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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Feb 17. 2024

아이들의 세뱃돈, 그리고 무의식

회계사 엄마는 아이들 세뱃돈 받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아이들은 부자입니다.

마음 부자, 이런 거 말고 실제로 금융자산을 꽤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수준은 너무나 상대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금액일 수 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나름 목돈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의 저금통의 돈을 가져간 일에 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니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고등학생 남학생이 그 돈을 드린 후 눈물을 흘릴 만큼 힘들게 모은 돈이었다고 합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한 푼 한 푼 소중히 모아둔 돈이었답니다. 그러나 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생활고에 힘들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요청에 빼앗기다시피 그 돈을 드렸답니다. 자신의 몇 년간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을 보고 느낀 상실감은 그 이후 이 청년의 돈 관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모으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죠.

의식적으로 '모으지 말자'라고 생각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돈에 관한 기억들을 떠 올리다 보니, 지금 자신이 바로바로 원하는 것을 이루는데 돈을 쓰는 성향이 이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아이들이 어려서 경험하는  돈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성인이 되어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삶의 초창기 기억들은 무의식이 되어 우리 현재의 행동을 조종합니다. 과거와 맥락이 바뀌어도 무의식은 알아채지 못하고 과거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식에서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 행동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은행가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시원하고, 쾌적하고, 통장에 뭔가 찍히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금융상품을 분석하고, 교육하고, 활용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여러분은 돈에 관해 어떤 경험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자녀들은 지금 돈에 관한 어떤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나요?


저는 아이들과 돈 문제에 있어서는 니돈 내 돈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뭘 사달라고 조르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엄마, 이거 사주세요~" 하면 저는 "너 돈으로 사렴~"(아주 다정하게 말해야 합니다)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거든요.

물론 제가 자청해서 "이건 엄마가 사줄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좋아하고 감사해합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가급적 "안된다!"는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말이고,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이니까요. 자녀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게 해 주려는 게 부모 맘인데 막상 부모가 "이건 안돼, 저것도 안돼!!" 하는 것을 보면 좀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위험한 것 빼고는 거의 다 허락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어차피 못하니까요.


"엄마, 나 ***(엄마가 보기엔 예쁜 쓰레기) 사고 싶어"라고 아이가 이야기하면, "어~ 그렇구나~, 얼만데? 이쁘네~ (또는 난 별로인걸?)"하고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돈 쓸 자유'를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돈 쓸 자유'가 위험한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자유이기도 합니다. 대신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것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엄마, 이거 갖고 싶은데 너무 비싸~"라고 이야기하면, "와 ~ 진짜 비싸다.. 그래도 갖고 싶으면 사야지~" 합니다. 어차피 결정은 아이가 할 것이니까 '사라, 마라, 비싸다, 필요 없다' 등등 평가나 조언 충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아이가 가지고 싶은데 못 사준다고 미안해하거나, 사주어야 한다는 부담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도 엄마가 자유를 인정해 준 만큼, 엄마에게 뭘 사달라고 요구하거나 조르지 않습니다.


근데 아이들이 실제로 돈이 없는데, "너 돈으로 사렴~" 하는 건 약 올리는 것밖에 안됩니다. 진짜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저런 대화가 성립합니다. 그럼 아이들은 어떤 돈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이들이 돈을 가지게 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정기용돈과 특별용돈입니다.

(대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소득을 올립니다. 두 딸 모두 대학 가더니 바로 돈을 벌기 시작하더군요)

정기용돈은 매달 엄마가 주는 용돈입니다. 다양하게 옷을 쇼핑하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면서 옷값도 모두 용돈에 포함시켜서 줍니다. 어차피 그 돈 내에서 똑같은 옷을 또 사든 말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용돈을 준 이상, 그 돈의 주인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모두 위임합니다.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모은 돈이 있습니다.


어느 연구에서 보니까, 스스로 선택을 많이 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다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돈을 쓰는 소비 선택의 자유를 모두 아이에게 허용하는 것은 아이들 성장에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소비에 있어서도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어릴 때 용돈 사용에서 시행착오를 하는 편이 월급 받아서 시행착오를 하는 것보다 타격감이 적어서 그 또한 유익한 면입니다. 정기용돈의 금액 역시 아이들에게 결정하게 합니다. 물론 근거를 엄마에게 문서로 가져와야 합니다. 일종이 예산이죠. 밥값 얼마, 옷 값 얼마, 교통비 얼마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용돈을 정하도록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렇게 시켰습니다. 보통은 실제 필요한 돈보다 작게 적어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자신의 소비규모를 과소평가하는 면이 있는 것은 똑같습니다. 다. 사용하다 보면 "앗, 친구들 생일 선물 값을 안 적어서 돈이 모자라요~" 합니다. 그러면 또 그만큼 올려줍니다. 근거만 있다면 모두 "예스"하는 엄마입니다. (대신 합당한 근거가 없이는 1원도 안 줍니다)


특별용돈은 조부모나 친척들이 주시는 용돈입니다. 세뱃돈이 대표적인 특별용돈이죠. 이 돈은 모두 아이들 통장에 이체해 줍니다. 어려서부터 적금통장을 만들어서 이자가 붙는 통장(적금)과 안 붙고 바로 쓸 수 있는 통장 중에 어느 통장에 이체해 줄까를 늘 아이들에게 결정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적금에 열심히 넣어달라고 합니다. 아이들도 이자가 생기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클수록 돈 쓸 곳이 많아지는지 일부는 적금, 일부는 일반통장에 넣어달라고 하더니, 대학생이 되니 모두 일반통장으로 달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자기가 다시 일정 금액을 적금으로 이체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여를 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여세 신고를 마치고 아이들 통장으로 들어옵니다. 저희 시부모님이 큰아이 태어나자마자 이체해 주신 돈은 펀드에 가입된 돈이었습니다. 그 돈이 점점 불어나길 바라셨겠지만, 안타깝게도 계속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이 돈으로 배당주를 샀습니다. 아이가 종목을 고르진 않았지만, 아이에게 금융상품 판매원처럼 제가 설명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주식의 손실 위험도 알려주면서 선택하게 합니다. "은행 예금 하시겠어요? 아니면 배당수익과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배당주에 투자하시겠습니까?" 결정은 아이가 했습니다. 배당주를 선택한 이유는 아이가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 계좌의 돈까지 관리해서 불려줄 마음도 없고, 여력도 안되니까요. (*부모가 열심히 관리해서 불려준 돈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부모가 벌어준 부분만큼 추가로 증여세를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20세가 넘으면 이제 아이가 관리해야 할 시기가 옵니다. 금융회사에서도 엄마가 대신해 줄 수 없도록 본인 인증을 새로 하게 됩니다. 대학생 아이는 투자공부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아직 투자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투자공부 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좋은 점 등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지만, 당장 투자공부하라고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다 때가 있으니까요. 자율성을 중시하는 저의 교육 철학이 여기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이 명의로 주식을 관리하다가, 아이가 20세가 되면 불안해하시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아이가 맘만 먹으면 엄마 동의 없이 싹 팔아서 현금으로 빼서 쓸 수 있거든요. 아마도 주식을 구입할 때나 아이 명의로 계좌 만들 때 엄마가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엄마카드로 소비하는 아이들도 많지요. 돈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갑자기 아이에게 그 계좌의 관리 권리를 넘기기가 불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부모가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택권은 아이에게 주되, 큰 그림을 그려두면 좋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돈과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중 강렬하게 남는 기억들은 무의식에 들어가 아이의 평생 돈 관리 습관에 관여합니다. 부모가 돈을 늘 못 쓰게 하며 키운 아이, 부모가 자녀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가는 집에서 자란 아이, 부모가 필요한 것은 모두 해결해 주어서 돈에 대한 제약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 모두 성인이 돼서는 어려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돈을 관리하게 됩니다.


제 방식이 꼭 최선은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회계사님은 아이들에게 매우 너그러우시고, 늘 좋은 말만 하십니다. 돈에 있어서도 아이들을 믿고 달라는 만큼 다 주십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돈을 막 쓰지 않고 잘 관리한다고 합니다.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아이들을 믿어주고, 부정의 말, 금지의 말, 충고나 조언의 말보다는 긍정의 말로 인정해 주고 지지해 준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큰 후에 제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너희들은 나중에 너희 아이들에게 달라는 대로 돈을 다 줄 거니? 아니면 엄마처럼 깐깐하게(아이들 표현입니다) 줄 거니?",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엄마 방식이 좋은 것 같다고요.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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