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 계양동 맛집인 연탄 석쇠불고기를 먹다 보니 연탄불과 함께 연탄에 얽힌 추억도 따라 피어올랐다. 내가 어릴 때는 연탄 수백 장이면 월동준비 끝이었던 시절이었다. 붉고 파란 불빛을 내는 연탄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수호신이었고 밥과 국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삶의 동반자였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 시절, 민둥산 언저리 풀밭에 메뚜기를 잡아 연탄불에 구워 먹곤 했는데, 부족했던 단백질 보충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행여 어쩌다 눈먼 돈이 라도 생기면 동네 구멍가게로 부리나케 달려가 불량식품의 대명사인 '달고나'를 사서 멀쩡한 국자를 연탄불에 태워먹어 엄마한테 혼이난 기억도 생생하다. 이렇듯 연탄은 나에게 보호자였고 놀이기구였으며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불알친구와 같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그 시절엔 집집마다 문 앞에 연탄재 쓰레기통이 있었다. 더러는 어느 집 연탄재가 뒹굴거려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고, 술에 취한 행인이나 성질 더러운 사람이 집주인이 보란 듯이 발로 걷어 차기도 했다. 다 타고난 연탄재는 이처럼 처분하기 귀찮은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요긴하게 쓸 때는 언제고 쓸모없다고 고려장이라도 하듯 터부시 하기 일쑤였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딱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리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 안도현이 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내게 묻는다.
살면서 너는 한 번이라도 연탄 한 장과 같은 불꽃같은 정열로 그 누구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은 적이 있는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남을 위해 살아본 적 있는가?
맞는 말인 거 같다. 아니 그 말이 정말 옳다. 가슴에 열정 없이 살았다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연탄재를 깔 볼 자격이 없는 거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슴에 불을 지펴 누구에게든 사랑과 관심을 듬뿍 나누며 살아야 한다. 연탄보다 못한 인생이란 소릴 듣는 건 속된 말로 쪽팔린 일이지 않은가!
심지어 연탄은 다 타고 하얀 껍데기가 된 마지막 순간에도 꽁꽁 얼어붙은 빙판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루로 흩뿌려져 마지막까지 희생을 한 후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했다. 여느 부모님처럼 말이다.
점화점이 500도에 가까워 불이 잘 붙지는 않지만 한번 불붙으면 오랫동안 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연탄처럼 새해에는 누군가를 위해 잠자는 열정을 깨워 하얀 재가되도록 한번 제대로 불살라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