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해 누군가 말했다. 그날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한 순간을 보낸 것과 같다고. 본인은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나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오히려 약간 비관에 치우쳐 있다면서 말이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으니 그냥 버티고 할 일을 하며 수긍하면서 산다고 했다.
롤러코스터 타듯 스펙터클한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릴 적에는 입시를 위한 공부만 벗어나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진지한 인생의 진리를 생각하지도 못했고 설사 듣더라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신나는 순간이 없지는 않았다. 언제 기쁨을 느꼈을까? 내가 그토록 원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을 때였을까? 시험 성적이 기대보다 잘 나왔을 때,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결혼하는 날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이날은 하도 정신이 없어 주례사도 생각나지 않으니 차라리 청혼을 받은 날을 꼽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어떤 현인은 행복을 느끼는 상황과 감정에도 성격이 달라서 조건에 따른 행복한 삶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가령 명문대에 들어간 기쁨은 일주일에서 일 년 사이에 수그러든다는 것이다. 마치 달콤한 도넛을 먹은 후 혈당 스파크가 엄청 솟은 후 이내 떨어지는 그래프 같다. 결국 불행과 지루함 사이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게 행복이라 여기며 산다는 말이었다.
가끔 내 인생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이런 다짐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매일 성실함과 노력을 중시하고 그에 맞는 태도를 고수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저 파도에 내 몸을 맡기듯 사지를 움직이며 힘을 쓰지 않고 흘러가고 싶기도 하다. 노력 없이 행운을 바라기도 한다. 거창한 일은 아니어도 정말 작은 행복, 신선하고 기분 좋은 만남이나 사건을 바라면서 말이다.
얼마 전에 실수로 이어버드(earbud)를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세탁기에 돌린 적이 있다. 대개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온 후 귀에서 빼낸 후 충전기에 꽂아 놓곤 하는데, 생각도 없이 몸에 밴 습관이라 그대로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은 미리 주머니에 넣고 집에 들어왔다. 사소한 변화인데 내 몸은 그에 따른 행동을 인지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잊고 말았다. 귀에 없으니 뭔가를 뺄 것도 없다고 느꼈나 보다.
문득 책상 앞에 놓인 이어버드 충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뚜껑을 닫혀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아니, 왜 없지? 이런, 설마 또 세탁기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감지할 때만큼 기분이 안 좋은 경우가 있을까 싶다. 후다닥 나가서 베란다 세탁기가 있는 곳을 향하는데 이미 세탁은 끝나 있었다. 설상가상 문제의 바지는 건조기 속에서 뜨거운 바람과 운동 속에서 신나게 돌고 있었다. 마침 옆에 있던 남편에게 하소연하면서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남편 자신은 저렴한 무선 이어폰을 쓰면서도 내가 쓰는 것은 튼튼하고 오래가야 한다면서 사 준 비싼 이어버드!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개월 전의 일이지만 두 시간이 넘도록 세탁기의 물살 속에서 방황하던 이어버드는 한참 말린 후에 버벅대며 다시 작동했다. 물과 기계는 상극이라 절대 그 교훈을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게다가 이번에는 건조기의 열풍에 노출되었으니 다시 작동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 내가 자책과 자기 비난의 감정 사이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남편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새 이어버드를 갖고 싶으면 그냥 말하지 그랬어. 굳이 세탁기에 넣는 전략은 안 써도 되는데, 하하하!"
남편은 내가 속상해하리라는 마음을 알고 유머로 대응했다. 덕분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울먹임이 나도 모르게 호탕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새 이어버드 필요한 거 아니야. 어떡하지? 두 번째라서 이번에는 정말 고장 났을 것 같아."
조바심 내며 정신을 못 차리는 내 앞에서도 남편은 망설임 없이 차분하게 건조기를 멈추고 문제의 바지를 찾아냈다. 하나는 주머니에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뒤져서 겨우 찾아냈고 며칠 말려보자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충전된 이어버드를 들어 작동해 보았다. 거의 90퍼센트 회복이 된 듯 잘 들렸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인을 잘못 만나 두 번이나 물과 열기의 소용돌이를 견디어 준 이어버드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보다 더 감동을 받은 건 똑같은 실수를 한 아내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유머로 위로하며 웃게 해 준 남편의 말이었다.
어찌 보면 이어버드의 작동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보아야 할 작은 기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라면 이런 실수를 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먼저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왜 또 이런 실수를 했냐고,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면서. 이어버드를 볼 때마다 자책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한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느끼는 행복과 감사는 지친 감정마저 치유하기도 한다. 이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에서 오는 뿌듯함보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배운 삶의 태도와 행운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했던가. 소심한 나는 남편의 마음을 배우고 싶을 때가 있다. 비난과 냉정한 평가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유머로 삶에 기름칠하는 태도를. 남편의 모습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계속 바라보고 함께 걸으면서 조금이라도 스며들길 바란다.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하나가 되는 그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