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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Apr 19. 2024

'우리가, 바다'

경기도미술관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에 참석하기 위해 찾은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뜻밖에도 미술관을 만났다. 경기도미술관. 이곳은 2006년 개관한 도립미술관이다. 마침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이 열리고 있어 지나치지 못하고 관람을 했다. 



미술관을 들어서니 거대한 곡면의 유리창이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안내데스크 위부터 2층 천장까지 곡선을 이루며 쭉 뻗어 있는 유리창. 알고 보니 이 창은 돛대를 형상화한 것이었다[경기도미술관 건축소개 (ggcf.kr) 참조].  


그런데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게 있었다. 3X3인치의 자그마한 그림들을 1층부터 2층까지의 벽면에 빼곡히 붙여 완성한 벽화. 작품 설명을 보니 <5만의 창, 미래의 벽>(2008)이라는 제목의 강익중 작품이다. 이 작품은 최남단 마라도에서부터 최북단 대성동 마을까지 전국의 어린이 5만 명이 '나의 꿈'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33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모아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1층 로비에는 4.16 공방에서 만든 작품과 세월호 관련 자료, 그림책을 모아둔 '모음-마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4.16 공방은 유가족들이 아픈 시간을 견디기 위해 공예품을 만들다 어느덧 전문가가 되어 지역사회에 재능을 나누며 소통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416기억상점] 4.16 공방을 소개합니다. | 416 기억상점 (416family.com) 참조]. 



작가들의 작품은 2층 전시실에 마련되어 있었다. 계단을 올라 전시실로 향했다. 그런데 포스터를 붙여 놓은 전시실 입구와 맞닥뜨리자마자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순식간에 눈두덩이를 점령했다. 5만 명 아이들의 꿈을 그려 놓은 벽화를 보아서일까. 아이들의 꿈이 촘촘히 아로새겨진 벽면과 푸른색의 포스터를 동시에 보는 순간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린 세월호 아이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전시실을 등지고 돌아섰다.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창가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눈시울이 붉은 나를 본 도슨트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유가족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다 같은 엄마 마음이어서... 라며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관람은 그분 덕분에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나가는 관람객에 불과한 내게 1인 도슨트를 자처하고 함께 동행해 주었기 때문이다(김은순 선생님 감사합니다!). 


전시 제목은 <우리가, 바다>이다. 여기서의 '바다'는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김은순 님이 말해 주었다. '바로보다, 바라보다, 바라다'가 그것이다. 재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해야 함을 의미하는 '바로보는 바다'. 재난을 겪는 사회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서로가 전해야 할 위로를 담은 '바라보는 바다'. 재난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함께 이루어야 할 바람을 담은 '바라는 바다'.  


전시에는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운드, 사진,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17인(팀)의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참사를 추념했다[경기도미술관 《우리가, 바다》 (ggcf.kr) 참조]. 그중 인상적인 작품은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 전원길의 <잊을 수 없는 별들>, 안규철의 <내 마음의 수평선>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줘>는 희생자 304명 아이들의 이름을 안무가인 작가가 몸짓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길쭉한 의자에 앉으면 머리 위 조명등처럼 생긴 스피커로는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흘러나오고 앞쪽 모니터로는 그에 맞춰 작가가 몸짓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표현한다. 의자에 앉아 귀로, 눈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자니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잊을 수 없는 별들>은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에서 흙을 채집하여 원형 테이블에 넣고 콘크리트로 덮은 후 별의 형태로 구멍을 뚫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놀라움은 속을 채운 흙에서 돋아나는 새싹의 모습이다. 구멍에 흙만 채웠을 뿐인데 돋아나는 새싹이라니.... 자연 속의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설치, 사진, 회화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을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빛나는 녹색을 통해 참사의 희생자를 기억하고자 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땅의 모든 흙에는 씨앗이 웅크리고 있다"고 말했는데 돋아나는 새싹이 작가의 그런 믿음을 여봐란듯이 보여 주어서 인상 깊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식물은 전시 기간 내내 자라나 관람객에게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선보일 것이다. 



<내 마음의 수평선>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작품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작업을 펼쳐온 안규철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 작가는 벽면 가득 거대한 종이를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하늘과 바다의 밑그림만 그려져 있다. 이 밑그림을 푸른색으로 채우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반짝이는 물결의 빛은 그림의 밖에서 온다고 말했다. 작가는 관객의 마음 하나하나가 작은 조각 속에 담겨 윤슬의 빛이 되길 원했다.  



참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선 색칠할 조각을 책상에 놓인 퍼즐에서 고른다. 그다음 그 퍼즐과 동일한 문양을 벽면에서 찾는다. 그다음 벽면의 문양에 쓰인 숫자를 색칠할 조각에 기입한다. 다음에는 동일한 번호가 쓰인 펜으로 조각의 빈 공간에 색을 칠한다. 그 후 다시 원래의 퍼즐 자리에 조각을 채워 놓으면 된다. 잉크가 다 마르면 조각들은 마침내 벽면에 자리를 잡아 그림을 완성시킨다.  



조각들이 다 채워지면 벽화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이 작품 때문에라도 전시 마지막 날 다시 미술관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넘실대는 바다와 푸르른 하늘을 완성해주었으면 좋겠다.


경기도미술관 관람안내 (ggcf.kr)

경기도미술관 《우리가, 바다》 (ggcf.kr)

경기도미술관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모' 특별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 (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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