 지야 시간이 널널하다 아닙니꺼~ 가진 게 시간뿐인데예. 제가 안내하겠슴더~"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출발 전에 며칠을 씻지도 않은 거 같아 부산역 근처 사우나로 데려가 먼저 씻기로 했다. 1시간 정도 사우나를 한 거 같다. 등을 밀어주는데 줄줄 말려 나오는 떼는 메밀국수가 따로 없었다. 목욕을 하면서, 또 태종대를 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그동안 누구한테도 못했던 나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태종대 신선바위 위에 올라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이며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자마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IMF로 노숙자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 청년이나 19년을 공부만 해서 세상 물정 몰라 갈팡질팡하는 나나 신세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태종대 선산바위 전경
넋두리, 하소연, 신세한탄..인생을 닮은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서로의 인생을 위로하다 보니 어느샌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나는 혼자서 어디 갈 데가 있다고 하고는 헤어지자고 했다. 다시 만날 일이 있으면 또 보자고 하고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삐삐(무선호출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써야 할 최소 여비를 빼고는 나머지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좋은 날이 올 거니 용기 내라고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의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몇 번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내한테 이렇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처음임더. 행님! 고맙습니데이~"
부산역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 갈길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해운대로 이동했다. 연인들로 북적대는 해운대 해변을 혼자 걸으며 썰물에 나의 고민도 함께 쓸려 보냈다. 각별했던 부산에서의 하루가 다 가고 도심의 조명 불빛 때문에 해운대 밤하늘의 별빛은 희미했지만 그럼에도 별은 굿굿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짧은 부산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연히 만난 청년 노숙자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내 삶의 방향을 정하고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삐삐로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반가운 그 청년의 목소리였다. 덕분에 취업을 했고, 그날 나를 만나고 나서 이렇게 주저앉아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를 악물고 산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23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지만 생사여부를 알 길이 없다. 지금 살아있다면 나이가 오십이 되어 나처럼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지, 결혼하여 가정은 꾸렸는지, 아이들은 몇이나 있는지도 궁금하다. 당당하게 밥을 사달라고 구걸할 정도의 배짱이라면 뭘 해도 인정받으며 굿굿하게 잘 살거라 믿는다. 나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 친구처럼 낯선 사람한테 구걸할 용기는 솔직히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참을 지나 부산을 수차례 간 적이 있지만 그 동생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으니 그의 삶에 건투를 빌뿐이다. 작은 나눔과 관심 그리고 사소한 배려가 한 사람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그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어딨겠는가!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국가적 재난으로 내남없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는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또 가져볼까 한다. 이번엔 더 멀리 제주도로 떠나볼 생각이다. 그곳에서 회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개인적으로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올 참이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우연한 인연으로 누군가와 불편한 동행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떠나는 거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제주 성산일출봉 야경
부산여행이 그해 여름으로 기억된 것처럼 이번 제주여행이 내 삶에 멋진 추억과 의미 있는 여행으로 기억될 그해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도 푸른 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