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들을 보내며

D-Day1

by 애니마리아


우리는 훈련소에 가기 이틀 전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 전부터 함께 했지만 아이는 그저 쉴 시간이 없다는 말만 할 뿐 특이한 반응은 없었다. 머리도 군 입대 가기 직전에 깎는다며 아무에게도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어느새 D-1일이 되고 이른 오전 하남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가서 인사(큰절)를 드렸다. 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둘째 큰아빠 가족을 접대하며 또 인사를 드리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 언제 성당 가요?"


"응, 오늘은 오후 4시 미사가 있어서 3시 40분쯤 나갈 거야."


"오늘은 좀 일찍 출발할 수 있어요? 머리 깎으러 갈 건데, 같이 가 줘요."


"오, 정말? 그래, 알았어."


성당 가는 길에 있는 헤어숍에 가서 군인 스타일을 부탁했더니 경험이 많은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은 훈련소를 물으셨다. 논산 훈련소라 말씀드리니 선생님은 그곳의 규정이 가장 엄격하다며 어설프게 하면 가서 강제로 다시 깎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했고 결과는, 음...... 완전한 삭발이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머리선이 드러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비롭다고 해야 할까? 아이는 멋쩍은지 농담 반 진담 반 스님 같다며 웃어 보였다.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애써 밝게, 평소보다 좀 오버해서 말했다.


"우리 아들, 두상이 아직도 예쁘네. 엄마, 아빠는 좀 납작한 편인데 좁쌀 베개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

"정말? 오, 좁쌀베개 좋은가 보네."


아이는 나름 쿨하게 대답했지만 깎고 나자마자 모자를 쓰더니 그날 저녁 첫째 큰아빠네, 고모네 가족을 만나 격려를 받을 때도 그다음 날 훈련소를 갈 때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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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5일, 아이의 바람과는 달리 태양은 떠올랐다. 바로 군 입대 날. 논산 훈련소로 가는 길, 아이의 허락을 받고 차 뒷좌석에서 바싹 깎은 머리를 찍었다. 가는 내내 한참을 바라보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 본인의 감정이 가장 복잡하겠지만 군대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정말이지 직접 그 상황이 되어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전에는 그저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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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전날부터 실실 웃더니 계속 '말이 안 된다'라며 한탄을 하더니 점점 '아~!', '하아!'하는 감탄사를 10초에 한 번, 5초에 한 번, 나중에는 거의 1, 2초에 한 번씩 내뱉곤 했다. 그러더니 틈만 나며 이런 농담까지 던졌다.




"아, 이것 다 몰래카메라죠? 아빠, 엄마가 나 하나 속이려고 배우들, 세트장에 돈 많이 쓴 것 같아. 무슨 트루먼쇼(The Truman Show, 1998/짐 캐리 주연)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요. 말도 안 돼."




웃으며 맞장구치는 나와는 달리 안드레아의 표정이 희한하게 굳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난 그 기분 안다. 현실 부정하고픈 그 기분.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들지."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을 지키며, 가족을 지키러 간다는 명분은 명분일 뿐 너무나 가혹하고 힘겨운 운명일 수 있겠다 싶었다.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완전히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두려움과 먹먹함 사이에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그리고 그 뒤에서 보내야 하는 어미의 마음 또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30세가 되던 해 아들을 세상에 보냈던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첫 출산을 하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미어지듯, 안드레아도 아버지로서 아들을 보내는 마음이 힘들었을까? 그저 자랑스럽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인간이기에. 부모이기에. 나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슬프다는 말도, 짠하다는 말도 온전히 들어맞지 않다. 단, 대학 기숙사에 보낼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시까지 도착하라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최소한 30~4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차를 가져가도 주차장이 모자라 한참을 걸어서 들어갈 수 있었고 화장실을 갈 시간도 빠듯했다. 1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입소식 예행연습 때문이었다. 경례하는 모습부터 좌향좌, 우향우 훈련을 해야 했고, 선서 등 여러 의식을 연습해야 했다. 자그마치 1700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3~4명의 가족이 함께 왔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람들, 소음, 행군의 물결이 마치 피란 길 같았다. 아이의 말대로 영화 세트장 같았다. 매주 월요일만 되면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학업 및 일 등 일상을 뒤로하고 훈련소에 와야 한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서. 새삼 솜털이 가시지 않은 이 아이들의 희생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실감 났다. 감사라는 말은 부족했다. 아, 아직도 우리는 전쟁 중이라니!




이미 제대한 시댁 조카의 어머니이자 나의 형님이 누누이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서, 절대 아이 앞에서 눈물 보이면 안 돼. 안 그래도 심란할 텐데 엄마의 눈물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플 거야. 알았지?"


"네, 형님. 명심할게요. 고마워요."



한 달여 후 퇴소하는 날을 기약하며 안드레아와 나올 때까지 다행히 울지 않았다. 앞으로 고비는 몇 번 남긴 했지만. 그다음 시험대는 아이의 모든 옷, 신발 등 소지품으로 택배로 받을 때라고 한다.

누구나 다 갔다 오는 군대라지만 나 또한 그 시기를 맞이하며 아들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희망한다.


"아들, 멋있는 군인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돌아오길 바란다. 사랑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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