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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금미 Feb 20. 2021

땔감이 꼭 필요할까?

*인터뷰를 바탕으로 인터뷰이의 시점에서 필자가 1인칭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꿈도 희망도 의욕도 없던 지난 시간들에 뒤늦게나마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극도의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내가 겪은 것과 정확하게 들어맞는 설명이다.


불타오른다는 표현은 보통 열정이나 야망 등에 붙어 긍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여기서 다들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만 생각할 뿐, 그 이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거센 불길일수록 빠르게 꺼지기 마련이다. 계속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나라는 땔감을 쉬지 않고 넣어줘야 한다.


그런데 꼭 활활 타오르는 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하는 걸까? 땔감이 꼭 필요할까?



캠퍼스가 설레지 않았던 새내기


그때의 캠퍼스는 대학생활에 대한 새내기들의 환상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사복을 입고 고등학교보다 조금 더 넓은 학교를 다닌다는 것. 그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데도 그들은 작은 변화에 기뻐하며 성인이 된 자신을 신기해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예쁘게 꾸미고 놀러 다녔을까? 뿌듯한 마음으로 전공 책을 끼고 도서관으로 향했을까? 모두 아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새내기 시절, 나는 PC방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동기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을 정도였다.


“S를 찾으려면 무조건 PC방에 가라.”


가족들의 눈치에 못 이겨 학교 가는 척 매일 집을 나서긴 했지만, 강의실엔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의욕이 없었다. 대학생활에 대한 낭만도, 높은 학점을 받겠다는 의지도 상실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PC방에서 게임하는 것뿐이었다.


대입이 끝나면 고3은 두 부류로 나뉜다.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당연히 나는 후자였다. 학창 시절 내내 노력이 성과를 보장해준다고 믿었던 나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결과와 마주해야 했다. 입시는 꾸준히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에 빛나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를 결심했다.


그렇게 스무 살을 또다시 수험생활에 바쳤고 그 결과로 (내 기준으로는) 조금 더 좋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비로소 진짜 새내기 생활이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캠퍼스를 밟아도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났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던 재수생 시절이 더 활력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 더 좋은 그 학교도 내겐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좌우 시야를 차단당한 경주마처럼 일 년을 달린 결과가 고작 이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능도 끝났으니 이제 새로운 목적의식을 가져야 할 차례였다. 그러나 몇 년 내내 입시밖에 모르고 살아온 내가 그런 걸 쉽게 가질 리 만무했다. 거기에 나와 맞지 않는 전공까지 나를 괴롭혔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기간 내에 과제를 수행하고 시험 기간에 공부하는 것. 누군가는 간단하게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만이 맴돌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극복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무기력한 대학 생활은 2학년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올라가도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강의실이 아니라 PC방으로 향했다. 일상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심리 상태까지 그대로인 건 아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마음은 곪아질 대로 곪아져가고 있었다. 사람은 막다른 길에 다다라야 심각성을 인지한다. 중간고사까지 지난 뒤에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중도 휴학뿐이었다. 도망치듯 결정한 휴학의 첫 번째 행보는 어느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휴학을 결심하던 당시 나의 일상이 마냥 똑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별생각 없이 참여했던 대외활동이 기대했던 것보다 재밌었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잿빛으로만 보이는 이 세상에도 내게 흥미와 열정을 가져다줄 무언가가 존재했다. 호기롭게 도전한 공동 프로젝트는 그 깨달음의 연장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고 무기력을 극복했다.


… 로 끝내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이겨냈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몇 개월 동안 열정을 바친 프로젝트 작업은 한 마디로 최악이었다. 효율적으로 협업하고 분업하며 발전해나가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먼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그들도 결국 아마추어 학생에 불과했고, 모든 제작 과정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다.


마음속에선 수시로 포기하면 편하다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포기는 이미 엉망인 학점으로 충분했다. 책임을 내던지며 긴 세월을 보낸 내가 어렵게 맡게 된 ‘프로젝트 완성’이라는 책임까지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완성’에 대한 책임감은 곧 강박으로 변했고, 이번에도 나는 나 자신을 극한까지 내몬 뒤에야 한계를 인정했다.


무기력해서 힘들었고 열심히 노력해서도 힘들었다. 대학생활이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이었다면, 프로젝트 작업은 나 자신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환멸이었다. 거창한 걸 바란 게 아니었다. 남들처럼만 고생하고 남들처럼만 잘 지내고 싶었다. 뚜렷한 원인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결국 나는 모든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내가 감정이 고장 나서, 내가 의지가 약해서….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극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너 자신을 알라


험난했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심심풀이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말이 좋아 취미 공유지 금세 아무 말이나 떠드는 모임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모임은 매일 MBTI 얘기로 시끌벅적했다. MBTI? 대체 그게 뭐라고 다들 이렇게 흥분하는 거지? 대화에 끼려면 내 MBTI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ISTP, 만능 재주꾼이었다. ISTP의 특징을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모든 말들이 나를 가리켰다. 냉철한 판단을 잘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걸 선호한다. 첫인상이 다소 차갑고 다가가기 어렵다….


이전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군지 알기도 전에 사람들이 원하는 나를 꾸며냈다. 말을 예쁘게 하고, 감정에 잘 이입하는 나….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착한 소녀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번도 반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한다는 건 그 모습이 곧 정답이라는 뜻일 테니까 내가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맞춰지지 않는 내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MBTI가 제시하는 특성이 놀랍거나 새롭진 않았다. 나 자신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점들이었다. 한 가지 새로운 게 있다면 MBTI 분석 결과엔 그 어떤 평가의 시선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나, 공과 사를 구분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나. MBTI는 그 모든 나를 ISTP 유형의 인간으로 바라볼 뿐, 감히 틀리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건 온라인 모임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사람이 있다.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나’라고 생각될 만큼 똑같은 사람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 같은 사람 모두 나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나는 고장 나거나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이런 유형의 사람일 뿐이었다.


극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비슷한 시기에 가장 가깝게 지냈던 Y였다. 습관적으로 자책하던 나에게 Y는 이렇게 말했다.


“내 눈에 넌 논리적이고 똑똑한데 왜 자꾸 널 깎아내리는 거야?”


그와 함께 Y는 맞지 않아 괴로워했던 전공의 대안으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를 제시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암기하는 대신 계산으로써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전공이었다. Y가 제시해준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다.


드디어 기나긴 방황의 원인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한 무지’였다. 그동안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형태로 나를 증명하려 했으니 무기력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와 함께 타인의 평가에도 쉽게 휘둘렸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을 존중할 수 없다.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다. 나를 알고 나니 극복도 순식간이었다. 내 특성에 걸맞은 활동과 사람을 찾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감정 위주로 진행돼 골머리를 앓았던 지난 프로젝트와 달리 사고 회로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는 설득하면 곧바로 이성적으로 수긍하는 식으로 순탄하게 이뤄졌다.

 


나를 아는 것에는 끝이 없다


영원할 거라고 확신했던 것들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엇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의 특성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부딪힐수록 나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이 속속들이 발견됐다. ISTP였던 나는 이제 결과가 ESTJ로 나온다. 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곧바로 MBTI 결과에 반영된 것이다.


번아웃 극복에 결정적인 힘을 주었던 Y는 도움만큼 상처도 많이 줘서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그 시절엔 인생의 전부와 같았던 관계도 영원하지 않았다. 현재만 달라진 게 아니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내가 가해자였다고 여긴 과거에는 잘못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피해자였다고 여긴 과거에 내 잘못도 어느 정도 있었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수시로 변하는 내가 모두 개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변화는 한순간에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학습의 결과이다. 이전보다 많은 것을 깨달은 덕분에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보일 뿐, 본질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 전 누구에게도 아픔을 토로하지 못하고 혼자 버티기만 할 때 지하철에서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을 겪었다. 그땐 내 정신이 나약해서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말이, 나 자신을 향한 불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약한 건 정신이 아니라 나를 향한 이해와 믿음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번아웃도, 공황도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 완전히 극복했다기보다 삶의 동반자처럼 (애써)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가는 기분이다. 여전히 나는 완벽하지 않은 내가 싫고 현실의 벽 앞에 자주 무너진다. 하지만 그런 나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못난 나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힘들게 쌓아 올린 경험치를 발판 삼아 조금 덜 힘들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앞서 나는 ‘땔감이 꼭 필요할까?’라고 물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 대답을 눈치챌 것이다.


예상한 대로 답은 ‘아니오’다. 활활 불타오르는 열정은 눈부시지만, 곧바로 재가루가 되고 싶진 않다. 나 자신을 땔감으로 몰아넣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며 뭉근히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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