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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n 10. 2024

익숙한 것과의 이별 연습 2

(부제:근원을 찾아서)

"색시야, 커피 언제부터 마셨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야. 아마 중3 때나 고1 때인가? 잠이 워낙 많아서 좀 줄여보려고 야금야금 마시기 시작했어. 별 소용은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게 꽤 오래되었다. 그러고 보니 커피 음용은 자판기 믹스 커피를 시작으로 설탕물이나 다름없는 각종 캔 커피와 함께 내 일생과 함께 했다. 임신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였다. 커피 사랑이니 삶의 일부니 하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 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내 몸에 카페인을 욱여넣었다. 가장 오래된 습관이자 나를 조금씩 앓게 한 애증의 커피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면서.

나의 편두통은 30대 후반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두통은 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두통약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불편함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두통으로 불편하면 바로 상비약을 투여했다. 그 당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두 알이 아니라 대, 여섯 알까지도 먹었다. 두통이 금방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 대 때부터 이런 생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웬만한 두통약과 투여량으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조금만 예민해져도 두통이 생겼고 원래 있던 두통은 더 심해졌다. 

갑상샘 항진과 갑상샘 저하증을 오가고 이런저런 수술과 시술, 코로나 초기 시기에 발병과 같은 비교적 큰 병을 치르다 보니 두통은 마치 변방의 오랑캐처럼 만성적인 불편함으로 치부되었다. 두 번의 출산을 하고 얼마 안 되어 일반적이 두통약이 아예 듣지를 않자 나는 종합병원에 갔다. 일반 약국에서 파는 약은 전혀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편두통 완화약을 처방받아야만 했고 매일, 매월, 매년 두통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큰 병원에서 가서 처방약을 타 올 때마다 진이 빠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의 남용은 좋지 않으니 번거로워도 이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주치의는 매일 먹어야 하는 예방약을 끊게 하셨다. 작년 말에 매월 평균적으로 5~6회 정도 약을 먹어서인지 편두통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보셨나 보다. 희한하게도 올해 1월이 되자마자 한 달에 12회를 먹었다. 2월에는 8회, 3월은 10회, 4월은 12회. 1월과 같은 수치지만 지난 4월은 그 어느 때보다 편두통의 강도가 심했고 투여량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개 한 번 먹으면 몇 시간 후에 조금씩 나아졌지만 지난달의 경우 잘 낫지를 않아서 하루에 3~4번 먹고도 온종일 누워 괴로워할 정도로 심각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구토할 듯한 오심, 소화불량, 변비도 덩달아 심해져서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다. 공부는커녕 책 한 장도 읽을 수 없었고 빛에 민감해져서 문을 닫고 커튼을 다 치고 음악조차 들을 수 없었다. 소리에도 민감해졌다. 더 심한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나를 가두는 날이 계속되었다. 

약이 떨어졌다. 급한 대로 동네 병원에서 유사한 약 처방을 부탁했으나 자주 처방해 주기를 난감해했다. 법이 그렇다고 했다. 전문 병원이나 종합 병원에 가서 더 처방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다. 연초부터 터진 의료대란과 거부 사태로 예약조차 불가능했고 하루 종일 기다릴 것을 각오하고 직접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없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진료하다 보니 몇 달 후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나는 절망했다. 지금 아파 죽겠는데, 약도 없고 정밀 검사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동네 병원에 가서 유사 약이라도 처방해 달라고 사정해야겠다며. 마약에 중독된 것도 아닌데 나는 편두통 약을 찾아 헤매는 겁쟁이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들었을 때 카페인을 떠올렸다. 커피를 줄여볼까? 사실 편두통이 너무 심할 때는 속이 너무 좋지 않아서 밥이나 물보다 더 자주 마시곤 했던 커피조차 멀리하게 된다.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카페인을 좀 줄여보자는 기분으로 3~4일을 마시지 않았다. 못했다. 결과는? 나아졌을까? '유레카!'하고 외치게 되었을까? 

고통 수치는 더 심해졌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투여량도 3~4번 연속으로 먹는 날은 계속되었다. 일주일 내내. 병원도 갈 수 없고 공포 그 자체였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은 원래 시중에 판매하는 약보다 강도가 엄청 센 약이며 혈액에 바로 침투하는 성분으로 남용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힘들다고 자칫 빨리 먹어버리면 동네 병원에서도 처방받기 힘들다. 1차 병원, 2차 병원, 3차 병원에서 처방할 수 있는 양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한 번에 탈 수 있는 양이 적었다. 수시로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아까운가. 하도 아픈 데가 많아지고 만성화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의학 및 관련 제도 지식까지 느는 기분이다.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일주일 내내 나는 거의 산송장처럼 지냈고 안드레아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들면 다른 것에는 집중을 못 하니 편두통과 카페인 관련 기사 및 영상을 계속 찾아보았다. 결론은 카페인을 끊어야 한다는 것. 수십 년 내 몸에 배어 온 습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을 막으려니 기가 막힐 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 볼 수밖에. 열흘이 지나도록 차도는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데도. 카페인은 내가 평소에 마시는 녹차나 녹차 가루 외에 다른 식품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홍차, 밀크티 유사 제품조차도 커피보다는 적지만 거의 매일 섭취하다시피 해서 이것도 다 끊었다. 다가오는 유통기간에 마음이 아팠지만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커피보다는 낫겠지 하며 내가 아껴 마시던 녹차 세트를 안드레아 회사에 기부했다. 다행히 여직원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오렌지향 녹차가 제일 그립다. 흑흑~

2주가 가까워지자 두통이 조금씩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금단 현상 때문에 더 아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편두통과 금단 현상, 오랜 세월 내 몸과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친구들, 카페인 세포들을 생으로 뜯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나도 그들도 '나에게 왜 이러냐며, 그동안의 상쾌한 아침과 평온과 삶의 소소한 행복을 준 나에게 웬 배은망덕이냐'라며 아우성치는 소리를 온몸으로 겪은 듯하다.  


그렇게 메가톤급 태풍이 지나갔다. 다 지나간 것인지 아직 소강상태인지는 모른다. 이후 매일 발생하던 편두통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가버린 게 아니어서 간헐적으로 나를 짓누르고 아직 이번 달 남아있는 나날이 있지만 지난달 12회 대비 7회를 기록하고 있다. 일주일 전 생리가 시작하면서 편두통 횟수가 다시 늘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 약이 듣는다. 한 번만 먹어도 어느 정도 참으며 생활을 근근이 이어갈 수 있다. 아프기 싫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내 몸을 방관하지 않기 위해 운동도 병행하면서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와 독서, 글쓰기를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피와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 악마의 유혹 같은 커피 향이 가끔 그립긴 하지만. 

  '그동안 고마웠어. 커피, 나의 카페인 친구들. 원하면 언제나 볼 수 있으니 최후의 이별 통첩 같은 과장된 인사는 하지 않을게. 그냥 우리 서로 선을 지키며 지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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