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거나 자신이 리비도(성충동)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정신 분석학 용어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Neacke)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고만 나머지 물에 빠져 죽어버린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이름을 붙였다. 자기애가 부족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 또한 자기 가치감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하여, 대인관계에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문제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인터넷에 실린 어느 기사에서 자기애의 끝판왕을 보게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신으로 도배한 남성이 그 주인공으로, 평범한 직업이 아닌 어린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폴 랭귄 초등학교 교사 실뱅(35)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문신하고 심지어는 눈동자까지 문신을 한 것이다.
문신은 고대 기록을 보면 그리스 로마나 지중해 지역에서 노예나 범죄자, 혹은 전쟁포로에게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이런 부정적 의미가 담긴 문신이 오늘날에 와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의 자기표현 문화로 정착된 듯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다가 사리 판단이 아직 미숙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그렇게 한다는 건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조차 선뜻 이해가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나라로 손꼽히는 프랑스에서도 정수리와 발끝, 손바닥, 성기 등에 문신한 것도 모자라 눈의 흰자에까지도 새까맣게 문신한 남성 실뱅의 사연을 보도하며 많이 놀란 눈치다.
실뱅은 27세에 처음 문신을 시작한 이후 8년 동안 한화로 약 6800만 원을 들여 몸 전체에 문신을 했다고 한다. 최근엔 경제적 압박을 느껴 두 달에 한번 꼴로만 타투숍에 방문하고 있다고 하며, 이제 그의 몸에는 문신이 없는 신체 부위가 없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한 취미를 넘어 문신에 중독됐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논란이 증폭된 점은 그의 직업이 다름 아닌 초등학교 교사라는 것이다. 그가 배치받은 초등학교의 학부모들 중에서는 문신과 교사로서의 능력이 무슨 상관이냐며 실뱅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악몽을 꿀 정도로 무서워할 수 있기 때문에 교단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 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실뱅을 옹호하는 학부모들도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어떤 학부모는 처음에는 핼러윈을 위해 분장한 줄 알았다며 교육당국이 저런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에 매우 놀라고 있다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교육에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교사가 문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실뱅은 문신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스스로의 몸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외모보다 교사 자질을 평가해 달라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였다. 일리 있는 말이기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거 같다.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국경 없이 살아가는 지구촌에서 예의 주시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문화의 전파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몸의 문신은 남성 사우나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건달의 상징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타투샵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고, 문신은 이제 특정 부류만 즐기는 유희가 아니며, 누구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신이 아무리 자기애의 자유로운 표출이고, 다름이 틀림이 아님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관계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건 절제해야 하는 행위임이 분명해 보인다. 개인의 개성을 추구할 자유만큼이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남을 위한 배려 또한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고지식하고 시대의 흐름을 이해 못 하는 꼰대라고 놀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몸에 문신을 새기는 건 여전히 거부감이 있는 혐오스러운 행위로 여겨진다. 하여, 나는 차라리 위인들의 삶의 철학이 묻어있는 경구(警句)나 경전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부작용도 없을뿐더러 새기면 새길수록 나의 내면이 한결 아름다워질 것이고, 그로 인해 풍성한 관계의 열매를 맺게 해 줄 거라 믿는 까닭이다. 하여,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구(警句)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애가 아닐까 한다. 그런 내면 지향적인 자기애라면 얼마든지 지나쳐도 무방할 것이다.(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