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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Jun 03. 2024

MBTI, T는 진짜 공감력이 없을까?

F와 T에 대한 오해

"너 T야?"

"나 T잖아~"

요사이 MBTI의 T형 인간이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자신이 T인 사람조차, 마치 공감을 못해도 괜찮은 면죄부를 받은 양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런 건 아닌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올라와서 뭐라도 이야기해 주고 싶어 진다.

괜히 껴들어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다 찾아서 적어봐야겠다.


우선 MBTI에서 T와 F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그냥 공감 못하고, 말 너머의 뜻을 잘 못 알아들으면 T,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 잘하고 그러면 F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우울해서 화분 샀어"라고 말하면 T는 "왜 우울한데 화분을 사?"라고 물어봄으로써 위로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하나도 몰라주는 눈치 없고 답답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MBTI는 칼융의 인식론과 연관이 깊다.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MBTI의 의미"라는 책을 참고하여 서술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박철용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물리학과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MBTI전문과정(중급)을 수료했다고 한다. MBTI에 관한 책인데 물리학자가? 아마도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MBTI를 파고들어 공부하다가 책을 낸 모양이다. 어차피 MBTI가 심리학적으로 의미 있는 도구는 아니란 이야기는 들어왔기에 나 대신, 나보다 먼저 MBTI를 공부해서 정리한 사람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지금 알라딘에 가서 또 다른 책들이 더 없는지 검색했는데, 여전히 더 마땅한 책은 안 보인다.

인사담당자가 쓴 책도 있지만, 역시 심리학자는 아니므로 큰 차별성은 없겠다.


칼 융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의 판단 기능(Judging Function)을 사용한다. 

비이성적으로 직관에 의해 결정하는 사람과 이성적으로 숙고하여 판단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전자를 F, 후자를 T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융은 이성적 판단의 하나를 감정에 의한 판단으로 본다.

즉, 감정에 의한 이성적 판단과 사고에 의한 이성적 판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 또 하나의 개념적 혼란이 등장한다.

감성적인 사람은 F일까? 감성과 감정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감성은 감정의 재료가 되긴 하지만 감정 자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눈에 확 끌리는(이유는 모르지만) 이성을 만났다. 감성(직관 N)이 작동한 것이다.

그 이성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감정이다. 


F는 나와 남이 느끼는 감정을 의사결정에 쓰는 것이지, 충동적이고 이유 없는 감성에 의해 판단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감정(F)은 능동적이고 감성(N)은 수동적이다.


가끔 우리 엄마랑 이야기하다 보면 아주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뭘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자기만 아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아서 내가 이해하기 아주 어렵다.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자세히 물어볼라치면, 화를 내시기도 한다. 난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우리 엄마가 내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F였던 것인가?  말이 안 되는데? '


드디어 이 의문이 풀렸다. 우리 엄마가 내가 보기에 비이성적으로(감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결정하는 방식은 MBTI의 F와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성격이 급해서 빨리 답만 알고 싶거나(본인이 말 안 해줘도 내가 척하고 전후맥락을 다 알 것으로 가정해 버리는 건 무슨 성격 일까?), 나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지 자세히 알리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한 것은 해결하고 싶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사람들이 F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중에 아닌 것들이 또 있다고 한다.


감정표현이 많고, 즐거움과 흥겨움을 잘 느끼는 성향: F라기보다는 외향형이라 그렇다(E)

자연, 문학, 예술, 현상, 경험 등에 대하여 풍부하게 느끼고 감동하는 성향: N의 특징이다.

예민하고, 우울이나 불안을 잘 느끼며, 상처를 잘 받고, 정서적 지지를 원하는 성향: MBTI의 다섯 번째 지표에 기인한다.(a)


내 후배도 T고 나도 T인데, 그 친구는 호들갑스럽다. 맛있으면 "아~~ 맛있다!!" 크게 감탄한다. 왜 다른가 했더니 그녀는 외향형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예술품 관람도 좋아하는데, 그것도 나랑 달랐다. 하지만 둘 다 혼자 있는 것에 크게 외롭지 않고, 누가 뭐 라건 크게 신경 안 쓰는데 그것은 MBTI의 마지막이 같아서 그런가 보다.


확실한 것은(이 또한 100%는 아니지만) 인류애가 많은 사람들이 F로 분류된다고 한다.


* MBTI의 다섯 번째 지표: a유형(affect)은 정서 유형이다. 긴장하고, 조심스럽고, 순응하고, 걱정하며,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따르는 편이며, 반응성이 큰 유형이다. b유형(blunt)은 둔감 유형이다. 자신감 있고, 낙관적이며 기가 세고 태평하다. 결단력 있고 대담하며 이끄는 주도형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둔감한 유형이다. 이들에게 하는 조언이 딱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다. 

"b 유형은 다른 사람들의 평균적으로 그들보다 더 쉽게 상처받고 우울이나 불안을 잘 느낀다는 점을 알아두는 편이 좋다. a 유형의 이런 민감함이 b 유형들에게는 귀찮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유형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다시 책을 보며 정리하다 보니, 나와 아이들의 갈등은 비단 T와 F의 갈등이 아니었다. 둔감한 엄마와 예민한 딸들.. 그 예민함을 이상함으로 치부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우리 남편도 T인데 나한테 서운했던 것 역시 다섯번째 요소 때문인 것 같다.


책의 뒷부분에 갈수록, 내가 왜 이 책을 끝까지 못 읽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결국 MBTI에서의 조합은 각 조합에 따라 강하게 나타나는 성향이 다르고, 칼융이 말한 내향형은 I가 아니라 N에 가깝고..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정도에서 MBTI책은 덮기로 했다.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친구가 슬퍼한다고 똑같은 강도 또는 더 큰 강도로 슬퍼해 주는 것이 공감이 아니다. 

슬퍼하는 친구를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는 것도 공감이 아니다.

네가 슬플만하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고, 슬플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에 대한 내용은 정혜신 선생님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배운 것이다)


"그게 슬플 일이야?"(시험 못 봐서 우는 아이에게 내가 했던 말)라고 말해서 상대가 느끼는 슬픔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내가 그런 일에 슬프지 않기 때문에 너도 슬플 리가 없다는 "무지"에서 나온 말이지, 내가 사고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T형이라서 했던 말이 아닌 것이다.


T인 내가 가족들에게 듣는 피드백중 하나가 "그만 물어봐!"라는 것이었다.


"우울해서 화분 샀어"라는 말에  F인 사람도 "왜 우울해?~"라고 물어본다. 

만약 내가 "왜 우울해"라고 물어보면 남편과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까? 상상해 보면 역시 싫어할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왜 우울한데?"라고 물었다면 그건 진짜 끝까지 그 답을 알아내겠다는 정신이 담겨 있어서인 듯하다. 상대가 우울하다는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네가 정말 우울할 일이 있는지 내가 판단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 같다. 이게 공감하지 못하는 자세다. 이제는 안 그런다. 그래도 여전히 난 T다.


T가 "우울한데 왜 화분을 사?"라고 묻는다는 것은 "우울함"은 인정한 후의 질문이다. 이 질문만으로 T가 공감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자신은 우울한 감정이 어떤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물어봤을 뿐이다. 그러니 T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의 반 이상의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 감정에 의한 영향이 본인보다 크다는 것만 알면 된다. 하지만 공감력은 다른 문제다.

T도 "네가 우울하구나~"라고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공감으로 소통하는 것이 타인과의 관계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고"를 바탕으로 의사결정 하는 T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T라고 해서 공감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자.

난 T니까 공감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틀에 가두지도 말자. 


T 던, F 던 공감하는 법을 배우면 누구나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다.

단지 F가 선천적으로 조금 더 배우기에 유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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