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공포의 대상일 줄이야
랑종을 봤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굳이 감상을 기록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만한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 그런데 공격적인 마케팅이 자꾸 눈에 들어오자 이러다가 이 영화가 정말 흥행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별 영향력은 없겠지만 나의 감상을 남기기로 했다.
시작부터 영화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지만 이미 재밌게 본 사람들의 감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나도 재미있게 봤다. 나는 내가 잔인한 걸 잘 보는 거지 특별히 좋아한다고는 생각 안 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잔인하고 기괴한 걸 선호하는 편이라는 걸 느꼈다. 가면 갈수록 노골적인 수위로 펼쳐지는 지옥도가 몹시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런 장르적인 쾌감을 빼놓고 본다면 이 영화의 작법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주인공이 빙의된 모습은 클리셰의 범벅인데, 차근차근한 빌드업으로 서서히 잠식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았으련만 무의미하게 기이한 행동을 나열할 뿐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취하는데 초반부엔 흥미를 자아냈던 이 설정은 금세 밑바닥을 드러낸다. 어떤 방송 제작진이 한 가족의 이야기를 취재한다는 설정이어서 다른 영화와 달리 카메라를 든 사람의 존재감이 명확하다. 그래서 주인공을 향한 무례한 카메라 워킹이 현실의 사람이 던지는 눈빛같아서 더욱 불쾌하다. 카메라의 문제점이 극에 달하는 건 후반부인데 이 부분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절대 놓지 않고 구석구석 비춰주는, 자신이 먹히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담아내는 그 장인 정신에 무릎을 탁 쳤다.
영화의 문제점이 이것으로 끝이었다면 굳이 이 글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혹시라도 흥행할까 봐 두려운 이유는 이렇게 노골적인 여혐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빙의된 주인공이 왜 20대 여성인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빙의로 일상이 파괴되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보자니 영화가 예쁘고 어린 여자를 타락시키는 것에 재미들린 것만 같았다. 주인공은 굳이 늘 짧은 옷을 입고 다니고, 굳이 성적으로 문란해지고, 굳이 자신의 옷을 찢어서 노출하고, 굳이 아기흉내를 내고, 굳이 이야기에 아무런 기여도 안 하는 사랑 이야기에 엮이고 굳이 생리를 한다.
그렇다. 생리. 망할 생리. 이 영화의 생리는 우리가 알던 생리와 다르다. 하혈에 가까운 수준으로 피를 쏟아내는데 사람들은 그걸 징그러워하기만 한다.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몸을 닦는 주인공을 카메라는 굳이 따라가서 문 틈으로 집요하게 찍는다. 그리고 생리인데도 어째서인지 짧은 흰 치마를 입은 주인공이 피를 쏟아내는 모습이 영화에서 공포 포인트로 작용한다.
주인공의 방에 귀신 들린 물건이 잔뜩 쌓여있는데 그중에 피 묻은 생리대가 있다. 나는 정말 생리를 그로테스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랑종 세계관에서 생리컵은 거의 악마를 소환하는 도구인가보다.
그리고 모성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다. 주인공의 엄마는 아무런 매력 없이 딸을 지켜주는 도구로만 전락한다. 사실 해당 캐릭터는 꽤나 매력적인 서사를 갖고 있다. 동생에 대해 죄책감과 안도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갖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중반부터는 그저 "내 딸을 위해서라면..."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일을 망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모성애에 눈 먼 여성이라는 점에서 탄식이 나온다. 모성애가 작동되는 부분이라면 여자는 당연히 이성을 잃는다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이 그대로 재현된다. 영화 속 엄마들은 자식과 관련된 부분에선 항상 정상적인 사고를 포기하고, 영화는 "그래, 자식 문제 앞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엄마가 어디있겠어."라는 생각을 유도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자식을 키운 적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멀쩡한 사람이 비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원인이 모두 '모성애'라는 점에서 영화가 엄마라는 존재를 얼마나 대상화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여자만 혐오하는 게 아니다. 동물, 아기도 골고루 학대한다. 약자를 학대하는 묘사가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참고 넘어가겠는데 이 영화에서 맥락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약자를 향한 학대가 가장 손쉽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게 훤히 보인다.
앞서 말했지만 사실 난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 장르적 쾌감도 있지만 내가 나홍진 특유의 염세적인 가치관을 좋아해서이기도 하다. 선도 믿고, 희망도 믿지만 그렇다고 악과 절망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랑종은 확실히 나홍진 감독의 전작 곡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작품이다. 연출은 다른 감독이 했지만, 러닝 타임 내내 나홍진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확인한 건 나홍진의 세계관에 희망을 절대 바라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홍진은 희망을 가지고 발버둥치는 인간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주로 그린다. 추격자가 그랬고, 곡성도 그랬다. 영화를 보면서 문이 열리고 비극이 시작됐을 때 순간적으로는 문을 연 인물에게 짜증이 났다. 그런데 학살극 시퀀스가 길게 이어지면서 문을 열지 않았어도 저 의식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홍진이 믿는 인간은 참 나약하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항상 무지의 뻘밭에서 뒹굴다가 끝내 비극을 맞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약한 인간들 중에서도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은 그보다 더 아래에 위치해 일방적으로 고통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이동진의 해설영상을 봤다. 영상을 보고 랑종이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완성될 여지가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지를 무너뜨린 건 약자를 대하는 영화의 폭력적인 시선이다. 윤리의식은 언제나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누군가는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고 하지만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작품 주제 자체가 폭력과 악이 아니라면 왜 굳이 불필요한 묘사로 윤리의식을 저버려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콘텐츠에 여혐이 깃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이렇게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여혐은 또 오랜만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애써 이뤄낸 미디어의 조심스러운 진보가 급속도로 후퇴할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영화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보는 것을 택했고, 보고 말하는 것을 택했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움직임에 한 명이라도 영화 속의 여혐을 자각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