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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un 13. 2023

[전시비평]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받은 위로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 우리가 멈춰 섰던 순간들 - 그라운드 시소 서촌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볕과 중정의 조경이 아름다웠던 서촌 그라운드 시소에 이름 모를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이 전시로 펼쳐졌습니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는 영국의 디렉터 리 슐만이 수집한 80만 장의 컬러 필름 슬라이드 컬렉션으로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이름 모를 이들이 각자의 필름 속에 담은 일상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 인물들을 통해 어찌나 다양한 표정이 존재하는지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들의 사진은 벽면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돋보기로 보아야 할 정도로 작기도 합니다. 전시 중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은 자연스럽게 멀찍이 떨어져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간이 텅 비어 있었고, 작은 필름 사이즈의 작품들은 테이블 위에 놓아 돋보기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연출되어 있습니다. 돋보기를 통해 누군가의 순간을 관찰하는 경험은 충분히 비일상적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물속을 헤엄치고 있거나,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이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 사진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기도 하고, 또 나의 미래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평면의 사진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로 공간의 색채와 사운드를 활용했습니다. 여름의 한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는 존은 푸른빛의 색감과 여름의 시원한 사운드를 틀어 몰입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한 겨울에 있었던 생일파티의 순간을 전시한 존에는 와인빛 색감과 잔잔한 캐럴이 울려 퍼집니다. 작품이 돋보이게 단색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기획자는 조금 더 사진 속 순간에 몰입하길 원했던 모양입니다.

 

 또 전시는 건축의 공간성을 충분히 잘 살렸다고 생각됩니다. 벽돌로 된 우물과 같다는 평을 받는 그라운드 시소 서촌의 건축. 가운데 중정을 중심으로 원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또 각 층별로 중정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커튼월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런 건축물은 전시를 설계함에 있어 난도 높은 공간입니다. 원형을 데드 스페이스가 많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커튼월은 채광으로 인해 작품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를 이러한 악조건에도 건축의 장점을 충분히 잘 살렸다고 보입니다. 커튼월이 개방감 있게 펼쳐진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고 그 가벽에는 중정의 조경의 청량함과 잘 어울리는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또 특정한 존에는 원형 구조와 어우러지는 거대한 원형 테이블을 놓아 건축과 유기적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전시는 층을 올라가며 관람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맨 위층의 엔딩을 차지하는 공간은 마치 축제를 연상시키는 만국기와 같이 다양한 인물들의 사진이 천장에 걸려있습니다. 머리 위에 연출된 작품을 올려다보는 경험은 하이라이트의 벅찬 감상을 주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제각기 다른 축제 한가운데 놓인 기분. 그리고 그 축제가 나의 축제로 치환되는 경험.    


 전시를 다 관람하고 MD샵에서 포스터를 하나 구매하고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사진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감상한 경험이 있었나?’ 내가 없는 사진 속에서 나를 찾은 독특한 경험을 준 이번 전시는 평소 사진전은 돈아깝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색다른 감상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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